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밤의 주방 욜로욜로 시리즈
마오우 지음, 문현선 옮김 / 사계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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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밤의 주방





-p.12


직책, 맹파. 직문 설명, 사람마다 기억과 입맛, 기호가 다르고 그 속에는 각각의 삶에서 아쉽고 부족한 점 또한 녹아 있다. 맹파의 일이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이 아무 미련 없이 길을 떠나게 끔 돕는 것이다.








지옥에도 주방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중국의 옛 전설 속 등장하는 염라대왕, 흑무상, 백무상, 맹파가 등장하는 <열여섯 밤의 주방>은 사후 세계의 지옥 주방을 배경으로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인간들이 이 생의 마지막 음식을 먹고 기쁨과 슬픔, 분노와 아쉬움을 내려놓고 떠난다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이 소설의 처음은 사후 세계에 온 한 노부인이 흑무상에게 이끌려 염라대왕을 만나 그에게서 ‘맹파‘의 임무를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맹파‘란 중국의 옛 전설 속 사람이 죽어 황천길에 오르면 생전의 기억을 잊게 해 주는 ‘맹파탕’을 망자에게 건네는 노파로 이 소설에서는 망자가 이 생의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지옥 주방에 오면 망자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차려주고 망자가 음식을 먹을 동안 생애의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주망등을 보며 망자가 풀지못한 한을 버리고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평생의 한을 풀지못한 영혼들이 모이는 지옥 주방, 그 곳을 찾아온 망자들은 맹파가 준비한 마지막 식사를 하며 자신의 생애를 보여주는 주마등을 보며 이 생을 놓치못하게 하는 ‘한‘을 내려놓고 떠난다. 지옥 주방에 온 망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음식들을 먹으며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는데 어떤 이는 자신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 먹었던 음식을 먹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무엇을 먹을지 몰라 고민하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그리워하는 사람이 좋아했던 음식을 먹기도 한다. 세상 살이 똑같은 삶은 없다지만 세상 살이 힘들고 후회스러운 건 매한가지인가보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망자들은 저마다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감정들을 지옥 주방에서 음식을 먹으며 풀어낸다. 이 소설 속 망자들은 마치 주변의 평범한 이웃같다. 그래서 사후 세계, 지옥 주방을 배경으로 하고 염라대왕, 흑무상, 백무상, 맹파가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이 소설 속 망자들의 사연이 친숙하고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혹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망자들의 삶을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해준다. 망자들이 맹파가 만들어준 마지막 음식을 먹고 위로를 받았듯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새 망자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맹파의 묵묵하지만 따뜻한 배려에 위로받는다. 또한 이 소설 속 맹파가 해주는 음식들은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게 한다. 마치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소설책인지 요리책인지 모를만큼 세세한 조리법과 요리 삽화를 실어서 마음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따뜻하게 채워주지만 배는 마치 눈 앞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듯한 세세한 묘사로 점점 허기지게 한다. 그래서 소설만큼이나 각 에피소드들에 등장하는 요리들이 소설 속 망자들의 사연만큼이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의 저자는 글쓰기를 향한 열정이 이제는 더는 찾아보기 힘들 때 이 소설을 통해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화려한 문체에서 담백한 문체로 바뀌고 용을 무찌르는 영웅에서 상냥한 묘지기로 바뀐 저자의 글처럼 이 소설은 마치 심야식당의 판타지 버전처럼 상냥하고 다정하다. ‘맹파‘와 지옥 주방이라는 다소 독특한 소재뿐만아니라 때론 힘들 땐 위로의 한마디보다 따뜻한 밥한끼가 더 위로가 되는 것처럼 이 소설은 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온기를 담고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죽음을 다루지만 무겁지는 않은 이 소설을 위로와 토닥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만약 2편이 나온다면 모히칸 머리를 한 염라대왕과 백무상 그리고 맹파의 이야기를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 p.360


사람들은 열엿새 밤이란 기울기 시작하는 달을 의미한다며, 모든 일이 완벽함에서 결핍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마치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룰 수 없고 아득히 멀기만 한, 망설임으로 가득한 길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이미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어도 우리는 다음 순간 훨씬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도리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나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가게로 돌아와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나는 영원히, 영원히 당신을 만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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