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블록
키스 스튜어트 지음, 권가비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소년의 블록 



에마와 나는 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10대 시절에는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조지의 죽음이라는 그늘 속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구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떠나버렸다. 서너 번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먼 친척처럼 굴었다. 너무도 예의 바른 대화에 이미 여러 번 해서 시들한 농담을 나누며 각자 삶의 겉면만 훑었다. 우리가 혹시 리얼리티 티브이 쇼 같은 데에 함께 출연한다면 나는 아마 카메라에 대고 “우리는 아직 그 이슈를 가지고 정면으로 맞서본 적이 없어요.”랄지 아니면 “과거를 직시한 적이 없어요.”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런 쇼에 나갈 일은 전혀 없겠지만. 왜냐하면 첫째, 지금으로선 좀 늦은 감이 있기도 하고 둘째, 우리는 영국 사람이니까. 게다가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준 바에 의하면 우리 마음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은 미래이지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에마를 데리고 런던에 있는 그 카페에 가고 싶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그 완벽한 날을 다시 한번 그녀와 경험하고 싶었다.
--- p.243

“타비타 생일 파티에 아이를 데려가 보는 건 어떨까?” 내가 말했다. “애가 사람들과 소란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자고. 그런 거 해본 지 꽤 오래됐잖아.”
그러고는 우리 둘 다 속으로 신음을 했다. 마지막으로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갔을 때 일어났던 ‘아이스크림 다 토하기 대재앙’이 기억나서였다. 하지만 때는 10월 중간 방학이었고, 또 샘에게 하루에 딱 두 시간으로 엑스 박스 시간을 제한했어도 아이가 즐거이 지내기를 여러 날째라 조디가 이런 종류의 실험에 좀 더 너그러우리라 짐작했다. 내 진의는, 우리 둘 다 거기 가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면 뭐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겠냐는 뜻이었다.
“그래,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 행운을 빌어.” 조디가 말했다.
그 말과 함께, 부모의 책임이라는 공이 내 쪽으로 떼구르르 굴러왔다.
--- p.282

“가서 소 좀 봐도 돼?”
“학교에서 어떤 점이 네 마음에 안 드는지 얘기해주면 가서 봐도 돼.”
“잘 몰라. 어떤 때는 화가 나. 내가 나쁜 놈이라. 크리퍼처럼. 어떤 때는 내가 망쳐서 울게 돼.”
“뭐라고? 네가 뭘 망치는데?”
“전부 다.”
그러더니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울타리를 향해서 뛰어갔다. 아이가 신은 장화가 부드러운 흙 속으로 푹푹 빠졌다. 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아이를 따라가며 애가 한 말을 생각해봤다. 전부 다라니. 그래, 전부 다 어렵고 전부 다 힘들 것이다. 아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을 견디면 그다음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와 난타당하듯 세월 대부분을 보냈을 테니까. 아이가 마인크래프트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도 놀랄 일이 못 됐다. 게임에서는 모든 것이 깔끔하고 논리적이지 않은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아이의 삶에서 그렇게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 p.307

집으로 반쯤 갔을 때 몇 주 전에 정신과 의사와 예약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내일이었다. 바로 그때, 샘이 나를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진지하게,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빠, 지금 뭐 하는 중이야? 아빠는 갇혀있는 것 같아. ”
“그게 무슨 말이야?”
“가끔 나는 어떤 생각에 갇혀서 못 나올 때가 있어. 오래는 아니고. 그 생각이 계속 계속 남아서. 아빠도 생각에 갇혀있는 거야?”

--- p.408



“인생은 산책이 아니라 모험이야, 그래서 그렇게 힘든 거래.”

- 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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