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아이들이 좋아 할 책임이 분명하다. 이유는 아이들의 마음을 순수함으로 곱게 치장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의 미움, 증오(?)를 있는 그대로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포장되어 있는 그림책에 익숙해진 어른들 눈에는 분명 이 이야기는 심한 불쾌감까지 들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을 순수의 전유물로 치장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비난의 화살은 작가 모리스 샌닥을 더욱 남달라 보이게 만든는 것일 게다.늑대옷을 입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일삼는 맥스에게 엄마는 소리쳤어.'이 괴물같은 녀석'맥스도 소리쳤지.'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거야'엄마는 저녁밥도 안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버렸어.맥스는 자신의 방에 갇혀 곧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엄마에 대한 미움은 맥스의 상상속에서 엄마를 자신을 못 살게 굴고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괴물들의 모습으로 굴절시킨다. 괴물들은 맥스에게 곧 현실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제약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맥스의 상상은 사람들이 평소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무의식 세계인 꿈을 통해 표출시키는 것과 흡사하다. 꿈 속에서는 현실에서의 위치가 서로 반전되어 나타나며, 자신을 괴롭히고 짓누르는 문제들을 향해 자신의 숨겨왔던 분노와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것이다.)한 달 두달 세달 일년쯤 항해를 한 끝에 괴물 나라에도착한다는 이야기는 맥스의 상상의 세계로의 몰입이 더디게 진행됨을 보여준다. 그것은 엄마와의 싸움으로 마음이 편치 못한 맥스가 엄마와의 갈등을 쉽게 떨쳐 내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이어 괴물들이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며 으르릉대고 발톱을 세워 보이지만 맥스의 '조용히 해' 한마디에 꼼짝 못하게 되고 맥스의 열렬한 추종자가 됨은, 이제 맥스가 상상속에서 엄마(현실의 모든 제약)로부터 우위를 점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런 감정의 표출로 맥스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엄마의 존재로부터 온전히 멀어져, 이젠 엄마와는 분리된 진짜 괴물들과의 즐거운 상상의 놀이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달빛을 받으며 춤을 추기도 하고 우우우우- 괴상한 괴물 소리도 내며 신나게 놀던 맥스는 시간이 지나 이제 그 상상의 놀이도 한풀 시들해지고 엄마에게 가졌던 미움의 찌꺼기는 깨끗이 씻어져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래서 괴물들의 가지 마라는 울부짖음도 뿌리치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항해를 다시 시작한다. (이쯤되면 맥스에게로 향하는 엄마의 마음도 풀어졌을 시간이 되었다.)일년을 거슬러 오르고 석달 두달 한달 하루를 거슬러 올라 집에 도착한다는 시간의 느린 진행은 엄마가 언제 쯤 나를 불러줄까라는 기다림의 시간들로 채워지는 맥스의 지루함이 깔려있다. 역시 엄마와 맥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아직도 따뜻한 저녁밥과 맥스의 안도의 미소가 함께 자리함으로써 그날 밤의 엄마와 맥스의 갈등이 온전히 해소되었음을 보여준다.맥스의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강요로부터 아이를 자유롭게 놓아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 나가고 갈등을 해소시켜 나가는 맥스의 생각의 흐름을 이 그림책에서 읽을 수만 있다면 괴물딱지 같은 맥스의 얼굴이 그렇게 괴상하거나 미워보이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맥스의 외형적으로 드러난 얼굴이 아니라 엄마와의 싸움으로 잔뜩 화가 난 마음의 얼굴이기때문이다.
<사과가 쿵!>은 유아들이 좋아할 요소를 고루 갖춘 그림책이다.아기처럼 작고 귀여운 느낌의 반복되는 의성어 천국이다.그리고 사자 코끼리 곰 악어 다람쥐 여우 심지어 애벌레까지 서로 다정하게 사과를 나눠먹는 흥겨운 모습은 아기들의 입 안에 저절로 군침이 돌게 만든다. '엄마,맛있어. 사과 맛있어.'라며 연상 입가에 배시시 웃음을 물고 있는 아이의 입언저리는 금새 입안 가득 고인 침이 흘러 내릴 것 같고. 그리고 사자 코끼리 곰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다른 작고 귀여운 동물들보다 더 아기같고 귀여워 보여 눈길이 가고, 속살을 전부 동물들에게 나눠주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사과가 커다란 나무가 되어 버렸네 생각했더니 이내 나무는 우산이 되어 버렸다.오밀조밀 몸을 맞대고 사과 우산 아래 앉아있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이 참 정겹고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알록달록 동물원(?) 정말 책장을 한장씩 넘기다 보면 알록달록 갖가지 동물들을 새로운 느낌으로 만날 수 있지요.별 동그라미 세모 네모 긴네모 팔각형 육각형 마름모 하트 타원 이렇게 열개의 도형들의 마술같은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동물들의 색다른 얼굴들을 만나면서 도형과 색깔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답니다.그리고 그림이라는 게 꼭 그래야만 된다는 생각의 틀도 깰 수 있어 유아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아이들은 보이는대로 이야기 하니 뱀을 올챙이라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겠지요.큰 아이들에게도 한 번쯤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신비한 밤 여행>의 작가 헬메 하이네의 작품이다.<신비한 밤 여행>에서도 보여주었던 수채 물감을 사용한 그림의 투명함이 이 책에서도 잘 살아있는 느낌이다.그리고 세친구,생쥐 돼지 수탉의 생기발랄함을 살아있는 그림으로 유감없이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넘친다. 꼬끼오 꼬꼬꼬 꿀꿀꿀 찍찍찍부지런한 세 친구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다른 동물들의 잠을 요란스레 깨우고,멀뚱멀뚱 말똥말똥 소 닭 쳐다보 듯 /제들 왜 저래 수선이래? 아이 성가셔./라는 표정으로 멀근히 눈만 내려 깔고 있는 소 돼지 고양이의 그림으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는 앞으로 보여줄 세 친구의 시끌벅적 요란 법석의 전초전에 불과하다.자전거 여기저기에 매달리고 올라 타 꼬부랑길 흙탕길을 주위의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찌르릉찌르릉 신나게 달려가며 귀여움을 마음껏 뽐내기도 하고 호숫가에서 발견한 배를 타고 해적놀이를 하며 한가이 물을 즐기고 있던 물오리떼를 날쌔게 물살을 가르며 쫓아버리기도 하는 그림들은 아이들에게 눈으로 보는 놀이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세 친구. '좋은 친구는 언제나 함께 하는 거'라며 굳게 약속을 하고 생쥐네 집에서 그날 밤을 보내기로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제안인지는 책을 읽다 보면 곧 알게 될 것이다.결국 '좋은 친구라도 함께 있지 못할 때가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우리의 귀여운 동물 친구들의 엉뚱함은 머리를 끄덕이이게 하는 웃음을 준다.그래도 여기서 멈추지 않는 세 친구.친구란 과연 이런 것이구나! 한참 친구를 알아가고 사회성을 배울 나이에 접어든 유아들에게 아~ 정말 친구란 이래야 되는구나라는 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우리 집은 산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아침 저녁으로 주인 손에 이끌려 산보나가는 개들이 많다.무서운 도사견부터 올랑쫄랑 예쁘게 단장한 애완견까지.게다가 집없이 떠도는 똥개들도. 그래서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는 게 개똥이고 강아지똥이다.맨발로 쫓아다니기 좋아하는 둘째 녀석은 누런 개똥을 밟아들이기 일쑤고,난 내내 눈에 거슬리는 개똥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하지만 돌담과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사방에 피어있는 민들레와 하필이면 그 곁에 철퍼덕 누워있는 개똥이라도 보이면 여척없이 불후의 명작 강아지똥이 떠오르니 기분이 얄궂다. 아이도 마찬가진가 보다. 쓰레받기와 비를 들고 대문 앞 개똥 한 무더기라도 치울려고 바지런을 떨면 아이는'엄마. 그냥 놔 둬.개똥은 좋은거야.'라며 엄마를 좀 더 거창한 말로 설득하기엔 아직 어린 탓인지 계속 좋은 것으로 일관하며 한바탕 야단법석이다.남자애라 항상 조용한 맛이 없이 이리 펄쩍 저리 펄쩍이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끝내 단념시키고 만다.개똥 하나 치우는데도 이리 눈치가 보이니...어떻게 하랴. 아이에게 읽어 준 강아지똥이 화근인 것을. 언제는 이 책 정말 좋지? 해놓고는 이제 와서 그것을 부정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게다.강아지똥은 우리집에서 아이들 그림책 중 단행본으로선 서열 첫번째다.평소 책을 좋아하던 동네 언니가 꼭 읽어보라며 몇 번이고 권해주고 권해주었던 책이다.그 때가 큰아이 세 살무렵이었다.처음,책을 펴 놓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한껏 무게를 실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데 아름다운 글과 그림이 흰둥이의 애절함과 한 덩어리가 되어 가슴 속을 먹먹하게 만들었었다.회색빛 도는 그림이 눈이 시리도록 환하게 다가오는 것이 이상해 눈을 크게크게 뜨며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고 했었다.아~ 그림책은 이런 것이구나.한낱 아이들 동화를 보고 이렇게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이런 엄마의 기분을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강아지똥이 어떻게 민들레꽃이 돼?'라고 물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그래,방실방실 빛나./방실방실 빛나.방실방실 빛나...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래!방실방실 빛나? 방실방실... 입은 글을 쫓아가고 생각은 이 글의 아름다움에 내내 취해 있었다.작고 소담스레 핀 꽃 한송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난 지금도 이 말을 좋아한다. 우리말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이라는 자부심까지 들며 괜히 기분이 좋다.그리고 또 한 번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거는 권 정생 선생님의 이 동화를 쓰게 된 배경이다.책 뒷편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읽은 이후 내 머릿속의 선생님의 모습은 늘 한결같으시다. 날 좋은 한낮,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곱게 주름살 패인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시고 당신 마당의 풀 한포기 돌 하나라도 놓칠세라 따뜻한 눈길로 보듬어며 조용하고 넉넉하게 앉아 계신 것이다.그래.내가 이러니 아들 녀석이 그 야단법석을 떨어도 할 말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