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산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아침 저녁으로 주인 손에 이끌려 산보나가는 개들이 많다.무서운 도사견부터 올랑쫄랑 예쁘게 단장한 애완견까지.게다가 집없이 떠도는 똥개들도. 그래서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는 게 개똥이고 강아지똥이다.맨발로 쫓아다니기 좋아하는 둘째 녀석은 누런 개똥을 밟아들이기 일쑤고,난 내내 눈에 거슬리는 개똥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하지만 돌담과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사방에 피어있는 민들레와 하필이면 그 곁에 철퍼덕 누워있는 개똥이라도 보이면 여척없이 불후의 명작 강아지똥이 떠오르니 기분이 얄궂다. 아이도 마찬가진가 보다. 쓰레받기와 비를 들고 대문 앞 개똥 한 무더기라도 치울려고 바지런을 떨면 아이는'엄마. 그냥 놔 둬.개똥은 좋은거야.'라며 엄마를 좀 더 거창한 말로 설득하기엔 아직 어린 탓인지 계속 좋은 것으로 일관하며 한바탕 야단법석이다.남자애라 항상 조용한 맛이 없이 이리 펄쩍 저리 펄쩍이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끝내 단념시키고 만다.개똥 하나 치우는데도 이리 눈치가 보이니...어떻게 하랴. 아이에게 읽어 준 강아지똥이 화근인 것을. 언제는 이 책 정말 좋지? 해놓고는 이제 와서 그것을 부정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게다.강아지똥은 우리집에서 아이들 그림책 중 단행본으로선 서열 첫번째다.평소 책을 좋아하던 동네 언니가 꼭 읽어보라며 몇 번이고 권해주고 권해주었던 책이다.그 때가 큰아이 세 살무렵이었다.처음,책을 펴 놓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한껏 무게를 실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데 아름다운 글과 그림이 흰둥이의 애절함과 한 덩어리가 되어 가슴 속을 먹먹하게 만들었었다.회색빛 도는 그림이 눈이 시리도록 환하게 다가오는 것이 이상해 눈을 크게크게 뜨며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고 했었다.아~ 그림책은 이런 것이구나.한낱 아이들 동화를 보고 이렇게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이런 엄마의 기분을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 강아지똥이 어떻게 민들레꽃이 돼?'라고 물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그래,방실방실 빛나./방실방실 빛나.방실방실 빛나...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래!방실방실 빛나? 방실방실... 입은 글을 쫓아가고 생각은 이 글의 아름다움에 내내 취해 있었다.작고 소담스레 핀 꽃 한송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난 지금도 이 말을 좋아한다. 우리말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이라는 자부심까지 들며 괜히 기분이 좋다.그리고 또 한 번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거는 권 정생 선생님의 이 동화를 쓰게 된 배경이다.책 뒷편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읽은 이후 내 머릿속의 선생님의 모습은 늘 한결같으시다. 날 좋은 한낮,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곱게 주름살 패인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시고 당신 마당의 풀 한포기 돌 하나라도 놓칠세라 따뜻한 눈길로 보듬어며 조용하고 넉넉하게 앉아 계신 것이다.그래.내가 이러니 아들 녀석이 그 야단법석을 떨어도 할 말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