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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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회의 의식을 지배한다.


한 언어가 그 사회 구성원의 의식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아보려면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면 된다. 본의 아니게 영어로 작문하는 처지에 빠지면서 나는 영어와 한글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영어는 직설적인 언어이다. 모든 에세이는 우리 식으로 따지면 두괄식 형태였고 형용사와 부사를 남발할 경우 글이 모호해 졌다. 반면 한글은 본의를 숨기고 조심스러워하는 우리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언어일 수있다. 우리의 속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문자가 한글이었다.


자연스레 내 삶 속에 밀착한 한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은 영어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얼마간의 시간에 겪은 경험과, 말과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 덕분이었다.


집현전에서 발생하는 학사의 죽음을 채윤이라는 중인이 추적하기 시작한다. 채윤의 시선을 좇아 나가던 독자들은 곧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 조의 구중 궁궐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음모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하게 '고군통서'란 금서를 둘러싼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어느새 소설은 독자적인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그 설득력은 세종의 개혁 정치를 둘러싼 갈등 관계에서 비롯한다. 사대선린 정치와 조선의 자주성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발생한다. 그러나 가장 큰 갈등은 경학을 숭상하는 보수파와 실용을 숭상하는 이용후생학파의 대립에서 발생한다.


역사와 허구가 뒤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역사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작가의 재주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이 소설은 그 어느 픽션보다 개연성을 지녀 독자를 사로 잡는다. 채윤과 소이의 애정선은 작가가 좀 비약을 한 듯 싶고 사실 모든 희생자들이 증거들을 질질 흘리고 다녀 미스테리 구조로는 취약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 인물은 모두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고 봐야 하기에 범인을 향한 소설의 견인력은 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글을 대상으로 한 작가의 치밀한 취재, 그 취재를 통해 나온 엄청난 정보와 역사의 재해석은 독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이 책을 돌려 읽으며 스스로를 세종과 집현전 학사로 여기며 위안을 받았다는 풍문이 있었다. 그들이 과연 이용후생을 목표로 한 실용주의자였는지 이상과 이데아에 충실한 보수파인지 나는 모호하게 느끼고 있다. 여하튼 이 소설이 그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었다면 그것은  또다른 장점이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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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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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9.11 테러 사태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은 이제 현실이 영화를 압도하는 공포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최근 우리를 놀라게 했던 세기의 사건은 영화에서나  일어남직한 상상을 압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현실의 사건이 영화적 상상력을 압도하는 요즈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그녀의 [태양은 가득히]처럼 영화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요즘의 현실처럼 스펙타클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독자에게 여전히 재미와 공포를 전해주고 있다. 하이스미스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는 언제든지 일상의 사건 에서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도 가해자이거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어 독자를 긴장시키고 있다.  만약 당신의 집에서 시신의 일부를 발견한다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고양이가 물어 온 것'에서 그려지고 있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에서는 한 인간의 존재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는 패거리 문화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 '바구니 짜기의 공포'를 통해 작은 소품을 통해 실존적 고민을 하는 캐릭터의 재미를 보여주었다. 그 외 모든 단편이 독자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상황을 통해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소설의 설정에 휘말리게 한다. 악령과 사탄이 나오지 않지만 그 서늘함의 수준은 결코 그에 못지 않다. 내 안에 있을 수 있는 악령과 사탄의 존재에 선뜻 놀라서 일지도 모른다.


이 지독히 현실적인 소설은 결말에서도 지독히 현실적이다. 대중 문화의 상업적인  해피 엔딩에 익숙한 우리에게 하이스미스의 냉철한 결말은 오히려 새로운 충격일 정도이다. 사실 삶이란 이렇게 차디찬 얼음처럼 얼굴에 부딫치는데 우리는 모래에 고개를 처박은 타조처럼 소설과 영화의 달콤한  해피엔딩에 습관적으로 중독되어 있다는 각성을 하게한다. 재미있고 서늘하다.  한 겨울 얼음 물에 세수를 한듯한 오싹함이 한 번 잡은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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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 강의 101 - 경제학자에게 배우는 명쾌한 의사결정법
데이비드 R. 헨더슨.찰스 L. 후퍼 지음, 이순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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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에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조건 옳은 곳을 택하는 능력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소설을 읽은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 캐릭터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마 우리의 인생 곳곳에서 선택의 순간이 계속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판단력 강의 101]은 이렇듯 선택의 순간에 필요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판단의 방법은 사실 그리 대단하지는 않다. 첫째, 판단하기 전에 정보를 많이 수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불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유효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것이다. 가치가 없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올바른 판단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 자신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상을 해보는 이른바 '의사 결정 나무'를 그려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불러올 미래에 대해 예상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저자는 여러가지 실례와 돈이 들어간 수치들을 추산해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자명한 이야기여서 수치를 들이대는 증거들은 좀 읽기에 지겨운 듯하다. 미국 쪽의 실용 주의와 계량 주의가 우리의 취향에 잘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선택의 순간에 과연 얼마나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했는지 반성을 하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도덕의 경제학'이란 이름으로 다가온다. 선택의 순간 저자는 우리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예의 논리적이고 계량적으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정직하지 못하고 비도덕적인 선택이 끝에 가서는 얼마나 비경제적이고 무모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쾌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가 예를 든 바넘의 말은 그래서 끝까지 기억에 남는다.


"거짓말을 하면 얼마 못 가 들통나게 마련이다. 도덕적 원칙이 없다고 낙인 찍한 사람은 성공에 이르는 모든 길이 영원히 차단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 가엾기 짝이 없는 바보 아닌가!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회에 첫발을 딛는 후배들이나 앞으로 성장할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생각하면서 살고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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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의 귀향 - 캐럿북스 1
이선미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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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형제 중 장남인 아버지와 팔형제중 장녀인 어머니가 만나 내가 태어났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피임에 관한 상식이 없어 그리 손을 많이 보셨을 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분들도 젊어서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고 부부의 정이 있었기에 그리 자손을 많이 낳으셨을 것이다. 맞다.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일 것이란 인상이 짙은 우리 조상님도 아마 지금 우리와 비슷하게 사랑에 달뜨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고 사무치게 그리운 정이 있었을 것이다.


[모던 걸의 귀향]은 바로 그런 우리 조상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미의 몸에서 태어나 서구로 입양을 간 '모던 걸'이 백학골로 귀향하며 벌어진 코믹 멜로가 이 소설의 장르이다. [모던 걸의 귀향]은 구한말 우리 백성들의 삶에 끼어든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새로운 멜로 드라마의 각을 보여주었다. 조상과 전통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을 비웃어 준다. 전통과 보수가 대립하여서 나오는 뻔 한 갈등이 아니라 보수와 전통이 슬기롭게 화합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독자를 흐뭇하게 만든다. 전통과 굴레를 딛고 맞닿은 '근영'과 '규용'의 과거의 키스에 오늘 자극이 난무하는 시기를 사는 우리의 가슴에도 묘한 흥분이 찾아든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참혹했을 주인공의 삶을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놓은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이 새로운 감동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정통 문학을 하는 이는 '로맨스 소설'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에게는 감동과 재미를 함께 주는 소설이다. 사실 우리의 오늘은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 적응의 결과가 아닐까? 근영과 규용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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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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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경영학은 아주 생소한 분야이다. 대학시절 내가 다니던 단과 대학은 교정의 좌측에 있었고 경영 대학은 우측에 있었는데 그 떨어진 거리만큼 경영학은 멀리 있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피터 드러커의 이름은 낯설지가 않았다. '경영학의 귀재', '인간적 경영학의 창시자' 등 드러커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래도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을 읽는 것은 용기를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책을 펴든 순간 나는 롤러코스터처럼 드러커의 사람과 그들이 겪어낸 20세기의 격류로 어느새 휩쓸려 들어갔다.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은 흔히 알고 있는 자서전과는 다른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자서전이지만 자신의 얘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지인의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드러커의 지인은 자서전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서 드러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저자는 이 글의 원제처럼 자신을 Bystander, (방관자, 하지만 옆에 서있는 사람이 더 어울릴 듯하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영향을 주었던 할머니로부터 그가 연구와 분석의 틀로 이용했던 GM사의 슬론 회장에 이르기까지 20명 이상의 사람과 만남, 그들과 함께 한 에피소드 그리고 그들에 대한 드러커의 소회가 글을 이루고 있다. 결국 드러커는 자신의 학문 세계가 바로 이러한 사람과 교류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고백한다. 지루할 수 있는 자서전이 이렇게 타인과의 대화와 에피소드로 채워져있다. 제목처럼 흥미진진한 'Adventure'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드러커의 자서전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은 20세기에 대한 이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드러커는 20세기를 형성했던 서구 문화와 역사에 대해 거시적인 이해를 나누어 주고 있다. 제 1차 세계 대전, 히틀러의 제3제국, 미국의 고립주의, 대공황 등 서구 현대사를 거쳐 간 드러커의 삶과 실질적인 경험은 이 시기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을 제시해 준다. 


한 사람의 참된 면모는 그의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드러커는 그를 스쳐간 사람 옆에 서서 그의 인생을 드러내 보였으며 그를 통해 서구의 지성사를 독자에게 흥미진진하게 전하고 있다. 내겐 양서를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고 재학 지설 경영관 건물처럼 멀고 멀었던 한 세계가 부쩍 가깝게 다가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드러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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