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랄라 대행진
현태준 지음 / 안그라픽스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내 다섯 살 짜리 아이 준연이가 올 여름 뒤 늦게 유치원에 들어갔다.

중간에 들어가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때 나타난 구세주 같은 아이가 있었으니 그 아이는 바로 정우이다.  준연이 보다 한살 많은 정우는 다른 여섯 살 아이들로부터 준연이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고, 외톨이인 준연이와 함께 놀아주어 아이의 유치원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섯 살 아이답지 않게 성숙한 분위기이고,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도검류를 좋아하지 않고, 쌓기나 만들기 등 창의적인 놀이를 좋아해 우리 부부에게는 정우가 준연이의 친구가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한살 아래인 동생이 형이라 부르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넉넉한 아이이다. 그러다보니 정우의 부모님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알게된 것이 정우의 아빠가 쓴 [뽈랄라 대행진]이다.

참 이상하고도 재밌는 책이다. 수필과 장편(掌篇)소설 모음집의 중간 쯤 되기도 하고, 만화와 문학의 중간 쯤 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수필과, '하루여행'이라는 그의 독특한 기행문의 중간이기도 한 책이다. 각종 일러스트와 만화, 사진이 가득한 책이라 눈이 심심치 않은데, 보는 동안 '키득'거리고 웃는 내 폼을 볼 때, '고행석의 불청객'시리즈와 비슷한 웃음과 쾌감을 주되, 어느 덧 살살 감동의 물결이 오기도 한다.

자칭 장난감 연구가인 정우 아버지 '현태준'씨에게는 혼날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좀 어려운 말로 키치 문화 , 즉 유치하고 촌스럽고 웃긴 저급문화에 가치를 부여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네 문방구의 장난감에서 80년대의 유치한 에로서적 등, 헌 것, 쓸데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미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들이 그의 버무림에 의해 어엿한 수집품으로 가치가 격상되었다.

단지 그의 수집벽을 늘어놓은 책은 아니다. 그의 글은  저급한 우리의 욕망을 무시하거나, 아닌 척하는 우리의 위선을 '배시시' 비웃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쪽 팔려서' 꺼내지 않는 사소한 욕구들, 이를테면 '버스 안에서 어떻게 빨리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등이 그의 세세한 관찰에 의해 수집되어 올라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욕구에 솔직하라'이고 이 주장은 그의 글 속에 표어로도 나타나 있다.

"대낮에 키쓰하여 /밝은 사회 이룩하자"

공부가 깊지 않은 내 생각으로도 인류의 문명은 자신의 욕구에 솔직해져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욕망을 강제로 억제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표출 함으로서 더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뽈랄라 대행진]에 미련 없이 동참하였고, 현태준의 생각에 동의하며, 그의 예술적인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이라 정우의 행동거지가 나오는 것 같다. 의젓하고 창의적이고, 예술적이고, 넉넉한 아이인 정우. 정우가 우리 아이와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서평을 읽고 많은 분들이 [뽈랄라 대행진]을 구입하셨으면 좋겠다. 정우는 돈 많이 번 아빠가 돈 주시면 우리 아이에게 맛있는 것 사줄 아이니까. 다음에는 '현태준'씨를 초대해 제육볶음이나 한번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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