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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책을 덮은 지금.
제목을 자꾸만 되새김질 하고 있다.
『 7년의 밤 』
그들의 인생을 7년동안 지배했던 끝나지 않은 7년전 그날의 밤.
그 밤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제목에 올라 앉았는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겠지.
나는 처음 제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떠올려 보아도 이미 읽어버린 책의 내용에 사로잡혀서 더이상의 생각이 어렵다.
책을 읽고난 후에 꼭 리뷰를 남겨야겠다 는 다짐을 했다.
예전에 읽은 책들의 감상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내용마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요즘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죽어라고 읽고, 미치도록 열광하고, 꼭 끌어안고 소장하는 책의 표지를 보면서 낯설음을 느낀다니....
막상 다시 읽으면 조금씩 스토리가 생각이 나긴 하지만
그 예전에 받았던 그 느낌이나 그 감정들은 도저히 되돌릴수가 없다.
그게 슬프다.
내가 십대에 느꼈던 그 느낌.
내가 스무살에 느꼈던 그 느낌.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책을 통해서 교감했던 그 감정들을 이젠 떠올릴수 조차 없다는 것.
글로나마 남아 있었다면 ... 그때의 나를, 그 책과 처음 만났던 그 감정들을 잊지않고 떠올릴수 있을텐데.....
책은 여전히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내 그릇은 그 책을 처음 읽었을때, 두번째 읽었을때, 세번째 읽었을때....다르게 담긴다.
내 머리가, 내 마음이, 내 감정이 같은 책을 다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책이 어느 순간 최고의 책이 되기도 하고
최고였었던 책이 최저로 내려 앉기도 하는 것이다.
여전히 책은 그대로 인데.....
7년의 밤.
책을 읽고 나서 ... 내 감정을 글로 옮기는게 이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적은 처음이다.
좋다, 싫다 ... 딱잘라 말할수 있는 책은 감사한 거구나.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나.
미치도록 빠져서 읽고..... 그 음울함에 잠식당해 숨막혀 꺽꺽 대면서도 ... 글에서 한발짝도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읽는 내내 나는 세령호에 서 있었고, 안개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등뒤에서 무언가 훅 ~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안개가 잔뜩 낀 밤에 한가운데서
나는 현수가 되었다가, 승환이 되었다가, 은주가 되었다가, 서원이 되었다.
차마 세령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영제는 더더욱.
그렇게 똑똑하고 영악하고 탐욕스러우면서 소름끼치게 무서운 미치광이는 절대!
이해하고 싶지도 마주치고 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읽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 조차 힘들었던 캐릭터 였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지는 밤이 있다면
결코 영제만은 마주치지 않기를.
내 안의 악마와의 싸움 만으로도 지쳐서 질식해 버릴것 같은 그런 밤.
세상이 정해놓은 틀조차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기어코 그 빚을 갚고야 마는 영제마저 얹어 받기에는
운명은 가혹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나에게 가장 처참하고 참혹한 죽음의 직구를 던진게 아니겠는가.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냥 7년전 그 밤에 일어났던 우연과 두려움과 공포가 겹친 최악의 선택과 그 결과가 빚어낸 끔찍한 현실만이 아니라...
돈과 권력앞에 외면당하는 가정 폭력,
사람들의 편견과 지독한 따돌림,
나를 위한 이기심과 인간의 절대적인 나약함,
눈감고 귀막고 오로지 일신의 안녕을 위한 놀라운 자기합리화,
사실과 진실의 그 미묘한 차이.
미치도록 넘쳐나는 그...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분위기와 스토리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질문들 마저 내게 문득 문득 건네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몹시도 우울하고 침울했고,
문득 두려웠다가 소름끼치고 숨이 막혔다.
세상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을까?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의 얼마만큼의 차이를 보일까?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게된 서원은 과연....행복했을까?
외려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더 많아진게 아닐까 싶어서 .... 진실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사실과 진실의 그 간극의 차이가 때론 너무 어마어마 해서 무섭다.
그의 등뒤로 떠밀린 수많은 목숨들의 무게만큼.......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자기 자신인 것처럼
어쩜 그렇게 날카롭고 적랄하게 그들의 감정을 드러내 보일수 있었을까?
어느 한곳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게 꽉 조여진 감정선과 사건들과 캐릭터 들.
놀랍도록 촘촘하고 손끝이 닿으면 튕겨져 나올것 처럼 탄탄한 문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궁금했다.
이책을 몇년 동안 집필했다는 대목에선....
'당신. 지금. 제정신 입니까?' 하고 묻고 싶어지기도 했다.
숨이 막혀서 템포를 멀리 두고 읽어내리기에도 힘들었던 책을
무려 몇년동안 쓰고 지우고 고치고 .... 그 속에서 빠져 지냈다니.
미치지 않고 배겨날수가 있을까?
내 정신줄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싶다.
너무 음울하고 음침해서 나까지 절망의 나락으로 무너져 내리는것 같은데.....
작가는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견뎌냈을까?
작가 후기를 읽다가....
'모두에게 축복을....' 이라는 마지막 글에 웃음이 터져 버렸다.
이토록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 글이 있으려고...ㅋ
작가님이 마지막에 잠깐 호흡이 흐트러지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좋은 말 건네서 나쁠건 없지만....
작가 후기까지가 책의 끝이라고 보는 나에겐....그 책을 통틀어 가장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었던 것 같다.
여운이 상당히 길어서
너무 힘들었던 책이었다.
우리 문단의 미래가 밝아 보여서 괜히 뿌듯했던 책이기도 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발견이 몹시도 즐겁다!
일본도서와 외국 작가들의 책에 우리 문학들이 좀 많이 밀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힘있는 작가들이 자꾸자꾸 글을 써내야 기울어져 가는 독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을수 있을것 같다.
(나만 기울었던 걸까?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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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서원의 귀에 울렸던 세령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서원을 데리고 가고 싶었던 것일까, 서원을 살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책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채 내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