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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디 아더 피플'은 당신이 증오하는 사람을 죽여드립니다.
단, 당신은 다른 살인 계획에 협조해야 합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들 알고 있다.
견딜만한 억울한 일과 견디지 못할 만큼 크나큰 억울함을 겪으며 삶이 이어진다.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조차도 세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견딜 수 없는 불행이 자신을 덮칠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는다.
도저히 견뎌지지 않는 슬픔 앞에, 분노와 절망 앞에 '디 아더 피플'이 손을 내민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누군가를 앗아간 그 사람에게 대신 복수해 주겠다고.
지금 당신이 겪는 그런 지옥의 고통을 그 사람도 똑같이 겪게 해주겠다고.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우리를 간신히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한 가닥 희망의 메시지일까?

하지만 결국에는 똑같아질 것이다. 남들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 시간이 그들 없이 흘러가버릴 것이다. 나머지 세상은 계속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던 사람들만 승강장에 남을 것이다. 떠나지 못하고, 불침번을 접지 못하고.
실종은 죽음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더 나쁘다. 죽음에는 끝이 있다. 죽음에는 슬퍼하는 시간이 허락된다. 추모하고 촛불을 켜고 꽃을 놓는 시간이. 떠나보내는 시간이.
실종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림보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지평선 위로 희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절망이 콘도르처럼 맴을 도는 낯설고 암울한 세상에서.
_ P.27
게이브에게 그날은 그냥 흔한 많은 날들 중 하루였다.
도로 위였고, 짜증 날 만큼 차가 막혔다.
막히는 도로 위에서 할 일이라고는 앞차를 쳐다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때, 앞 차의 뒷 유리창에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게이브의 딸 이지의 얼굴이.
'아빠'라고 부르는 입모양을 분명히 봤는데 순식간에 아이는 사라졌다.
잘못 본 걸까.
지금 엄마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딸이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처음 보는 낡은 차 뒷좌석에 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게이브는 그 차를 따라간다. 너무 많은 차의 범람 속에서 결국 놓쳐버리고 말았지만.
휴대폰은 방전되었고, 불안은 자꾸만 몸피를 키우며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간신히 휴게소에 들러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닌 경찰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날, 가족을 잃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사람들이 말하길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증오와 가슴에 맺힌 응어리라고 한다. 아니다. 인간을 망가뜨리는 건 희망이다. 기생충처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상어 위에 매달린 미끼처럼 만든다. 하지만 희망이 인간을 죽이지는 않는다. 희망이 그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_ P.22
불행은 그렇게 찾아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얼굴로.
평범했던 어느 날, 집안으로 들어온 강도에게 아내와 딸이 살해당하는 일상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생각했던 그 어떤 불행도 그런 얼굴을 하지 않았었다.
기껏해야 이혼을 하게 되지 않을까, 같은 불행의 얼굴을 짐작했을 뿐.
그런데 더 절망적인 것은, 그는 그날 분명 도로 위 낯선 차의 뒷좌석에서 그의 딸 이지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희망이 그를 더 절망적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잔인한 실종의 이름으로 그의 세상을 멈추게 만들었으니까.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그는 시간을 견뎠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 도로 위에서 끊임없이 달리고 달리며 아이를 찾아다니길 몇 년째, 이지는 정말 살아있을까?
그가 그날 본 것은 정말 이지의 얼굴이었을까?
착각은 아니었을까?
살아있다면 아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이가 살아있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아빠의 절망으로부터.
제목인 '디 아더 피플'과 맞닿는 지점은 어디쯤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의 절망의 발걸음을 함께 걸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사건의 추이만큼이나 이 앞부분의 이야기가 더 마음을 끌어당겼다.
상상하지 못했던 불행과 마주했을 때, 절망보다 잔인한 희망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견딘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추리 스릴러 장르를 읽으면서 문장이 너무 좋아서 감탄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특히나 번역서는 더더욱이.
그런데 이 책은 까마득히 깊은 마음이 담긴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스토리뿐 아니라 문장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책이었다.
C.J. 튜더가 이미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였던지라 읽지 않아도 익숙한 작가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 또한 그 사람들 틈에 이름을 올려야겠다.

"하지만 죽이지는 못하겠지. 너는 살인범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너는 화가 나고, 무력하고 속수무책인 사람이 된 것 같겠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거든. 어떤 놈이 네 딸을 성폭행했는데 경찰에서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해. 어떤 운전자가 네 엄마를 뭉개고 지나갔는데 운전면허가 취소되고 그만이야. 의사의 과실로 네 아이가 죽었는데 그 의사는 경고를 받고 끝이야. 인생은 공평하지가 않지.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런데 누가 와서 그걸 바로잡아주겠다고 해. 그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너와 같은 고통을 안기겠다고. 네 손은 더럽힐 필요 없어. 너는 절대 엮일 일이 없어."
_ P.164~16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인간다운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과연 짐작조차도 불가능한 고통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이런 제안이 가닿는다면 그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을 과연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우리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
범죄가 무엇인지, 죄를 짓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가끔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너무 끔찍한 범죄가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있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인간다움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일 뿐, 우리가 당사자가 되었을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짐작조차 불가능한 끔찍한 범죄 앞에서 우리의 정신은 온전할 수 있을까.
옳음을 끝끝내 지켜낼 수 있을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주는 스릴러였고,
스릴러에 충실하게 반전의 묘미도 꽉꽉 눌러 담은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스릴러가 꼭 챙겨야만 하는 기본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재미와 반전일 것이다.
거기에 깊이와 문장력까지 플러스가 되었으니 재미없기가 더 힘들 것 같다.
C.J. 튜더의 전작들 또한 읽어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출간될 신작들 또한 열심히 챙겨 읽게 될 것 같다.
묵직하게 남는 게 있는 스릴러를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비극의 포인트는 말이 안 된다는 데 있는데, 사람들은 비극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냥 벌어진 일인데.
P.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