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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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캐비닛]을 읽으면서 저는 몇 번씩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혹시 무라까미 하루끼가 이름을 숨기고 낸 새로운 작품이 아닌가 의심해서였습니다. [캐비닛]은 분명히 김언수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하루끼의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하루끼의 냄새라면 저는 무국적성을 첫째로 꼽습니다. 일본 작가이면서도 일본 문학 특성이 사라진 하루끼의 소설은, 그러기에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었을지 모릅니다. 김언수의 [캐비닛]도 그렇습니다. 한국 작가이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닐 가능성이 보입니다. 한국인을 통해서 인류 모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제의 광역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루끼 적인 냄새라면 가족의 상실입니다.  [캐비닛]의 작중 화자나 인물들은 가족에서 소외된 개인들입니다. 그 개인들이 자신의 고독과 치열하게 부대낄 때 느껴지는 쓸쓸한 감성이 전체적인 정서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하루끼 팬은 총 궐기해서 김언수의 [캐비닛]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캐비닛]은 작 중 화자가 일하는 연구소 13호실에 있는 한 캐비닛입니다. 무엇을 연구하는지 모르는 한 연구소에서 할 일도 없이 빈둥빈둥 월급을 타던 화자는 한 캐비닛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이상한 서류를 발견합니다. 그 서류는 인류 중 돌연변이, 작가는 '새 인류'라고 표현하는 심토머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심토머(Symptomer)란 변화된 인류로서의 이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즉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를 먹는다 거나, 유리를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기간 잠을 자는 토퍼러가 있습니다. 몸에서 은행 나무가 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 속에 도마뱀이 자리 잡은 '키메라'란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인류의 징후를 모아 놓은 박물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이상한 에피소드들을 화자와 권박사 그리고 손정은이라는 인물들을 통해 엮었습니다. 현란한 구라의 편집입니다.

캐비닛은 그래서 일종의 우화입니다. 우화인데 인간을 동물에 빗대지 않고 새로운 신 인류들에 빗대었습니다. 그는 심토머들에 빗대어 현대 보통 사람들에 대해 풍자하고 조롱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환타지인테 굉장히 현실적인 환타지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글 속에서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어느 날 우리 삶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와서 정면으로 우리를 노려 볼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이질적이고 이종 적인 것들은 우리 곁에 어슬렁 거리고 있다. 우리는 세계라는 복잡한 플라스크 용기 속에서 그들과 같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연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p.202)

위의 문장이 작가가 이 소설을 시작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글 중에 권 박사의 말을 통해 그의 노려봄에 대해 정리합니다. 문장이 좋아서 다시 한번 옮겨 봅니다.

"지난 오십 년 간 인간에게 그 시대를 반성하는 역사가 있었나?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지. 자신의 아파트 평 수나 지키기 위한 하찮은 이유 들로.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증오해. 치욕스러워."

"나는 더 아름다운 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더 이타적이고 더 따뜻하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항상 이웃의 삶과 같이 생각하는 박애 적인 종이 이 지구 위애 번성했으면 좋겠어."

 X파일에 문학성을 덧댄 느낌입니다. 작 중 화자를 둘러싼 스릴러 구조는 취약한 아쉬움이 있지만 모든 표현과 에피소드가 신선해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종(種)으로서 인류가 진화 직전에 처해있다는 발상의 기발함이 지금의 인류는 종말을 부를 수도 있다는 경고로 마무리 합니다. 사이 사이 보여주는 심토머들의 징후는 소외되고 고독한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치유로서 공감이 가는 면도 많습니다. 거창한 경고보다 이런 개인적인 어루만짐이 제겐 무엇보다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설을 다 읽으시면 글 뒷 부분에 마련된 작가의 수상 소감도 꼭 챙겨 읽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재미있고 솔직한 수상소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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