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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초 트레버가 쓴 <루시 골트 이야기>를 참 좋게 읽고 그 길로 이이의 다른 책을 검색해서 골라 읽은 책. <루시 골트 ……>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계 아일랜드 사람 이야기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여름의 끝>에선 출신이나 인종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하나, 사랑. 그것도 불륜. 특히 유부녀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불륜만큼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소재는 없다고, 이미 고인이 된 우리나라의 유장한 작가 박완서가 어느 수필에서 말했다. 그러나 불륜이라는 말초적, 감각적 소재보다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윌리엄 트레버, 이이가 <여름의 끝>을 쓴 시기가 무려 여든한 살 때인데,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가는 감정적 이끌림, 그리하여 (언제나 조금쯤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불륜 사건에 대해서도)공감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문장의 힘을 절절하게 느끼는 기회가 됐다. 책을 읽다가 중간 쯤 됐을 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달관한 듯한 마음으로 인간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구글 검색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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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골트 이야기>의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니까, 마지막에 이렇게 감상을 써놓았다.
“쓸쓸한 그림자”
<여름의 끝>을 읽고 PC를 연 다음 독후감을 쓰기 위해 화면을 띄웠는데, 막막해서,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써 나가야 할지 정말 막막해서, 전에 윌리엄 트레버는 어땠을까 뒤져봤더니, “쓸쓸한 그림자”라고 씌어있는 거였다. 이 책도 정말 쓸쓸하다. 이때 까지 이 작품이 트레버가 여든한 살에 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몸과 마음이 바싹 마른 건조한 노인의 가슴에 아직도 이런 아름답게 황량하고 누추하고, 낡은 듯한 쓸쓸함의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그 나이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젊은이들에 관해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들의 고뇌와 방황과 철학과 영혼의 흔들림 같은 거, 전혀 궁금하지 않고 그립지도 않다. 심지어 다시 젊은 시절로, 나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끔 놀라게 되는 건 노인들의 심성 속에 있는 희로애락 속에, 온갖 추태를 포함해서, 특정한 노인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추억과 되새김의 힘이다. 290쪽이면 길지도, 그렇다고 그리 짧지도 않은 평범한 장편소설인데, 트레버가 독자를 장악하는 힘은 상상을 초월하여 예닐곱 시간이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끝장을 보게 만든다.
아주 간단한 스토리. 어려서 수녀원 돌계단 위에 버려진 아이 엘리가 나이가 차서, 자신의 실수로 아내와 어린 아들을 트랙터로 치어 죽여 한없이 가슴 아파 하는 딜러핸 씨네 하녀로 들어갔다가 점점 자라 자연스럽게 둘이 결혼을 한다. 그리 멀지 않은 호숫가에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해버린 저택에서 살던 플로리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채와 소송을 청산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상태인데 어찌저찌해서 엘리와 연인관계가 되고, 아일랜드에서는 더 이상 기댈 곳도, 믿을 곳도 없어 일찍이 스칸디나비아로 떠날 예정인 플로리언은 결국 여름이 끝날 때 이별을 하고 마는 내용이 다다(물론 다는 아니다. 근데 이렇게만 알고 계시라).
뻔한 이야기를 독자로 하여금 안타깝고, 애가 끓는 절절한 동감으로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이라니. 읽는 내내 가슴이 보이지 않는 손톱에 의하여 할퀴어지는 것 같은 서늘한 안타까움. 참 좋은 책 읽었다.
* 검색해보니 트레버의 진가는 장편보다 단편 작품에 있다고 한다. 나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의 단편집 한 권을 선택했다. 올해 9월이나 10월쯤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