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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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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 포르투갈 여행 중 들른 파티마는 <파티마의 기적>으로 유명한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세 아이들에게 전한 3가지 예언을 통해 전쟁 종식을 알려 기적을 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지순례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아 피곤했지만 나갔다. 매주 저녁 전세계 평화와 한국 통일을 위한 미사가 열린다고 하기에 춥고 늦었지만 같이 참여했고 전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마음이 뭉클하고 벅참을 느꼈다. 그리고 담 날 새벽 다시 가서 할머니께 드릴 성수를 떠오며 다시한번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게 성당이나 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받는 곳이다.  몇 년 전,  작고 어린 여자 둘이 유럽여행을 하며 긴장과 불안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들른 성당(인지 교회인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지만)에 가서 사진을 찍다 앉았는데 금방 잠이 들었고  둘이 동시에 깨어났을땐 자면서도 양쪽손에 여권가방과 카메라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면서 옆을 봤는데 오스트리아 할아버지가 괜찮아 괜찮아 하는 식의 표정으로 웃고 계셨다. 쑥스러워 금방 일어나긴했지만 30분정도의 낮잠 후 받은 에너지로 남은 여행을 무사히 완료했었다. 그 후 해외에 나갈때마다 사진을 대충 찍고 앉아있는데 늘 따스히 위로받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이다. 물론 아직 수도원을 가보진 못했지만 마음이 힘들어지면 연례 행사처럼 찾아드는 책이다. 새로 나온 2권은 1권보다는 덜 와닿지만 3권이 나오기전까진(?) 이제 2권을 번갈아가며 위로를 받을 것 같다.

 

 

어떤 수사님은 1970년대에 유리 온실을 세우고 당시로서는 엄청 고가인 바나나를 키우셨어요. (기억난다. 1980년대 초 바나나 큰 것 한 손에 이십만 원이었다. 그때 최저임금이 십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 바나나 나무 밑에 땅의 지력을 돋운다는 지렁이를 키웠죠. 그리고 그 지렁이를 이용해 토룡환인가 하는 약을 만드셨어요. 그게 말하자면 대박이 난 거예요. 당시 돈으로 수억 원어치나 팔였다고 해요. 돈도 엄청 벌었는데 어느 날 고용인들과 불화가 생겼어요. 일이란 게 그렇듯 일단 갈등이 시작되면 갈등을 일으킨 본질보다 그것을 둘러싼 감정이나 인간관계 이런 게 더 문제가 되는 법이죠. 그때도 그랬다고 해요. 당시 아빠스(대수도원장)께서 결단을 내리셔서 수도원이 그 업체에서 손을 떼게 하셨어요. 돈 벌자고 신자들과 싸우고 노동자들과 불화하고... 수억을 번다고 해도 이건 수도자들이 할 짓이 아니다! 이러곤 그게 `끝!`이셨다지요."
"... 그 수사님 너무 상처받으셨겠다."
내가 물었다. 나의 상황도 겹쳐졌다. 그러자 고 신부남이 대답했다.
"그러셨겠죠. 그런데 그분, `인간이 다 그렇다!` 한마디 하시고는 그냥 조건 없이 손을 떼셨어요. <P.52>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P.125>

헤어지면서 나는 그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그걸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당신은 곧 날 잊겠고 수많은 방문객들에 묻혀 다시는 떠올리지 않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오직 이 말을 하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려 여기까지 왔다고.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내 독자들을 기억했다. 그들 하나하나를 솔직히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다가, 이것이 내가 내 독자들에게서 들었던 바로 그 말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그러쥐고 하느님께 들었던 바로 그 말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그러쥐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내가 이렇게 절박해 보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감사를 절절히 드리고 싶은 대상을 가져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내 독자들을 조금은 번거롭게 생각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작고 마르고 휘날리는 흰 수염과 거기서 작별했다. 세계적인 작가, 전 유럽의 성자답게 그분은 시간 단위로 스케쥴을 가지고 계셨다. 물론 그 스케쥴 속에는 기도와 침묵이 시간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다.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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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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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솔직하게 응한 인터뷰이 서민의 글을 읽고 모든 사람은 다 각자 힘든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사람만이 미래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과 사상사에 글을 싣고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더군다나 알라딘 블로거 조상격인 기생충학 교수.

그의 앞날이 (애정을 담아) 더 많이 기대된다.

지: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서: 적극적 안락사가 약물을 투여해 환자를 죽게 하는 데 비해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 치료를 안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대부분을 마지막 1년에 쓴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의식도 없는데 비싼 장비의 도움으로 그냥 누워만 있는 게 무슨 보람이 있을까 싶어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내가 저렇게 되면 절대로 치료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자기 가족이 그렇게 되면 말이 달라지잖아요.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죠.
<p.208>

지: 무상 의료가 되는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어떤가요?
서: 제가 알기에는 독일만 해도 공보험하고 사보험이 같이 있어요. 공보험 환자들은 일단 찬밥 신세를 받아요. 사보험은 부자들이 주로 들고, 예약도 빨리 되는데, 공보험에 전화하면 두 달 기다리라고 이야기한대요. 독일은 최고 고객이 사우디 왕자들이거든요. 걔네들을 위해서 초호화 병실을 지을 정도로 차별을 두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나라가 차라리 독일보다 낫다고 봅니다. 미국만 해도 보험회사가 몇 백개가 되는데, 어떤 병원은 A보험이랑 계약하고, 그 옆 병원은 B 보험이랑 계약하고 이런 식이라서, 자기는 A병원이 가깝지만 훨씬 먼 B병원에 가야 보험을 적용받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우리는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과 계약하도록 강제했으니, 의료천국이죠. <p.211>

오죽하면 의사들도 반대를 하겠어요. 의사들이 잘 먹고 잘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건강보험체제도 의사들한테 불리한 체제거든요. 그렇기는 한데 의사들의 목표가 수가를 좀 올리는 거면 몰라도 민영화는 아니거든요. 미국 같이 의료 민영화가 된 나라의 실상을 보고도 우리나라에서 의료 민영화가 추진되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막아야죠. 얼마 전에 이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되었잖아요. 의료 자회사를 세울 수 있교, 의료를 통해 얻은 이익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는 거는 사실 의료 민영화의 단초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잠재적 환자인데 말입니다. <p.228>

저는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면,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한 달에 3만 원씩만 더 내면, 민영 의료보험 필요 없이 완전히 건강보험료로만, 병원에 가서 우리가 최고로 많이 내야 1년에 100만 원을 내는 그런 시대가 온다고 믿어요. 지금 의료비 중 자기부담률이 40퍼센트인 것 아세요? 병원비가 100만원이 나왔으면 40만원을 내야 되는 거죠. 40만원이 별것 아닐지는 몰라도 1억 원이라고 하면 4,000만원을 내야 되잖아요. 그래서 큰 병 앓으면 집안이 거덜 나는데요. 이 보장률을 90퍼센트까지만 올리면 치료비가 1년에 1억 원이라고 하면 1,000만원만 내면 되는데요. 그걸 조금만 조정해서 100만원 이하로 부담하는 볍을 만들자고 몇몇 단체들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사실 건강보험료는 더 낼수록 우리한테 좋은 거예요.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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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2
태원준 글.사진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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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간 세계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 책. 나폴레옹처럼 저자에게도 불가능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은 웃고 있지만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그러니 돌아보지 않을께요. 그리고 원준, 몸 건강히 엄마 잘 모시고 끝까지 여행 잘 마쳐야 해! 우리 꼭 다시 보자!"

(세상에나, 아직도 천사가 존재했었어?)-177쪽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1970년,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지난 과오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독일인이라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뱉으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폴란드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시들어가는 데에 일조했다. 이를 계기로 빌리 브란트 총리는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4년, 바르샤바 민중봉기 60주년 행사에 참여한 독일 슈뢰더 총리도 바르샤바 볼스키 국립묘지에 헌화를 하며 이런 말을 남겼단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몸을 수그립니다."
이후 독일은 자발적으로 자국의 나치 전범들을 찾아내 모두 수감시켰고 응당한 죄의 대가를 물었다. 아울러 과거사를 책임지기 위한 해당 부서를 마련했고, 나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국의 젊은이들을 폴란드에 파견, 나치에 의해 삶을 유린당한 이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도록 원조했다.
-210쪽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필리핀에서 만났던 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 우리는 스페인에 350년을 지배당했고, 미국에 80년을 지배당했어. 하지만 고작 3년간 우리를 지배한 일본을 가장 악랄하다고 말하지. 그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잔인하게 우리를 대했거든. 그리고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어. 용서하기 힘든 나라야." -211쪽

안드레아스의 설명을 맞받아치며 마리나가 해준 이야기가 압권이다.
" 이런 일도 있었어. 스웨덴의 정치계를 주름잡던 유명한 여성 정치인이 하루는 개인적으로 쇼핑을 나갔다가 지갑을 안 가져온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래서 `토블론`이라는 초콜릿 두 개를 국가 법인 카드로 긁어버린 거지. 달랑 초콜릿 두 개를 말이야. 근데 회계 처리과정에서 이 사실이 알려졌어. 그와 동시에 전 국민이 분노에 휩싸였고 여성 의원은 당연히 의원직에서 물러났지. 또 그녀가 속해 있던 정당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어. `워터게이트` 사건에 빗대어 `토블론게이트`사건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니까. 이러니 정치인들은 청렴할 수 밖에 없고 국민들도 그런 정치인들의 정책을 신뢰하게 되는 거지." -243-244쪽

장담컨데 베를린은 과소평가된 도시다. 물론 독일에는 하이델베르크나 로텐부르크처럼 예쁘장한 도시들과 관광객들이 앞다투어 몰려가는 뮌헨이 있지만 베를린은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베를린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곳이 지니고 있는 역사 그 자체다. 시내 한가운데서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부르크 문, 찰리 검문소 등 독일 통일의 기념비적인 건물을 볼 수 있으며 세계대전과 나치의 중심지였기에 카이저빌헬름 교회와 홀로코스트 추모비와 같은 역사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271쪽

우리는 마치 걷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처럼 길 위에 섰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 사이를 여행하며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넘실대는 대서양 위로 그간의 모든 여정들이 빛을 내며 흘러간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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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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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112쪽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라면 절대 알 수 없을 감정. 우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토를 줄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감정. 함께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결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쓸쓸한 트랙은 <멀리서>라는 곡이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객원 가수 김지혜 씨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 위에 사람들의 소리가 겹친다. 텔레비전 소리 같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웃고, 환호하고, 박수 치고 있다. 그들이 환호하고 돌아가는 시간의 어두운 골목에서, 웃음과 박수가 모두 끝난 후의 적막 속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 위로 보이는 어두운 천장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은 순식간에 그들을 기습 공격할 것이다. 순식간에 심장을 후벼 파고 우울을 극대화할 것이다.
외로움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그게 훨씬 덜 아프다. 외롭지 않다고 자신을 세뇌하다가 어이없는 한 방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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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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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봐요. 삶이 비극이란 말은, 다시 말하면 비극적이지 않다는 말이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정말 슬픈 일들로 가득해요.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버림받고 상처받고 부모를 떠나 보내고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게 되지. 모딜리아니와 잔의 사랑 얘기가 과연 정말 비극인걸까?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축복이 아닐까? 언젠가 떠나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 그것이 조금 빠르거나 늦은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딜리아니는 수없이 많은 초상화를 그렸지만 한 번도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대요. 잔의 초상화를 그릴 대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유를 묻는 잔에게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말했다지. '언젠가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그려 넣겠다'라고. 근데 <어깨를 드러낸 잔>이라는 작품을 보면 눈동자가 선명하게 박힌 인물이 있지 뭐야. 나이를 먹고 보니 한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은 달랐던 거죠. 그러니 그런 사랑을 경험한 자들을 비운의 주인공이니 운운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경솔한 입놀림에 불과하지. 그들의 삶만 비극인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인생은 그 자체가 비극이지. 그렇기에 실제 우리의 삶 속에는 비극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라."


그는 예순여덟 살의 노인네라네. 이제는 일을 그만하고 쉬어야 할 때, 보고 싶어도 매일 떨어져 살던 마누라와 놀아야 할 때,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 마치 10대 소년처럼 여전히 꿈을 꾼다네. 그는 예순여덟 살의 노인네라네. 그렇지만 자기가 열일곱 살인줄 착각한다네. 그 덕에 나는 졸지에 과부처럼 살아야 하네. 밤마다 혼자 저녁을 먹고 외롭게 잠자리에 들고 주말에도 혼자일 테지. 괘씸하고 미워질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그렇지 않네. 아마도 나는 여전히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네. 예순여덟 사리라는 현실을 잊고, 철부지처럼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프랑시스는 여전히 내 목숨같은 사랑이라네. 아무리 사랑해도 변함없는 사실은 내가 이 나이에 철없는 남편 때문에 외로워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온 마음으로 그를 으원하고 사랑해줄 거라는 사실. 자기가 예순여덟 살이라는 것을 까먹은 정신나간 영감 프랑시스는 영원한 내 사랑, 내 남편이니까."

".. 프랑스스의 은퇴 기념 만찬때 깜짝 선물로 내가 준비한 거야. 원래는 유명한 프랑스 생송인데 내가 가사를 다시 붙이고 친구한테 부탁해서 미리 녹음해두었다가 그날 갑자기 무대 위에 올라가 립싱크를 했지. 모두들 놀랐고 프랑시스는 감격해서 울먹이기까지 했단다."


솔직히 우리는 제대로 토론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하다가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작은 나라에서 지역, 출신학교와 학별, 나이, 경제적 지위, 정치는 종교적 견해 등등에 따라 얼마나 많은 파가 갈리는 가. 나와 다른 사람은 지구 상에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험악한 논리가 판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철학카페에서 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일단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남을 멸시하거나 기죽는 일없이 어쩌면 그렇게 당당히 자기 의견을 펼칠수 있을까 감탄스러웠고, 위험수위까지 가는 듯 팽팽한 토론을 벌인 뒤에도 곧 웃으면서 '당신의 의견은 그렇고 내 의견은 이렇지요'라고 마무리한 뒤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도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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