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영옥 옮김 / 범우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원인>은 먼저 읽었던 <지하실, 하나의 탈출>의 전편이라고 보면 되겠다.

작가의 자전소설 5부작 중 하나인 이 책도 여전히 분위기는 어둡고, 주인공은 우울하며, 특별한 스토리로 진행되기 보다는 불만과 불신에 찬 어조의 독백으로 그득하다.

실제로 책 속에서 만난 작가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것 같지는 않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일찍이 사생아로 태어나 부모의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어릴적부터 외조부의 엄격한 교육 아래 성장했다.

물론 외조부는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어린 베른하르트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는 그를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보내고 개인 교습으로 영어와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등, 외손자를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예술가란 타고난 영혼을 기반으로 해서 스스로 창의적인 힘을 발휘하는 인간이지, 타인의 요구나 특별한 교육에 의해 제조되거나 길러질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던가.

베른하르트는 자신을 거두어 준 외할아버지에 대해 늘 고마워하고 있었지만 '네 할아버지가 피아노 교습비를 대주는 것은 창밖으로 돈을 던져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피아노 강사의 독설이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실제로 자유로운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곧잘 놀라운 연주 솜씨를 발휘하곤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악보대로는 그 어떤 곡도 온전히 연주해내지 못하는 기이한 천재였던 것이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진탕 마셔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영화 <술고래>의 미키 루크처럼.

나치즘에 이어 카톨릭이 장악해버린 오스트리아의 파시즘적 교육 아래서 베른하르트는 끝없이 자살에의 충동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인간의 정신을 파멸시키는 중고등교육 단계를 없애고 대중을 위한 초등학교와 개별 인간들을 위한 대학교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나 자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이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 즉 상식은 초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그 기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맞게끔 진로를 결정하는 탐색의 기간, 유예의 기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는 청소년기는 자아탐색과 진로결정의 시기라고 버젓이 나와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심사숙고하는 시간보다는 부모님의 뜨거운 기대와 가차없이 등수를 매겨대는 시험성적에 목을 매며 영어 문장을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이 훨씬 더 많고 정말로 배짱이 두둑하거나 본래 독하게 타고난 인간이 아닌 한, 사회와 학교와 부모가 강요하는 이러한 룰에서 비껴나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걷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란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방학 때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다보면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 순간에 책을 펴면 그것이 소설책이었든 새학기 교과서였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술 읽히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기까지 가만히 놔두고 지켜볼 수 있는 부모란 결코 흔치 않다.

베른하르트는 계몽이 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어른이 되어 또 다시 계몽이 안된 채로 자식을 낳고, 결국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사이클 안에서는 사회가 결코 변화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똑똑한 목소리들은 자꾸만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은 갈수록 더 힘이 든다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과 의식 수준이 항상 상응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모와 교사와 사회와 국가는 베른하르트라는 예민하고 내향적인 천재가 힘들게 맞서야 했던 지독한 적(敵)들이었다.

거대하고 굳건한 체제에 쉽게 적응할 수도, 그것을 하루 아침에 전복시킬 수도 없는 어린 영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망에 찬 독백밖에 더 있겠는가.

그가 그 현실 자체로 만족했거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대해 비판의 눈을 뜨지 않았다면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세상에 대해 절망한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그의 독백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어두운 분노로 차 있지만 글을 써서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이미 대사회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세상을 정말로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기에 쉽거나 즐거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를 만난다는 것은 깨끗하게 닦아놓은 거울로 더러운 세상을 비춰보며 나 자신까지 돌아볼 수 있는, 바닥까지 내려가 진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의 또 다른 책을 어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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