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김영하의 새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를 연상시킵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자`라는 소재에서 이야기가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란의 영화보다 김영하의 소설이 뛰어난 점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김병수의 감정에 더 몰입시키는 힘이 있어서입니다.


젊어서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노인 김병수는 딸 은희와 함께 사는 70세 노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살인 후에 거둔, 피해녀의 딸 은희는 언제부터인가 병수와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연쇄 살인범의 주변에 다시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자, 김병수는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박주태가 범인이라고 확신합니다. 박주태의 손에서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병수는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을 옥죄어 오는 치매의 징후에도 병수는 마지막 살인을 완성할 수 있을지, 독자는 주목합니다.


결국, 김영하는 살인자의 기억을 통해 삶과 기억,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기억한다는 것, 추억한다는 것은 인간이 시간이란 흐름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일 수 있습니다. 과거를 내 기억 속에 붙잡아 두는 행위가 기억한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하는 능력이 무너진 치매 환자는 결국 시간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시간 앞에 진 인간은 결국 실존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메시지로 보입니다.


굳이 작가의 의도를 캐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독자를 이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하나 둘 잊어버리는 저의 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기에, 저도 어느새 주인공에 동화되었습니다. 독자로서 살인범에 동화될 수 있는 특권은 독서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달콤한 경험입니다. 소설의 결말에 가면 병수의 삶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기억과 망각 속에 뒤섞여 진실과 허위의 선이 명백하지 않게 됩니다. 독자는 작가의 결론에 크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삶이란 게 이렇게 뒤죽박죽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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