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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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밀실 트릭의 거장, 밀실에서 살해당하다!

눈 덮인 고원 별장 성화장.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자신의 별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올해 역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
그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계속 같은 이야기만 쓰는 데 질렸다˝며 46번째 밀실 작품을 마지막으로 밀실을 졸업하겠다고 선언, 자리를 뜬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인 다음 날 아침. 밀실 트릭의 대가는 밀실 상태인 지하 서고 벽난로에서 상반신을 들이박고 죽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는데.......
그는 자신의 마지막 밀실 작품으로 쓴 46번째 밀실 트릭에 의해 살해당한 것인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괴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히무라&아리스 콤비의 신본격 추리소설!]

내용 요약하고 그러기 귀찮으니 책 뒤표지의 소개문으로 대체.

1992년 일본의 고단샤에서 ‘노벨즈‘ 라인으로 출간. 이후 판을 거듭하여 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 북홀릭을 통해 소개되었다.

최근 일본 드라마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 계기로 히무라 히데오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이 책을 읽었다. 이것도 사둔 지는 엄청나게 오래되었는데 지금에서야 소화하게 되었다(초판이 막 발간되었을 때 샀다. 어? 거의 9년 묵혀뒀잖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읽은 감상이 약간 심심했다. 트릭이 어떻고 품평을 할 주제는 되지 않는다. 다만 서프라이즈감이 조금 약했다는 정도.

다만 몇 가지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적어둔다.

1) 이야기의 맥거핀으로 사용된 ‘천상의 추리소설‘론이 무척 매력적이다. 이건 분명 나카이 히데오의 영향이다.

작중 58~61페이지. 밀실 추리소설의 거장이지만, 이제 그런 것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카베 세이치와 좌중의 대화다.

[˝날카로운 사회성, 동시대성, 다듬어진 문장, 주제의 문학성, 그런 것을 추구하시려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만일 그런 거라면 선생님에게 버림받은 독자들은 무척 실망하게 되겠군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것도 아닐세. 그런 시대착오적인 문학 콤플렉스 같은 건 전혀 없어. 나는 본격 추리소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닐세.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가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어떤 추리소설을 썼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우리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이나 <마리 로제의 비밀>, <도둑맞은 편지>같은 단편으로부터 트릭이라는 것을 추출하여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 즐겨 왔지만, 그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을까? 내게는 그런 의문이 있었네. 충분히 존재했을 법한 다른 풍요로운 길로부터 이탈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게임성이나 퍼즐성과 문학성의 행복한 결혼 같은, 기분 나쁠 정도로 온건한 것이 아니라는 거네. 더구나 범죄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진 등신대의 인산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추출하는 이야기, 그런 보편적인 것에 왜 ‘추리소설‘이라는 특별한 호칭이 필요한가ー라는 것도 아닐세.

무엇이든 매사를 범주화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네만, 추리소설은 그외의 소설과 구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보통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이 추리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것이 정설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무척 기묘한 일 아닌가? 왜 최초의 한 작품을 특정 짓는 정설 같은 것이 존재하는 거지? 그것은 추리소설이 문학 세계의 특이점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과학자들이 빛조차 똑바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일그러진 공간‘을 우주에서 발견한 것처럼, 아마도 ‘추리소설‘ 역시 그렇게 발견된 특이점인 것일세.˝

˝그 특이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갑작스럽게 질문한 사람은 히무라였다.

˝수수께끼와 분석, 혹은 신비와 현실, 즉 감성과 이성이 영구운동을 이룬다. 서로 상대에게 압력을 가하며 괴롭지만 아름다운 운동을 계속하는 겁니다. 기하학의 판타지, 어두운 꿈이 이 세상 밖을 향해 실낱같은 빛을 발하는 겁니다.˝

˝무척 추상적이군요. 그 정도까지 추상적이라는 건, 그런 추리소설은 지금까지 한 편도 쓰인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저는 추리소설이란 일찍이 쓰였던 적 없는 이야기다, 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 겁니다. 동서고금의 명작이라는 작품명의 목록을 볼 때, 저는 언제부터인가 고개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늘어선 것들은 저를 포함한 수많은 인간을 푹 빠지게 한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저는 편안하게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려 하다 도중에 멈춰 버립니다. 추리소설은 어딘가 다른 곳,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럼 그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은 뭘까요? 추리소설 이전의 존재입니까?˝

˝불손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지상의 추리소설‘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그 나름대로 기쁨으로 가득 찬 낙원입니다. 하지만......˝

˝아직 보지 못한 ‘천상의 추리소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점점 구체적이지 못한 대답이 되어 가는군요.˝

마카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에 동의하듯 히무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매력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추리소설‘에 이 정도까지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고, 지금 여기가 아닌 좀더 아름답고 좀더 높은 세계를 꿈꾼다. 그 자체가 태도로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삼위일체는 ‘사건, 추리, 해결‘이 아니라 ‘밀실, 탐정, 왓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밀실은 뭐랄까 미스터리 그 자체의 상징 같은 거. 밀실 밖의 상식이나 규칙이나 법칙 같은 게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은 작고 폐쇄되고 완벽해 보이는 별세계가 밀실이고, 탐정은 거기에 매료되면서도 결국에는 부수는 역할. 왓슨은 밀실과 탐정 사이에 일어난 일을 세상(독자)에 전달하는 매개자. 뭐 이런 거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최후의 밀실 트릭을 만들어 내고, 그 이후로 ‘밀실‘을 졸업하여 ‘천상의 추리소설‘로 진화하려 했다. 이 천상의 추리소설이란 아마도 밀실, 탐정, 왓슨의 삼위일체와는 다른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뭐랄까, 누가 봐도 ˝본질적으로 추리소설이다!˝라고 인정할 만한 거겠지? 소설의 맥거핀에 불과한 논의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일지 상당히 신경쓰인다.

2)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

이 책을 읽은 계기가 드라마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였다. 히무라 히데오가 처음으로 등장하니 여기서 이 인물은 이런 애입니다, 라고 충분히 소개되지 않을까 했다.

예감이 맞았는지 초반부에 그런 장면이 있다. 87페이지 정도부터. 히무라가 좌중에게 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라든지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놈인지 드러난다.

히무라 멋있어! 좀 더 활약을 보고 싶어!

이렇게 히무라 하악하악하고 있는데, 문득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캐릭터의 자기주장이라는 면에서 파악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수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 매니페스토: 그야말로 선언이다. 나는 이렇다! 꽝꽝! 하고 플레인하게 주장하는 거.

2. 교리문답: 임의로 붙인 명칭이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문답의 형식. 이 책에서 마카베 세이치의 천상의 추리소설론이나 히무라 히데오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인물들의 질문에 대응하여 나는 이렇다, 그건 아니다, 그건 저렇다라고 이야기한다.

3. 디베이트: 말 그대로 디베이트다. 교리문답과 다른 점은 싸운다는 점이다. 교리문답은 질문을 받는 인물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사용하는 거지만, 이건 논쟁을 통해 복수의 인물이 복수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페이트 제로>의 성배문답 장면도 사실 디베이트에 가깝지 않을까. 교리문답과는 달리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4. 스피치: 어떤 사안에 대한 성토, 규탄, 고발, 호소를 포함한 자기주장이다. 위엣것들과 달리 자의식이 덜어져서 좀 더 공적인 느낌.

5. 고백: 일반적으로 주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실 혹은 특정 인물간의 관계에서 큰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감정에 관한 진술(밝히는 데 심적, 물질적으로 리스크가 따르는 주관적 진실에 대한 진술). 어떤 의미에서는 베팅의 일종이다.

6. 베팅: 이것은 비언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캐릭터의 1~5를 다 무너뜨리거나 배반할 수도 있다. 캐릭터 자신이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 신념, 사상, 태도와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초반부에 1~5를 쓰고 이야기의 위기에서 베팅하고 클라이막스에서 결과가 나오는 구조를 좋아한다. 이거 우로부치 겐도 가끔 쓰는 거 같은데...?

어...? 쓰고 보니 점점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여하튼간에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의 활약이 보고 싶다면 이 책 추천합니다. 드라마에 안 나온 트릭이라 더 좋아요. 큰 기대는 하지 마시되 논리적으로 음미하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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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기담 강화기간, 나카무라 후미의 <요미시(夜見師)>를 읽었다.

나카무라 후미의 작품은 <염마 이야기(裏閻魔)>가 번역되어 있다. 귀신을 봉인한 문신을 받고 뜻하지 않게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청년 ‘염마‘와 스스로 원해서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귀가 된 오니즈키의 이야기가 백 년 시간을 걸쳐 펼쳐진다.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갈망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수밖에 없는 불사자의 고독. 절제된 템포로 전개되면서 묘한 윤기와 요염함이 배어 나오는 데에 ‘정말 잘 만든 이야기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요미시>는 카도카와 호러 문고에서 나왔다. 정확하진 않지만, 일본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호러 소설 표지에서 독살스럽고 강렬한 이미지보다는 뭐랄까 가볍고 감성적인 이미지, 특히 순정만화적인 일러스트의 기용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카도카와 호러 문고는 그러한 흐름의 선두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책의 내용도 ‘광의의 공포소설‘ - 판타지, 기담, 일부 호러 아이콘을 사용한 일반소설 - 등이 속속 나왔다. <요미시>도 그러한 맥락에서 ‘무섭지 않은 호러‘에 속하는 작품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검은 옷의 미남이 ‘요미시‘ 타타라 카츠히코. 타타라 가문은 대대로 원귀를 ‘상자‘에 봉인하여 신으로 모시는 ‘후지테(封じ手、봉인자)‘, 봉인된 상자를 열고 악신을 베어 정화하는 ‘요미시‘를 배출하는 가계다. 카츠히코는 요미시로서 사명을 수행하지만, 그에게는 요미시의 일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수행해줄 조력자가 필요했다. 한쪽 다리를 잃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카츠히코의 파트너 겸 만능 가정부로 채용된 청년 고묘 아키라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아키라 또한 심상치 않은 가계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부터 시작된 저주 때문에 고묘 가문의 남자들은 25세를 넘기지 못하고 급사할 운명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키라는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게 될 여동생 사키를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번다. 그런 그에게 급료가 높은 ‘유령저택‘ 타타라 가문의 일은 굴러 들어온 행운이었다.

카츠히코는 얼음처럼 쌀쌀맞은 성격. 만담 라디오 방송조차 미간을 찌푸리며 듣는 그에게 아키라는 조심스럽게나마 다가가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독설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키라는 언제 급사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어디까지나 밝고 건강하며 인정이 깊다. 상자 속에 봉인된 재앙신들에게도 인정을 베풀려 하는 아키라에게 카츠히코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러던 중, 타타라 저택의 사당에 안치된 수백 개의 상자들 중 하나에 고묘 가문에 저주를 내린 원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얻는다. 그러나 일은 원만하게 풀리지 않고, 초조해진 아키라는 치명적인 금기를 범하고 만다.

특히 아키라 시점의 문장이 가벼워서 첫인상은 ˝라이트노벨이네˝였다. 정말 읽기 쉬운 문장이다. 이전에 읽은 나가노 마유미의 <아메후라시>가 안개로 가득한 이경을 헤매는 감촉이었다면 이쪽은 잘 정비된 약간 으스스한 정원을 산책하는 데 비할까?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타타라 카츠히코의 사연과 속마음이 밝혀지면서 라이트노벨 같은 감촉은 희미해져 갔다. 재앙신들이 그렇게 된 사연도 비극적이고 애처롭지만, 담담하게 드러나는 카츠히코의 처지는 장절 그 자체다. 초반부의 카츠히코는 뭐랄까 틀에 박힌, 휠체어를 탄 냉미남+약간 독설계+사연있음이라는 느낌으로 간단히 ‘정리‘되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중반부 이후에서 비로소 섹시해진다.

비참한 처지, 원하지 않았던 숙명과 책임, 고독 속에서 깨닫는 인간의 온기에 대한 그리움. <염마 이야기>에서 그려졌던 테마가 <요미시>에서 변주된다. 이야기로서의 밀도가 아주 높다고 할 수는 없다. 큰 기대를 하고 접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을 품은 인간의 사연을 절제되고 가벼운 문장으로 능숙하게 펼쳐 보이는 솜씨가 아름답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덧붙여서 카츠히코와 아키라의 관계에 약간 호게모잇한 요소가 있다는 점도 나에게는 플러스 포인트다. 후반부에 그야말로 절제된 언어를 이용한 요염한 장면들이 있다. 단순히 BL스러울 뿐 아니라, 그 장면으로 인해 타타라 카츠히코라는 캐릭터의 깊이가 아무렇지 않게 연출된다.

책이 올해 1월 25일에 나왔으므로 아직은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속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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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단편 <사령처럼 걷는 것>의 감상을 우선 남긴다.

귀족 가문 출신에 흰 피부를 가진 미청년, 하지만 괴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결점(?)을 가진 도조 겐야의 학생시절을 다룬 단편집이다. <사령처럼 걷는 것>의 무대는 굴지의 민속학자 미야모토 타케시의 본가다. 미야모토 교수는 매년 제자인 민속학자 4명을 초대하여 새해맞이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겐야도 함께하게 되었다.

첫장면은 역시나 두근두근 괴담 이야기. 남태평양의 부족 ‘스그뇨 족‘을 연구하는 이사카 아쓰노리가 부족의 장례식에서 ‘사령(死霊)‘이 일으키는 괴이현상 체험한 일을 풀어놓는다. 원한을 품고 죽은 자의 사령이 장례식장에 출몰하여 사람을 저주하여 죽였다는 것. 이사카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할 밀실 상황에서 사령의 발자국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어나는 살인사건. 피해자는 이사카다. 그는 옅게 눈이 내린 현장에서 스그뇨 족이 사용하는 독에 의해 절명했다. 살인사건임은 분명하지만 현장에는 범인의 발자국이 없다. 남은 발자국은 현장에서 꽤 떨어진 곳에 찍혀 있지만, 그 모양이 괴상하다. 게다가 시체의 제일발견자가 된 겐야는 아무도 신지 않은 게다가 스스로 움직여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러 가지 검증으로 사건 현장이 눈에 의한 밀실이었음이 드러난다. 용의자인 민속학자들의 알리바이도 확실하다. 마치 사령의 소행인 듯한 괴이함에 겐야도 두손 두발 다 들려는 순간... 겐야의 방문 앞에 다시금 ‘저절로 걷는 게다‘가 등장하고, 이 괴현상을 통해 겐야는 사건의 트릭을 눈치챈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인데... 최후에 밝혀지는 트릭의 정체에선 ˝그런 트릭 진짜 가능한 거냐!˝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 다소 황당무계함을 감수하고 물리적인 장치에 의한 트릭을 피로해낸 점은 정말 좋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냥 머리가 나빠서인 것 같다) 주어지는 정보를 거의 따라가지 못했다. 위치관계와 알리바이 둘 다 파악이 안 되는 상태로 뭐랄까 최순실 건의 청문회에 불려나온 요즘 늙은양반들처럼 웅얼웅얼 홍알홍알하는 상태로 봤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렸다. 아~ 준수한 소품인데 제대로 즐기지 못해서 아깝다.

무대나 분위기, 트릭의 성격 같은 게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장편은 상당히 빡세겠지만, 이런 단편이라면 만화화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 읽을 단편은 중간의 몇 개를 건너뛰고, 셀프타이틀 <생령처럼 겹치는 것>으로 정했다. 단편들 중 가장 평이 좋은 축에 속해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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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譚을 읽자! - 요즘 빠져드는 책

어쩌다 보니 일본 원서만 계속 읽고 있다. 번역본이 있다면 당연히 그쪽을 볼 텐데, 어쩌다 보니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다 번역이 안 됐다. 아직 안 된 책들도 있고 차후에도 가망이 없는 것들도 있다. 비율로 치면 후자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원서 읽는 거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다. 하지만 번역본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라는 것이 발명된 지는 엄청나게 오래되었고 - 신석기 혁명이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설을 보았다 - 그만큼 그 종류도 많을 것이다. 근대소설뿐 아니라 다른 매체, 다른 장르로써 세련되고 진화하기까지 개중 숱한 갈래가 가지치기 당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야기의 근원에 가깝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종류가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건 추리소설 종류이지만, 걔네들은 발명된 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젊디젊은 가지다. 하지만 이 추리소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로부터 비롯했다. 그것은 공포 이야기 - 무서운 이야기다.

무슨 내보일 만한 탄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무서운 이야기‘야말로 인류의 최초 발명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의 이야기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에 의하면 ‘이야기‘란 사람들 간의 정보 공유를 효율적으로 하기에 최적화된 포맷으로써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번개가 치는 날에 벌판에 나가면 벼락에 맞아 죽는다˝라는 정보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한 치명적인 정보다. 이걸 문자 그대로 평범한 술어문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예전에 우리 옆집에 아무개가 살았는데, 걔가 비만 오면 벌판에 나가 뛰노는 버릇이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상대의 감정이입을 유도함으로써 문제 상황을 대리체험시키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세상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써 이야기라는 형태가 요청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정보 전달 면의 필요가 좀더 간절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보 전달적인 면에서 보면 뭐니뭐니해도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인 정보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을까 한다. 긍정적인 정보보다는 부정적인 정보가 우선순위가 높지 않을까? 그편이 살아남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테고. 따라서 부정적인 정보를 ‘무섭게‘ 전달하는 이야기, 공포 이야기라는 것이 이야기의 기원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감각적인 ‘무서움‘이라는 것은 대상과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되면서 점차 ‘괴기함‘, ‘기이함‘이라는 감각으로 세련되었을 것이다. 이 무서움, 기괴함, 기이함이라는 불안정하고 부정적인 상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서 공포물, 기담, 추리물의 갈래가 나뉠 것이다. 추리물은 기이함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수렴한다. 기담은 기이함을 그 자체로 즐긴다. 셋 중 가장 관조하는 형태에 가깝다. 공포물은 무섭고 역겹고 불안한 상태로 사람을 몰아넣는다.

본격적인 공포소설보다는 역시 추리물이나 기담 쪽이 좋다. 나에게는 추리물도 기이한 이야기의 한 종류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추리물을 읽을 때도 기이한 분위기의 완성도가 높다면 과학적인 고증이나 현실성이 좀 그렇더라도 뿌듯하게 읽는다. 항가항가

온다 리쿠는 추리소설 작가, 판타지 작가, 청춘소설 작가 등의 여러가지 라벨을 달고 있지만 나에게는 레벨 높은 ‘기이한 이야기‘ 작가다. 이 작가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추리소설 밭이겠지만, 2010년대부터였던가, 관록이 붙는 것과 동시에 추리소설 독자가 보기에는 기괴하거나 심심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경계가 된 작품은 아마도 <네크로폴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기이한 분위기가 십분 연출되지만, 이야기가 ‘제대로‘ 수렴되지 않는다. 종반부에 무리하게 마무리짓다가 이제까지 쌓아 온 신비로움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도 있다.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만 제대로 찾아내면 역사에 남는 환상소설가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뭐 잘 모르겠다. 차라리 완전히 몽환의 세계에서 비몽사몽하는 작품을 쓰면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기에는 이야기의 조리가 확실하게 서 있다.

그래선지 온다 리쿠는 기괴한 환상세계를 설정하는 작품보다는 현실적인 무대를 토대로 한 이야기 쪽이 독자 평가가 좀 더 높다. 나오키상을 탄 <꿀벌과 먼 천둥>도 그런 쪽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기이한 이야기를 구사하는 작가로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조리를 흐지부지하는 대신에 몽환의 경지를 풀어내는 작품이라고 하면 어제 막 다 읽은 나가노 마유미의 <아메후라시>. 이건 진짜 진짜진짜 이상한 이야기다. 뭔가 갑툭튀하면서 시작해서 전개도 갑툭튀, ˝엥? 왜죠??˝라고 물으면 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모티프들이 고도로 상징적이고 세련되게 쓰여 있어서, 가만히 읽자면 점점 세속적인 논리 회로의 출력이 약해지고 뭔가 논리 이전의 감각이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 든다.

이야기는 ‘우즈마키 상회‘에서 일하는 세 남자를 축으로 한다. 사장인 키츠카와, 회계 겸 비서 겸 이것저것 다하는 만능직원 나카무라, 아르바이트생 이치무라다. 멋모르고 일을 시작한 이치무라는 다짜고짜 첫 일이라며 수상쩍은 가문의 딸과 혼례를 치르게 된다. 이치무라의 저항은 키츠카와의 협박에 막히고 만다. 그 협박이란 ˝내가 너의 혼을 붙잡았으므로 너는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키츠카와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서 해결사 일을 하는 ‘아메후라시‘였다. 아메후라시는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것이든 그 혼이 있는 곳을 파악하여 혼을 붙잡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절세미남 직원 나카무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 다른 사람의 육체로 갈아타는 체질이었다. 그의 혼이 현재 머무는 육체는 수 년 전에 죽은 키츠카와의 연인의 것이다. 그리고 이치무라에게도 본인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서......

라는 이야기인데, 일단 셋 다 남자이지만 뭔가 비엘관계가 농후하다. 야하지는 않다. 그들의 언동에서 자연스럽게 이렇고 저런 관계나 사정이 드러나는 정도다.

단편연작 형식이지만 첫 에피소드가 엄청 노뜬금으로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그, 그래서 도대체 이게 다 뭔데?!˝라는 느낌으로 끝난다. 추리소설 작가라면 장면과 장면, 에피소드와 에피소드의 빈틈을 논리적으로 메우고 싶어질 것이다. 개뜬금없이 진행되는 흐름도 어떤 ‘규격‘에 맞춰서 복선을 깔고 회수하고 설명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개상의 정격 혹은 규격을 맞추지 않고, 자유롭게 환상의 세계를 짜내린 것이 이 작품의 독특함이고 ‘다움‘이다. 상당히 불친절하지만 결코 엉성한 작품이 아니다. 이 정도로 틀에서 자유로우면서 고도의 짜임새를 가진 환상소설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런 식으로 기이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어서, 이번에는 나카무라 후미의 <요미시>를 읽고 있다. 나카무라 후미는 <염마 이야기>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어서 그걸 읽고 알게 되었다.

<염마 이야기>는 엄청나게 질이 좋은 판타지였다. <요미시>는 그것보다는 라이트한 느낌이 난다. 주인공이 요즘 젊은양반이라 그런지 어휘나 문장의 흐름이 쉽고 가볍다. 카도카와 호러문고에서 나왔지만 무서운 느낌은 없다.

주인공은 사람에게 앙화를 내리는 악신을 모시며 그것을 베는 ‘요미시‘인 타타라 카츠히코와 그의 저택에 가정부로 들어온 청년 고묘 아키라 콤비다. 아키라는 저주받은 가계에서 태어나 앞으로 수명이 몇 년 남지 않았기에, 홀로 남겨질 여동생을 위해 돈벌이에 필사적이다. 타타라 카츠히코의 저택에서 상주하는 가정부 일은 절호의 기회였지만, 봉급이 높은 대신 카츠히코의 ‘요미시‘ 일을 도와야 한다. 악신을 봉인한 상자를 열어 그들의 추억 속 세계로 넘나드는 요미시. 아키라가 처음으로 접한 상자 속 악신은 평범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는데... 라는 내용까지 읽었다.

일단 문장이 매우~ 읽기 쉬워서 살았다. 빡센 것들만 읽다가 이렇게 라이트한 걸 읽으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갑자기 독해능력이 쑥쑥 올라가는 기분마저 든다.

이 작품은 <아메후라시>처럼 호...호게모이! 같은 건 아니지만, 남자 둘의 관계 변화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마이너한 느낌이라 서평이 많이 없었지만 평자에 따라서 ˝결국에는 비엘이였습니다˝라는 의견도 보인다. 음... 관계변화가 어떻게 되기에 그런지 궁금하다. 빨리 다 읽고 싶다. 하지만 다 읽으면 그다음엔 뭘 봐야 하지? 아 읽을 거 많구나!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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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게임
야나기 코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 읽은 지는 꽤나 오래되었는데, 오늘 우연히 검색하다가 애니메이션이 나와 있는 걸 발견하고 한번 봤다.

우오오 재밌어!!
간지나!!
오오 사쿠라이 타카히로!
호소야 요시마사!

상당히 재밌는 책이지만 주인공이 2차 세계대전중 암약하는 일본군 스파이들이기 때문에, 이 책이 번역출간된 당시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고, 후속작들도 번역되지 못했다.

주인공 스파이들은 일본 육군에 소속된 입장이지만, 자국의 군국주의와 애국사상, 천황 숭배를 비효율의 극치로 여기며 냉소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스마트‘하며, 그것이 전쟁의 광기에 휩쓸린 당대 군부의 주의 주장과 대치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애초에 기관 스파이들의 철칙은 ˝죽이지 마라, 죽지 마라.˝ 시리즈 2권에서는 라이벌 조직 ‘카제 기관‘의 카제토가 군인답지 않은 헛소리라고 비웃는다.

여하튼간에 소재 자체가 이미 신경에 거슬리는 게 사실이므로, 이제 와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오기는 글렀겠지. 원서는 전4권으로 아마도 완결된 것 같다.

이 <조커 게임>이 일본에서 나오고 곧 독자의 인기와 각종 상을 휩쓸었을 때, 도대체 뭔가 해서 호기심에 읽었었다. 그리고 너무 재밌어서! 충격받았다.

추리소설에서는 이미 흔해빠진 ‘스마트한 인간‘이라는 로망을 전시중의 스파이의 모습으로 구현하면서... 뭐랄까, 라이트하다. 무거운 스파이소설과는 또 다른 유형이다. 그러면서도 캐릭터 하나 하나가 멋지다. 이야기로서의 완급조절도 너무 잘되어 있다. 잘된 걸 넘어서 섹시하다.

우와아!! 짱이다!! 하고 완전 흥분해서, 소재는 좀 그렇지만 일본에서 이만큼 흥행했고 또 엄청 재밌으니 우리나라에서도 곧 나오지 않을까... 라고 당시에는 생각했지만 음, 어설픈 예상이었다.

번역서가 나오긴 했지만 엄청 늦었고, 그나마 별다른 주목도 못받았다....

그나마 애니화되면서 요즘 젊은애들한테 좀 알려진 것 같으니 위안을 삼아야 할까.

아마존의 Audible로도 있어서 희희낙락하며 듣고 있다. 성우양반 목소리 좋다. 카미야 히로시가 했어도 엄청 어울렸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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