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전쟁술
알렉시 제니 지음, 유치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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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 좋아한다. 글씨가 빽빽하게 들어찬 두꺼운 장편소설. 이건 하드웨어 적인 선호랄 수 있고, 내용 면으로도 전쟁에 대한 반대선언과 집단주의와 파시즘에 날선 비판을 날리는 작품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려 800쪽. 문학과지성사가 한 권으로 찍었다. 가격이 조금 비싸서 정가 23,000원. 10% 할인해도 2만원을 넘긴다. 페이지마다 글씨가 조밀하여 순수 독서시간이 대략 스물일곱 시간가량 걸렸음에도 단 한 페이지도 함부로 넘길 수 없는 진지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다른 책에 비해 월등하게 많았다.
 전형적인 룸펜 ‘나’. 세상에 중요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허비해가며 루저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인간. 불성실하게 다니던 회사에서 ‘당연한 해고’를 당한 후, 아침마다 광고지가 가득 든 수레를 끌며 집집마다 딱 한 부씩 던져 넣어야 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일과가 끝나는 늦은 오전에 동네 술집에 들러 화이트와인 한 잔을 마시는 걸 낙으로 사는 인생도 조금 따분하지만 못 살 정도는 아니다. 아무렴. 세상살이 마음만 바꾸면 그냥저냥 살 만한 거니까. 근데 비교적 손님이 많은 이 술집에 마른 몸집의 노인 한 명이 두터운 신문을 테이블 가득 펼쳐놓고 꼼꼼히 읽고 있는데 단골손님들은 오히려 이 노인 빅토리앵 살라뇽에게 일종의 경외를 느끼며 두 개의 테이블을 오랫동안 점령한 채 신문을 읽는 걸 당연하게, 또는 마땅하게 여긴다. 그가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노병이란 사실 하나로.
 벼룩시장 비슷한 것이 열려 시간도 때울 겸 빈둥거리는 ‘나’. 평소에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을 팔려고 나온 아마추어 화가들의 작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오전 술집의 바로 그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는 빅토리앵 살라뇽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아내, 아름다운 노파인 에우리디케 칼로아니스를 소개받고, 살라뇽이 자신의 회고록을 쓰려고 준비 중이지만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맥을 잡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쓴 초고를 ‘나’가 다시 쓴 것이 이 작품의 ‘소설’편이다. 살라뇽의 일대기, 그것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항독시민군 활동, 인도차이나 전쟁, 그리고 알제리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해놓았다.
 현재의 ‘나’의 행적과, 노인 살라뇽, 그의 전쟁광 친구 마리아니 등 작품의 현재시점에 관한 것이 ‘주석’편. ‘주석’편으로 통해 ‘나’가 해고를 당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 애인과 이별을 하고, 살라뇽(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고, 1991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거대국가가 제삼세계 국가의 체제와 국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드골로 대표하는 영웅주의와 폭력주의에 반대한다. 책은 이렇게 주석-소설-주석-소설……주석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장 브륄레르’라는 프랑스 소설가가 있다. 그건 본명이고 소설은 필명 ‘베르코르’로 발표하며, 레지스탕스 문학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고 한다. 대표작이 열린책들에서 찍은 <바다의 침묵>이란 단편집.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그걸 읽고 난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시간이다.
 프랑스 사람들. 그들도 다른 민족한테 영토가 유린당하고 나서 수치스러워하고 비통해하고 저항하고자 하는구나. 난 전혀 몰랐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들 제일 앞자리에 프랑스가 있지 않는가. 자기들이 그들의 영토를 빼앗고 생산품과 자원을 약탈할 때, 식민지에서도 나치 치하의 파리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건 몰랐겠지 뭐. 그까짓 5년 동안 나치 치하에 있었으면서 무슨 죽는 소릴 그렇게 해댈까. 당신들이 문명인이고 아랍과 동남아시아가 미개인들의 집단이어서? 웃기지 마. 그들이 어떻게 살(았)던 간섭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어. 나치도 당신들하고 비슷하게 세계에 ‘질서’를 제대로 잡는다는 핑계로 전쟁을 일으켰잖아.“


 나는 아직도 위에 쓴 것과 똑같이 생각한다.
 나치 치하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주특기인 “복종” 또는 “순응”을 하며 시간을 버텨냈다. 알렉시 제니가 직접 이렇게 얘기했다. 다만 그 가운데 예외적인 인간들이 항독시민군 활동을 한 것이고, 사실 이렇게 권력과 절대적 무력을 갖춘 지배자에게 찍소리 못하고 설설 기는 건 세계 공통이다. 프랑스 사람만 유별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의 숫자는 천명 가운데 하나나 될까 하는 수준 아니었는가. 그래서 공포정치는 일정 기간 동안 체제 유지를 위해 아주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
 압도적 무력을 갖고 있는 독일이 레지스탕스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선량한 프랑스 사람들에게 악행을 했던 건 분명하다. 레지스탕스가 독일 병사를 살해하면 열 배에 달하는 프랑스 시민을 죽임으로 복수하는 동시에 항독군의 활동을 위축시킨 것도 일면 그럴 듯하다. 당연히 점령군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뜻.
 그러면 프랑스는 어땠을까. 그들의 점령지에서.
 “핏빛 정원”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군과 외인부대는 ‘호 아저씨’를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 독립운동 세력을 저지하면서 세상 어느 나라 군대보다 전혀 못하지 않게 만행을 자행한다. 한 마을을 불사르고, 처형하고, 고문한다. 책에선 1대 10 정도라고 주장하지만 천만의 말씀. 내가 알기로 1대 100 이상. 당연히 알제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디어 자유, 평등, 박애? 그건 그들만의 리그. 갈리아 인들에게 한정하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백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제니의 소설 속 극우파 인물 마리아니가 그렇게 말한다. 유색인종이 불심검문을 당할 확률은 백인보다 4배 높고, 아랍인이 검문을 당할 확률은 유색인종보다 두 배가 높은 거. 이게 프랑스 식 자유, 평등, 박애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나 특유의 반 유럽 정서 어쩌구 하겠지만, 이건 작가 알렉시 제니가 자기 책에서 주장한 걸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대국 프랑스가 제삼세계 국가들에서 선택한 그들만의 전쟁술.
 1991년 미국에 의하여 저질러진 “사막의 폭풍” 전쟁. 난 아직도 기억한다. 미국이 제작하고 운전하는 정밀기계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던 대량 살상극을 나는 출장지에서 TV를 통해 보고 있었다. 역사 이래 최초로 지구상의 많은 인간종들이 자신과 같은 종의 개체가 한꺼번에 학살당하고 있는 걸 인공위성과 TV 수상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것이었다. 목표로 했던 한 건물에 초록 색깔의 화염이 잠깐 밝혀지던 순간, 건물 속에 있던 이라크 사람들은 순식간에 온몸이 화르륵 타버려 그들이 세상에 한 때는 존재했다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버렸다. 말 그대로 증발. 바로 그 장면을 TV를 통해 보던 지구인들은 ‘기계’에 의하여 ‘인간’의 목숨이 사라진 비극을 비극으로 체험하지도 못하는 의식의 궤멸 상태에 빠졌던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책에 의하면 그에 반하여 미국 병사들 가운데서도 전사를 해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은 소수가 있었다고 하며, 그들 대부분은 전투 중 사망자가 아닌 사고사를 당한 군인들이었으며 정확한 숫자와 이름을 밝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은 누가,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관련한 사실에 대한 아무런 증빙도 없단다. 이게 현대의 전쟁이다. (강대국이 설계하고 만든)기계가 (제삼세계 군인을 포함한)사람을 차별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오직 약소국만의)국토를 파괴하는 것.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라 제목을 <프랑스식 전쟁술>이라고 했지만 프랑스 말고 다른 어느 국가의 이름을 대체해도 전혀 다르지 않다. 하다못해 대한민국을 그 자리에 올려놔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서 베트남 민간인을 용감무쌍하게 학살한 우리의 삼촌들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들었던가. 힘 센 인간이 다른 약한 인간 종을 대하는 야만적 방식은 어디나, 누구나 다 같다.


 작가 알렉시 제니는 리옹 출신으로 (책의 무대도 리옹이다.) 고등학교 생물교사였다가 처음 소설을 쓴 것이 바로 이 <프랑스식 전쟁술>인데, 데뷔작으로 2011년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 책은 2018년에 읽은 기념할만한 작품으로 꼽을 정도로 대작이고, 적어도 걸작의 수준까지 띄워주고 싶다. 다양한 논점을 제기해 읽기 쉽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할 수 있는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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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0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못 지었네요.

대작이라고 하시니 올해 다시 도전을
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18-04-02 12:56   좋아요 0 | URL
예.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미도 웬만큼 있고, 하여간 오랜만에 읽는 클래식 급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