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무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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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에게는 언제라도 돈을 찾을 수 있는 보증 수표 같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읽기 편하고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전속력으로 달려나갑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화차'라는 제목처럼 증기기관차의 중량감이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KTX 같은 날렵함과 세련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모든 소설은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미소 지으며 책장을 덥게 하는 멋진 작가입니다.


그런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에게서 나올 만한 미스터리나 스릴러가 아니에요. 환타지의 느낌이 강하지만 오히려 순수문학과 같은 정결함이 있어요. 그래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거 뭐야'하고 속은 듯한 기분이 들겠지만, 다 읽고 나서는 가슴이 멍해지면서 '재미있다, 정말 잘 읽었다.'라고 탄성이 나오는 그런 수준이에요. 


어느 도시인지 전원인지, 마을의 변두리에 있는 나미야 잡화점은 주인이 죽은 후 삼십 년째 버려져 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이 살아 있을 때, 그는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카운셀링을 해주었어요. 고민거리를 편지로 적어 우편함에 넣으면 그 다음 날 새벽에 답장을 우유 상자에 넣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이제 잡화점의 주인이 안 계시기에 더 이상의 상담 편지가 오가는 일은 없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삼인조 좀도둑이 이 잡화점으로 몸을 숨겼는데, 편지함으로 상담을 의뢰하는 편지가 날아듭니다. 장난으로 답장을 쓰게 되었는데, 좀도둑들은 그 편지에서 나타나는 시간대가 묘하게 뒤틀려있는 것을 발견해요. 좀도둑에게는 하룻밤의 피난이 다른 사람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상담의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총 다섯 개의 장으로 나오며 제각기 다른 인물의 얽히기 시작하는데 그 인연과 인과관계가 말할 수 없이 오묘합니다. 이 절묘한 구성을 통해 이야기의 주인공과 울며 웃는 동안 독자들은 말 그대로 마음에 정화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나미야 잡화점을 매개로 서로의 삶을 교차하면서, 그들이 주고받은 상담편지는 기묘하게 주인공들의 행동을 촉발하게도 하고 선회시키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주인공이 이미 그들의 선택에 해답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그 점을 다른 사람을 통해 확인하는 것, 그것이 상담 편지를 통해 그들이 얻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소설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른 작가와는 다른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하도 힐링이 대세라서 힐링이란 말을 내세우는 것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집니다만, 문학이 삶을 고치고 위로할 수 있다고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참 행복했어요. 여러분께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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