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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 미쓰키는 솔직히 정감 가는 인물은 아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두가 그렇다. 미쓰키의 엄마도, 남편도, 언니도, 그 누구도 대단히 매력 있거나 공감 가는 캐릭터가 아니다. 다들 제멋대로 살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타인의 행동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야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하고 참고 참다가 이상한 곳에서 터트린다. 전부 다 이상하고 전부 다 삐그덕거리는데도, 그런데도 이 소설이 너무 좋았다. 내가 이 소설의 주인공과 닮은 부분이 별로 없는데도 이 소설을 읽다가 마치 내가 미쓰키가 된 것처럼 아팠다.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미쓰키와 어머니이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 간병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기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나이 든 사람을 간병하는 일에 대해 적나라하게 써놓았다. 작가가 실제로 누군가를 간병해봤거나 아니면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게 아니라면 이렇게 세세하게 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부모님을 간병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돌본 일에 대해 가끔 건너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은 이 병이 의심돼서 지방 큰 병원까지 가고 어느 날은 저 병이 의심돼서 또 병원을 바꾸고, 자식들이 전부 타지에 있어서 병원 다니는 걸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동네 젊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자신을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돈을 포함해 병원비는 당연히 자식들 차지이고, 자식들끼리 이번에는 니가 내라, 안 된다 내가 저번에 많이 냈으니 이번에는 니가 내라, 하면서 싸우거나 전화 꺼놓고 잠적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노인의 수발을 두고 벌어지는 온갖 일들은 언젠가는 조부모의 일이었지만 곧 부모의 일이 될 것이고 머지않아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이 소설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주인공 미쓰키의 어머니는 화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젊은 시절의 삶과 노년의 아픔과 슬픔이 더욱 대비된다.
「어머니의 고독은 날카로웠다. 어머니의 존재는 반드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오직 어머니만이 찬바람이 부는 마른 들판에 앉아 있고, 주위에 마른 잎들이 소리도 없이 춤추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피로와 짜증이 심해지기만 했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난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그 단어가 '슬픔'으로 읽혔고 '공포'로도 읽혔다. 주인공 역시 자신이 그 길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에 그토록 날카롭게 반응했을 것이다. 이런 문장들을 읽는 독자인 나 역시 등골이 서늘해진다.
「어머니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벚꽃은, 언젠가 미쓰키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벚꽃이었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쓰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의 문장 자체는 꽤나 담백한 편이다. 슬픔의 밑바닥까지 사람을 끌고 가지는 않는다. 거리를 두고 고통을 지켜본다. 그런 문체가 나랑 잘 맞아서 이 작가의 팬이 되었다. 원래는 전자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이었는데 결국 구입했다. 두고 두고 읽고싶은 소설이다.
(+)병구완, 개호택시 같은 단어들이 나오는데 살면서 처음 보는 단어들이어서 사전을 찾아야 했다. 병구완은 그래도 기사 제목으로도 나오기는 하는데 개호택시는 정말 생소하다. 나의 어휘력 문제인건지ㅠ일본어 단어를 냅다 한글로 표기한 것 같은 이런 단어들을 제외하고는 번역도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