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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는 밤'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김경욱' 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뿔테안경을 쓰고 나온 그는
왠지 그냥 봐도 작가구나 ... 싶었고, 또한 남편이구나 싶었다.
그가 책을 소개하고 이야기 할때
잠깐동안 과연 저 책속에 그의 이야기는 얼만큼이 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결국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일테니까.
궁금했다.
몹시.
동화의 해피엔딩 뒤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것일까?
그들의 삶은 해피엔딩으로 쓰여진 그곳에서 멈추는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운명을 만나게 되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내야만 하는 것임을 우리는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단 한번도 해피엔딩 너머의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가.
나는 결혼한 여자다.
몇일뒤면 여섯번째 결혼기념일을 맞는다.
아이가 둘 있고,
침묵의 왕에 완벽하게 들어 맞는 남자와
눈물의 여왕에 너무나 어울리는 여자가 되어
세상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삶이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탐내고 욕심내는 빛나고 화려한 삶이 아닌,
그저 고만고만 하고, 적당하게 지리멸렬하며, 남루하지만 소박한.
길가면 어디에서든 마주칠수 있는 우리네의 평범하다 못해 조금은 지루한 삶을 나 또한 살아내고 있는것이다.
그렇기에 더 궁금해졌다.
김경욱 이라는 작가가 나에게 과연 무엇을 안겨줄까?
사랑은 일상이 되고... 시간에 퇴색되어 빛바래지고 있는 지금,
평온하지만 멈춰있는듯 심심해져만 가는 내 결혼생활에 머릿속에 섬광처럼 날아드는 깨달음을 주지는 않을까.
혹은.
여러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그들의 성급함과 어리석음을 통해서
견고하게 내 가정을 지키도 있는 나 자신을 대견해하며 위안 할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그들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좀더 노력할수 있지 않을까.
책은.
손에 든 순간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술술 막힘없이 잘 읽히는 것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또한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하는 문체도 좋았다.
문장하나하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세심하고 날카로우면서 세련되었다.
놀라울 만큼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선사하는 작가의 글에 난 단숨에 매료될수 밖에 없었다.
동화는.
이 책에서 거의 모든 문단에 골고루 배어 등장한다.
개구리 왕자가 된 침묵의 왕과
눈물의 여왕.
그들의 생각과 상황에 미묘하리 만큼 매치를 이루는 여러편의 동화들.
한번쯤을 읽어봤거나 ...혹은 들었음직한 이야기들....
글은 현대를 담고 있지만, 몽환적인 동화의 세계와 너무 잘 어우러져 ...... 그들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감춰주기도 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질 운명이였던 것처럼.
그들의 잘못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사실은 그들의 미숙함이...자존심이...허영이...이기심이... 그들의 관계를 진흙탕속에 쳐박아 넣고 있는것 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미숙하고 자존심 강하며, 이기심에 가득찬 허영덩어리 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게 만든다.
나는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역시나 나도 신이 아닌 인간인 것을 어쩌겠는가.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다.
가슴속에 살고 있다는 유아기적 어린 자아에 대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지만.
남자와 여자의 핀트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시선의 차이 라던지
얼마나 쉽게 우리는 오해속을 걸어다니며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소리없이 묻히고....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진실로 둔갑하는것 일까....
침묵은 금이라 했다.
살아 가다 보면 오히려 침묵하는게 더 현명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침묵은 얼마나 많은 오해와 망상들을 불러 일으키는지.....
부부에게 필요한건 현명한 침묵이 아니라 숨김없는 소통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상대가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선 수없이 많은 망상들과 경우의 수가 등장한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결국엔 진실의 옷을 뒤집어 쓰고... 우리를 잘못된 선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만다.
침묵이 평안을 가져다 주는게 아니라
외면과 단절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 부부사이에선 훨씬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 내내 나를 씁쓸하게 했던것은.
가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혹은 빛나는 삶, '왕자'나 '공주'에 대한 환상 이었다.
그 환상이나...그 삶에 대한 질투가 그들을 좀먹었고, 솔직할수 없게 만들었고, 그들을 위선자로 내몰았다.
결혼에 가장 중요한 첫번째는 신뢰가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들에겐 그것이 없었다..
그저 가지지 못한것, 혹은 환상속에 등장하는 '왕자'나 '공주'에 대한 허상에 사로잡혀서... 현실속의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지금 함께 하는 것. 내 삶에 대한 만족이 그들에겐 부족했다.
그래서 여자는 서정우를 만나야만 했고
남자는 한서영과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처음에 여자를 이해할수 없었다.
외려 남자가 이해가 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결혼생활에 가장 큰 문제는 '실직'이 아니라 여자의 '환상'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정우에게 향할만큼 그녀의 마음은 남자를 향해 뿌리내리지 못했던게 아닐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결혼생활에 대한 짜증과 분노.
그런것들에 가려 여자는 정작 남자를 제대로 바라봐 주지 못했다.
물론 남자도 잘한것은 없다.
하룻밤이라고 해도 결국은 불륜인것이고, 남자또한 여자처럼 지나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과 환상속에서 흔들렸다.
두번째 결혼 생활에서 또한 가장 큰 문제가 내 눈엔 여전히 여자였다.
물론 남자도 잘한것은 없다.
하룻밤이라고 해도 결국은 불륜인것이고, 남자또한 여자처럼 지나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과 환상속에서 흔들렸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 자체는 그게 아니였지만....)
어쩌면 이 글이 남자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에...무의식 중에 작가는 남자를 좀더 잘 변호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를 이해할수 있는건 세상에 여자 뿐이라지 않는가.ㅋ
그토록 복잡미묘한 '여자'라는 동물에 대해 이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써내릴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놀라울뿐이지.
어쨌든 나는 여자이면서
그 여자를 완전히 이해할수 없었다.
차라리 책망에 가까운 마음이었지....
아마 단 한순간도 그런마음으로 결혼생활을 유지 해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미친듯이 불타는 연애를 해서 결혼하진 않았다.
결혼 생활 또한 여자와 별다를것이 없다.
남편은 축구중계 대신 주말엔 잠을 잔다.
잔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는 것 투성이고, 나는 그냥 바꾸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나 조차도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누구를 보고 왈가왈부 한단 말인가.ㅋ
서로가 서로를 뜯어 고치다 보면, 어느 순간 곁에 서있는 낯선 타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물론. 인간은 그렇게 쉽게 바뀔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만 말이다.
여자와 내가 별반 다를것 없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자와 남자는 무려 두번의 헤어짐을 나누고 또 다시 마주 서게 되지만 (물론 그후에 이야기는 독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꾸준하게 육년간의 결혼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내 안의 또다른 아이가 너무 성숙해서?ㅋ
남편의 또다른 아이가 너무 착해서?ㅎ
아마도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다르고,마음 가짐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내 남편은 침묵의 왕이다.
나 또한 눈물의 여왕이다.
물론 함께 살다 보니.....내 눈물이 흐르는 날보다 마른날이 훨씬 더 많아졌고, 남편도 서서히 침묵속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 시간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육년이라는 시간의 힘과 서로에 의해서 이루어 진것이다.
그들에게 인내 있었다면
솔직함이 있었다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헤어짐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을 텐데.
남자와 여자는 참 다르다.
정말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 자체가 다른것이다.
그런 다른 두사람이 함께 살아 간다는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 것인가.
나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었었다.
덤덤해져가는 결혼생활에 대한 환기...가 필요했던 것지도 모르겠다.
다들 이렇게 사는것이라고...무언가 새로워져 보고 싶어서 지금의 평화를 깨고 나면 결국 남는건 자책과 허무 뿐이라고.
인생이 꼭 다이아몬드 처럼 빛나지 않아도 괜찮은 거라고.
지금 가진 행복이 진짜 행복인 거라고.
그런 다독임이 필요했었나 보다.
책속의 인물들이 나를 대신해 삶의 실패와 깨달음을 얻어 주기를 바랐나보다
장미가 아닌 채송화인 내 삶에 만족하며 살기 위해서.....말이다.^^
뭐 내가 읽고자 하는 의도와는 조금 달랐지만.
'동화처럼'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고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었다.
김경욱. 이라는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을것 같다.
그의 문체가 그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을 모양이니까.....^^
<책속에서 >
'와인이나 한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미는 모르지 않았다.
와인은 커피에 비하면 한층 노골적이다.
커피는 불투명한 잔에 따르지만 와인은 투명한 잔에 붓는다.
그만큼 모호함이 줄어든다.
커피와 달리 와인은 몇 년산인지를 따진다.
분위기가 형이상학적이기보다 생물학적이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와인은 피를 연상시킨다.
장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빨간 모자가 할머니 집에 들고 가는 것도 케이크와 와인이었다.
늑대의 소굴에 발을 들이는 것도 늑대와 한 침대에 눕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두렵지 않다는 것. 처음이 아니라는것.
------> 그의 이런 창의적인 시선이 좋다. 새롭고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