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여자 박완서 소설전집 1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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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완서의 소설은 내게 영감을 준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나는 많은 드라마의 캐릭터를 생각했고, 에피소드를 상상했으며, 나의 삶을 걱정했다. 박완서의 영감은 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그녀의 작품은 예전 TV의 단막극이 잘 되던 시절에는 많이도 영상화 되었다.

박완서의 소설은 내게 어머니의 이미지를 많이 연상시킨다. 예전 어머니들이 보던 여성지에 주로 기고했던 그녀의 글들이어서인지, 내게는 어머니가 봐야하는 세계를 몰래 넘겨다보는 긴장감이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생겨난다. 단지 이뿐만 아니라 그녀의 소설은 모녀지간의 갈등을 다룬 것도 많고, 글의 모티브가 중년여성에서 비롯된 것이 많아 내게는 유독 어머니가 연상되는 글들이다.

[서있는 여자]는 여자를 위한 소설이다. 어머니 경숙의 삶도 독자로 하여금 의미심장하거니와, 딸 연지의 삶도 흥미로운 소재이다. 80년대 초반에 소설이 시작되어 85년에 단행본으로 묶어진 이 소설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구태의연하고 어색한 구식 캐릭터들의 모습도 이해가 될 만하다. 더 나아가 80년대를 생각하고 나서 이 노작가의 여성적인 시선은 그 당시로선 낯 선 것이었을 것이고, 아직까지도 유효한 서늘하고 예리한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80년대와 지금과의 차이는 '母性의 회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글에서 연지는 남녀평등의 수단으로 임신 중절을 선택했지만, 오늘날 다시 이런 소재가 쓰인다면 당당히 아이를 낳아 자신이 기르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벌써 20여년이 지난 오래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재밌는 소설이었다. 어머니의 잡지를 통해 드문드문 읽었던 기억을 이번에 한통으로 이어붙이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소설 중에 가장 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철민의 모습을 보면서, 내게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은지 자기 점검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에게도 권할 만한 소설이지만, 남성에게는 더욱 가치가 읽는 소설일 수 있다.

작가에게 여유가 있다면 21세기를 맞아 한번 개작을 권하고도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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