[eBook] 느낌과 알아차림 - 나의 프루스트 읽기 연습
이수은 지음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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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은 작가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바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이수은 작가의 독서 에세이라면 무조건 환영이다. <이 책이 시급합니다>와 <평균의 마음>을 재미있게 읽었다. <평균의 마음>은 틈날때마다 다시 펼쳐볼 정도로 좋아하는 책이다. 그런 책들을 쓴 작가니까 신작도 무조건 좋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번 에세이는 무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나서 쓴 에세이다.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 책을 앞으로 <시간>이라고 줄여서 표기하겠다.) 나는 어떤 책 한 권을 읽고 리뷰 한 편 쓰는데도 어떻게 써야할까 생각하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이수은 작가는 <시간>을 읽고 책 한 권을 써냈다. 물론 <시간>이 보통 책이 아니긴 하다. 한국어 번역본 기준 열세 권 짜리 책이니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독후감으로 책 한 권쯤 써내는 일이 가능한 걸까, 생각해보지만 읽는 것도 쉽지 않고 읽고 나서의 감상을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나는 <시간>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수은 작가의 글을 워낙 좋아했기에 이 책을 구매했는데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히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심지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시간>을 다 읽은 것마냥 은은한 감동마저 일었다. 내가 읽어본 많은 책들 중에는 앞부분만 재미있다가 뒷부분에 가서 힘이 빠지는 책들이 꽤 있었다.(그래서 이동진 평론가는 책을 고를 때 책의 4분의3 지점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 부분이 작가가 가장 힘이 빠지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좋았고, 심지어 뒤로 갈수록 더 에너지가 붙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읽고 나서 이렇게 가슴 충만한 에세이는 참 오랜만이었다. 

이 책을 다 끝내자마자 나도 <시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알라딘을 검색했고 민음사판이 가장 위에 떴다. 한 달에 한 권씩 읽어도 1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다.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이수은 작가는 3년4개월에 걸쳐 <시간>을 읽었다고 했다. 한 번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시간>만 읽은 게 아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관련된 여러 책들, 또 이 책을 쓰기 위해 인용한 여러 철학자들의 책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게 티가 났다. 그리고 이렇게 분량이 적지 않은 책 한 권이 탄생했다.

이 작가는 심지어 <시간>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우울증 혹은 불안장애로 보이는 심리장애까지 겪었다고 고백했다. 병원에 가서『시간』을 읽다가 우울 증상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갱년기장애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의사가 답하는 장면은 완전히 블랙코미디다. 하지만 이 책 전체로 보면 이수은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나는 치유로서의 자서전을 쓰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할 말이 아주아주아주 많아서 명치나 목구멍 어디쯤에서 정체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말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하나씩 순서대로 끄집어낼 수가 없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나도 이 책에 대해서 말하려니까 말문이 막힌다. 요약하기도 어렵고 어느 한 부분만 콕 집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책의 총체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그럴 때 내가 갖고 있는 언어라는 도구가 얼마나 빈약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책은 <시간>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고, 만약 <시간>을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밖에는 없다.


이 책을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밑줄을 백만 개쯤 그은 것 같다. 외우고 다니다가 어디선가 써먹고 싶은 문장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밑줄 친 부분 여러 개 인용하려다가 다 지우고 그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만 인용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제목과도 연관된 부분이다.

【감수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식이다.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것은 중력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높이뛰기처럼 연습을 필요로 한다.】

오호, 독서는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느낌에서 알아차림으로 전환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절반만 YES다. 이 책에서 인용된 여러 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이수은 작가가 펼치는 글의 향연을 반만 따라잡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너무 좋다. 나의 독서 취향과도 연관이 있는데,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너무 개인적인, 예를 들면 '힐링'이나 '위로' 같은 단어가 붙은 에세이나 소설을 잘 못 읽는다. 그런 것보다는, 뭔가 이렇게 지적임이 철철 넘쳐 흐르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절반은 이해하겠는데 절반은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경외하거나 감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이제 5월이다.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고 해서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이번 달에는 뭘 읽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동안 알라딘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밀리나 크레마클럽에 담아두었던 책들은 한 번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책들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지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인생은 짧고 2024년도 네 달이나 지나갔고 시간은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갈텐데 내 취향이 아닌데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책들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음미하면서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진득하게 붙잡고 싶다. 이수은 작가가 <시간>에 온 마음을 들인 것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책에 온통 마음을 쏟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은밀하고 복잡한 서사전략을 채택한 걸까. 이 소설이 무엇을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진술되어 있는 소설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역할을 온전히 독자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독하게 열렬히, 꼭 붙잡고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다. 이것은 총력을 기울여 사랑해 주기를 요청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이 고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지기 위해 쓰였다는 문장이 너무 좋다.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책도 마찬가지일 터. <느낌과 알아차림>을 읽고 나니 진지한 사유, 진지한 독서가 너무 좋아졌다. 나도 이런 깊은 독서를 하고 싶어져서 갑자기 철학 책 쓸어담고...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아무튼 이 책 <느낌과 알아차림>은 너무 좋았다.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이렇게 멋진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느낀 그런 아름다움을 나도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도저히 표현할 말이 없다. 아, 그래서 프루스트도 그렇게 긴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수은 작가도 독후감으로 책 한 권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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