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을 만날 때가 있다.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구성이 아니어도 읽다가 자주 멈칫거리게 되는 소설. 『레이스 뜨는 여자』가 그랬다. 작가이면서 교사, 철학자이면서 사회학자이기도 하다는 파스칼 레네의 이력처럼 이 소설은 아주 진부한 연애 이야기 안에 중요한 성찰들을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 ‘뽐므’는 단순한 여자다. 불행이든 가난이든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며 사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닮은 뽐므. 타고난 단순성에서 배어나오는 둥글고 매끈한 아름다움. 그러나 짐승처럼 순응하기만 하는 그녀에게 한 남자도, 독자도 그만 질려버리고 만다. 사랑의 기쁨을 상대를 위한 노동으로, 결별의 아픔을 거식증으로 표현하는 그녀. 소통과 교제의 가장 활발한 매개인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그녀는 존재하고는 있지만, 공존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뽐므와 같은 여성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적합하지 못하다. 『이방인』의 뫼르소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충격보다 덜하긴 하나, 많은 부분 뫼르소의 누이처럼 느껴지는 그녀. 뽐므와 그녀의 어머니는 조잡한 궤변, 뒤이은 심리 묘사, 암시의 두께가 있는 소설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것이며, 아울러 그들을 무한히 능가하며 그들로서는 그 속의 깊이며 너비를 잴 길 없는 저희의 기쁨이나 괴로움의 거죽을 뚫고 들어갈 줄도 모르게 되리라. 그들은 자기네 이야기를 하는 책의 종이 위에서 아주 작은 벌레 두 마리처럼, 움직이는 게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짧은 거리를 달아난다(20-21). 작가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뽐므를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능숙함과 서투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여건의 불평등으로 인해 교육과 사교로부터 애초에 배제된 사람들. 그 중에서도 더욱 소외될 수밖에 없는 하류 계급의 여성. 뽐므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순수한 무지로부터 비롯되지만 무지가 더 이상 미지가 아닐 때, 사람들의 호기심이 채워질 대로 채워진 이후, 그녀는 쉽게 버려진다. 뽐므는 그 남자를 꼭 찾아가 보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 . . 그가 자기와 함께 있으면서 권태로워했다고, 자기가 자주 그를 성가시게 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로서는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지만,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기와 얽힌 불쾌한 추억을 지니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133).  

  그러나 남자는 다른 꿈을 꾼다. 그는 뽐므를 자기가 꿈꾸어 오던 것, 즉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것이다. . . . 아울러 자기가 그녀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음을 인정하면서 뿌듯해할 것이다. 지금 느끼는 수치심과 약간의 회한을 격에 맞게 변모시킬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약점은 ‘작품’으로 승화할 것이다. 독자는 감동하게 될 것이다(138). 이처럼 레이스 뜨는 여자는 언어라는 허영에 찬 직조물로 재탄생한다.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 없는,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위선에 찬 폭력 앞에 무력하게 제조되는 존재, 뽐므.  

  당연의 세계라고 믿고 있는 세계를 낯설게 만드는, 오묘하고 특별한 책이었다. 파스칼 레네는 마치 스스로를 표현할 줄 모르는 뽐므들을 위해 이 소설을 헌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침묵 속에 갇혀버린 갖가지 비의들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언어에 도취되느라 그 '있음'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메시지만으로도 참 귀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처음의 밀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실을 비틀어 다시 진실을 보여주는 솜씨 또한 빼어나서 내겐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작가가 될 듯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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