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밀실 트릭의 거장, 밀실에서 살해당하다!

눈 덮인 고원 별장 성화장.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자신의 별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올해 역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
그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계속 같은 이야기만 쓰는 데 질렸다˝며 46번째 밀실 작품을 마지막으로 밀실을 졸업하겠다고 선언, 자리를 뜬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인 다음 날 아침. 밀실 트릭의 대가는 밀실 상태인 지하 서고 벽난로에서 상반신을 들이박고 죽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는데.......
그는 자신의 마지막 밀실 작품으로 쓴 46번째 밀실 트릭에 의해 살해당한 것인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가 괴사건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히무라&아리스 콤비의 신본격 추리소설!]

내용 요약하고 그러기 귀찮으니 책 뒤표지의 소개문으로 대체.

1992년 일본의 고단샤에서 ‘노벨즈‘ 라인으로 출간. 이후 판을 거듭하여 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8년 북홀릭을 통해 소개되었다.

최근 일본 드라마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를 재미있게 보았다. 그 계기로 히무라 히데오라는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이 책을 읽었다. 이것도 사둔 지는 엄청나게 오래되었는데 지금에서야 소화하게 되었다(초판이 막 발간되었을 때 샀다. 어? 거의 9년 묵혀뒀잖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읽은 감상이 약간 심심했다. 트릭이 어떻고 품평을 할 주제는 되지 않는다. 다만 서프라이즈감이 조금 약했다는 정도.

다만 몇 가지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적어둔다.

1) 이야기의 맥거핀으로 사용된 ‘천상의 추리소설‘론이 무척 매력적이다. 이건 분명 나카이 히데오의 영향이다.

작중 58~61페이지. 밀실 추리소설의 거장이지만, 이제 그런 것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카베 세이치와 좌중의 대화다.

[˝날카로운 사회성, 동시대성, 다듬어진 문장, 주제의 문학성, 그런 것을 추구하시려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만일 그런 거라면 선생님에게 버림받은 독자들은 무척 실망하게 되겠군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것도 아닐세. 그런 시대착오적인 문학 콤플렉스 같은 건 전혀 없어. 나는 본격 추리소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닐세.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가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어떤 추리소설을 썼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우리는 <모르그 거리의 살인>이나 <마리 로제의 비밀>, <도둑맞은 편지>같은 단편으로부터 트릭이라는 것을 추출하여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 즐겨 왔지만, 그것은 필연적인 흐름이었을까? 내게는 그런 의문이 있었네. 충분히 존재했을 법한 다른 풍요로운 길로부터 이탈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게임성이나 퍼즐성과 문학성의 행복한 결혼 같은, 기분 나쁠 정도로 온건한 것이 아니라는 거네. 더구나 범죄의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진 등신대의 인산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추출하는 이야기, 그런 보편적인 것에 왜 ‘추리소설‘이라는 특별한 호칭이 필요한가ー라는 것도 아닐세.

무엇이든 매사를 범주화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네만, 추리소설은 그외의 소설과 구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보통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이 추리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것이 정설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무척 기묘한 일 아닌가? 왜 최초의 한 작품을 특정 짓는 정설 같은 것이 존재하는 거지? 그것은 추리소설이 문학 세계의 특이점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과학자들이 빛조차 똑바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일그러진 공간‘을 우주에서 발견한 것처럼, 아마도 ‘추리소설‘ 역시 그렇게 발견된 특이점인 것일세.˝

˝그 특이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갑작스럽게 질문한 사람은 히무라였다.

˝수수께끼와 분석, 혹은 신비와 현실, 즉 감성과 이성이 영구운동을 이룬다. 서로 상대에게 압력을 가하며 괴롭지만 아름다운 운동을 계속하는 겁니다. 기하학의 판타지, 어두운 꿈이 이 세상 밖을 향해 실낱같은 빛을 발하는 겁니다.˝

˝무척 추상적이군요. 그 정도까지 추상적이라는 건, 그런 추리소설은 지금까지 한 편도 쓰인 적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저는 추리소설이란 일찍이 쓰였던 적 없는 이야기다, 라고 극단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 겁니다. 동서고금의 명작이라는 작품명의 목록을 볼 때, 저는 언제부터인가 고개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늘어선 것들은 저를 포함한 수많은 인간을 푹 빠지게 한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같은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저는 편안하게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려 하다 도중에 멈춰 버립니다. 추리소설은 어딘가 다른 곳,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럼 그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은 뭘까요? 추리소설 이전의 존재입니까?˝

˝불손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지상의 추리소설‘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그 나름대로 기쁨으로 가득 찬 낙원입니다. 하지만......˝

˝아직 보지 못한 ‘천상의 추리소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점점 구체적이지 못한 대답이 되어 가는군요.˝

마카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에 동의하듯 히무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매력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추리소설‘에 이 정도까지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고, 지금 여기가 아닌 좀더 아름답고 좀더 높은 세계를 꿈꾼다. 그 자체가 태도로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삼위일체는 ‘사건, 추리, 해결‘이 아니라 ‘밀실, 탐정, 왓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밀실은 뭐랄까 미스터리 그 자체의 상징 같은 거. 밀실 밖의 상식이나 규칙이나 법칙 같은 게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은 작고 폐쇄되고 완벽해 보이는 별세계가 밀실이고, 탐정은 거기에 매료되면서도 결국에는 부수는 역할. 왓슨은 밀실과 탐정 사이에 일어난 일을 세상(독자)에 전달하는 매개자. 뭐 이런 거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최후의 밀실 트릭을 만들어 내고, 그 이후로 ‘밀실‘을 졸업하여 ‘천상의 추리소설‘로 진화하려 했다. 이 천상의 추리소설이란 아마도 밀실, 탐정, 왓슨의 삼위일체와는 다른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뭐랄까, 누가 봐도 ˝본질적으로 추리소설이다!˝라고 인정할 만한 거겠지? 소설의 맥거핀에 불과한 논의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일지 상당히 신경쓰인다.

2)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

이 책을 읽은 계기가 드라마 <히무라 히데오의 추리>였다. 히무라 히데오가 처음으로 등장하니 여기서 이 인물은 이런 애입니다, 라고 충분히 소개되지 않을까 했다.

예감이 맞았는지 초반부에 그런 장면이 있다. 87페이지 정도부터. 히무라가 좌중에게 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라든지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놈인지 드러난다.

히무라 멋있어! 좀 더 활약을 보고 싶어!

이렇게 히무라 하악하악하고 있는데, 문득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캐릭터의 자기주장이라는 면에서 파악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수법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1. 매니페스토: 그야말로 선언이다. 나는 이렇다! 꽝꽝! 하고 플레인하게 주장하는 거.

2. 교리문답: 임의로 붙인 명칭이다.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문답의 형식. 이 책에서 마카베 세이치의 천상의 추리소설론이나 히무라 히데오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인물들의 질문에 대응하여 나는 이렇다, 그건 아니다, 그건 저렇다라고 이야기한다.

3. 디베이트: 말 그대로 디베이트다. 교리문답과 다른 점은 싸운다는 점이다. 교리문답은 질문을 받는 인물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사용하는 거지만, 이건 논쟁을 통해 복수의 인물이 복수의 가치관을 드러낸다. <페이트 제로>의 성배문답 장면도 사실 디베이트에 가깝지 않을까. 교리문답과는 달리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4. 스피치: 어떤 사안에 대한 성토, 규탄, 고발, 호소를 포함한 자기주장이다. 위엣것들과 달리 자의식이 덜어져서 좀 더 공적인 느낌.

5. 고백: 일반적으로 주변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사실 혹은 특정 인물간의 관계에서 큰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감정에 관한 진술(밝히는 데 심적, 물질적으로 리스크가 따르는 주관적 진실에 대한 진술). 어떤 의미에서는 베팅의 일종이다.

6. 베팅: 이것은 비언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캐릭터의 1~5를 다 무너뜨리거나 배반할 수도 있다. 캐릭터 자신이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 신념, 사상, 태도와 전혀 다른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초반부에 1~5를 쓰고 이야기의 위기에서 베팅하고 클라이막스에서 결과가 나오는 구조를 좋아한다. 이거 우로부치 겐도 가끔 쓰는 거 같은데...?

어...? 쓰고 보니 점점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여하튼간에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의 활약이 보고 싶다면 이 책 추천합니다. 드라마에 안 나온 트릭이라 더 좋아요. 큰 기대는 하지 마시되 논리적으로 음미하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