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밤 -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유희열.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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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산책.

낯선 듯 닮은 두 단어가 만나 아름다운 밤 산책이 탄생했다.

어둠 속에서 더 반짝이는 별빛처럼, 밤을 만나 산책은 더 깊고 다정해졌다.



한낮의 풍경이 선명하고 쨍한 사진 같다면, 밤의 거리는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아웃포커싱 된 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몰랐던 것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시야는 흐릿한데 감각은 한층 예민하게 깨어난다. 바람이, 나무와 꽃이, 공기의 질감이 거리마다 새롭게 말을 걸어온다.

프롤로그_ P.4



숙한 풍경이 낯설어지는 시간.

낮과 밤은 같은 공간을 다른 감각으로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밤을 천천히 걸으며 한낮의 눈부심에 놓쳤던 풍경들을 새삼 더듬어 본다.


밤 산책, 시작!





희열 님의 감성이 밤과 산책을 만나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서울의 밤을 사계절을 통과하며 걸은 흔적이다.

다정하고 깊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본 눈빛이 글에서도 읽혔다.

나도 모르게 문장을 쓰다듬고는 했다.


괜히 긴장하며 걷게 되는 밤길을 이렇게 느긋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다니.

밤의 산책이 가지는 묘한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서울의 길을 잘 모른다.

서울의 얼굴도 잘 모른다.

낮의 얼굴도 모르는 내가 밤의 얼굴을 궁금해할 일이 있었을까.

그저 낯설고 복잡하고 높고 빽빽한 건물들로 서울을 기억할 뿐이었다.


희열 님이 들려주는 서울은 좀 달랐다.

마치 작은 소도시의 골목처럼 정답고 친근했다.

내가 본 차갑고 높고 단단하고 번쩍이던 빌딩 숲은 어딜 가고,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이 이렇게도 많은 걸까.

나는 지금껏 서울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골목을 산책한다는 건 세월의 두께를 헤아리는 동시에, 나이를 먹어가며 달라진 나의 시선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했다.

프롤로그_ P.4



오래되고 좁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골목길을 걸으며 '산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동안은 산책을 하러 일부러 계단이 이어지는 골목길을 선택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공원이나 나무가 심어진 길, 하천, 그도 아니면 그냥 동네를 걷는 정도가 내 산책의 전부였다.

동과 동이 바뀌고, 골목을 걷다가 계단을 오르고,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긴 산책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도 걸었다.

사람에 치이는 공간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단어가 '산책'인데, 희열님은 그 속에서도 변함없이 산책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하긴 사람이 없는 서울보단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서울이 더 익숙하긴 하다.

그게 진짜 서울의 익숙한 얼굴이기도 하고.


희열 님의 걸음을 함께 걷다가,

산책은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걷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오래된 반짝임을 따라서 시간의 틈새를 걷다가

도시의 혈관이 지나는 길목에서 _ P133



산책은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밤은 우리를 더 깊게 만든다.

그래서 밤의 산책길엔 더 깊고 은밀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을 듯하다.

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마음과만 대화 할 수 있는 시간.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시간들이 간절하다.

내 마음결을 쓰다듬을 수 있는 시간.

방치되어 있던 다친 마음 결들을 토닥 토닥 다독여줄 시간.


걷는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산책이 실제로 마음의 우울을 치료하는데 특효약이라고 하는데, 낮의 소란스러움보다 밤의 차분함이 좀 더 좋은 연고가 되어 주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 아래에서 새삼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길과 나무들.

그 속을 거닐며 한낮의 피로를 덜어내고, 나도 진짜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 나는 밤을 좀 무서워한다.

밤에 혼자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일이 내겐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동안 밤 산책의 매력에 빠져 어디든 걷고 싶어졌다.

당장은 혼자선 용기가 나지 않아 남편의 손이 필요하겠지만, 어느 날엔가 나 혼자 조용히 밤 산책을 즐기는 날을 기대해 본다.


종종 여름밤에는 남편과 함께 동네를 거닐곤 했다.

여름밤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가 밤을 희석해 줘서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봄밤도, 여름밤도, 가을밤도, 겨울밤도 모두 만나보고 싶다.


어둠과 불빛 아래, 계절을 덧입고 선 나무와 삶의 흔적들은 내게 어떤 말을 건네줄까.

그 속에서 나는 또 얼마나 깊어질 수 있을까.



이제는 안 하던 짓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걸어봐야 마주칠 수 있는 뜻밖의 풍경을

좀 더 많이 보며 살고 싶어졌다.

그러면 낯설고 새로운 풍경들 속에서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빛과 물과 가을이 쉼 없이 노래하는 밤 _ P.173





채널S에서 '밤을 걷는 밤'을 방영 중이다.

덕분에 책과 함께 희열님이 걸었던 곳들을 좀 더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과 글만이 전해주는 울림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서 두 배는 더 좋았다.

물론 글에서 좀 더 유희열만의 느낌이 짙다.

토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글 쪽으로 좀 더 마음이 기울 것만 같다.

그가 바라본 세상을 TV로 함께 보고, 그가 사색한 흔적들을 책으로 더듬으며 함께 '산책'을 할 수 있었던 시간.

새롭고 특별한 밤 산책이었다.


TV에서 방영이 종료되더라도 사실 책만으로도 충분히 밤 산책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밤의 사진과 그가 걸었던 길들을 지도로 그려 담아두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의 손을 잡고 밤 산책 속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일러스트를 그리신 분께서 희열님을 똑 닮은 캐릭터를 책 곳곳에 심어 놓으셔서 볼 때마다 웃음이ㅎㅎ)

아마 서울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추억여행이 되어 줄 것 같다.

물론 나처럼 서울이 낯선 사람들에게도 그 낯섦으로 새로운 밤 산책길이 되어 줄 것이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희열 님의 손을 잡고 떠난 밤 산책길.

촉촉하고 말랑해지는 밤이었다.



길은 언제나 삶을 가로지른다

길은 언제나 삶을 가로지른다 _ p.101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느낌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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