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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새 들어 스페인 어 권 작품을 자주 읽는 편이다. 책을 사놓고 그게 몇 권 쌓이면 출판한 순서로 읽는 것이 내 습관인데, 이런 독서법은 대개 후반에 들어갈수록 스페인어 권圈 작품이 많아진다. 앞부분은 주로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작품들이 차지하는 반면. 이번에도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로 시작해서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 이어서 이디스 워튼이 쓴 <기쁨의 집>의 순서로 나가다가 유쾌한 설레발장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 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요사의 <리고베르토 씨....>다음에 한 권 건너 <바람의 그림자>. 또 한 권 건너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작품 가운데 세 번째로 읽게 되는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가 걸린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문학의 힘도 국력 순서 비슷해서, 무적함대가 하워드 경이 이끄는 영국의 수병에게 거덜이 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이후 프랑코 개자식 시대까지 무려 근 400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유럽의 거지 국가 비슷한 상태로 떨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빈궁을 견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의견이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 작품을 보면, 대개 우리가 즐거이 읽고 있는 건 <라 만차의 시골 기사 돈 키호테>를 빼면 거의 20세기 작품부터이지 않은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위 내시경 검사는 당연히 매년 받는 것이고, 대장 대시경은 대강 3년 터울로 당하는데, 대장 내시경을 위해 전날 점심 식사 이후 금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후 8시에 물 500cc에 희한한 물약(또는 가루약)을 타 벌컥벌컥 마시고, 8시 30분에 또 한 번 벌컥벌컥 마시고(이때쯤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물고문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0시 경에 다시 벌컥벌컥 들이켜는데 이땐 벌써 거의 밸브 망가진 수도꼭지에서 상수도 뿜어 나오듯 완벽한 물똥을 대여섯 번째 뿜어낸 다음이기 십상이다. 그렇게 자정까지 이젠 맑고 연한 노란색 담즙 섞인 물만 찍, 찍 발사될 때쯤이면 이게 몇 년에 한 번 하는 행사이기 망정이지, 탈수 증세를 직접 느낄 만하게 영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증상을 즐기는 방법은, 스스로 최면을 걸어 내 몸이 지금 체내에 똥 한 방울 없는 거의 완전하게 정화된 상태라고 위안하는 일 말고는 없다. 물론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다시 500cc의 물을 한 번 더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한 번 더 연노랑 색 500cc의 물이, 앞이 아니라 뒤, 그러니까 항문을 통해 발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두 번 더 확인해야 비로소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왜 초장부터 좀 지저분한 얘기를 하느냐, 하는 건데, 먼저 먹고 싸는 일은 전혀 지저분한 부류가 아니고, 지저분한 부류에 들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걸 들어야 하고, 두 번째로 이 책의 주인공, 로마인이자 귀족가문의 일원인 폼포니오 플라토 선생(철학자이기도 하니까 ‘선생’이라고 칭해줘도 존칭 인플레이션은 아닐 것이다)이 어느 날 파피루스에 씌인 어떤 강물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그 강물을 마신 사람에게 지혜가 생긴다”고 하며 심지어 암소가 그 강물을 마시면 흰 소로 변한다는 신비의 강물이어서, 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이 바로 지혜인지라, 신비의 강물을 찾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떠나 어느덧 중동의 화약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그 중에서도 당시에도 작은 마을이었던 나사렛까지 갖은 고생을 마다하고, 그곳까지 도착하며 흐르는 물이란 물은 몽땅 벌컥벌컥 마시는 바람에, 이걸 우리는 “물을 갈아 마신다”라고 칭하는 바로 그 짓을 서슴지 않은 대가로 시도 때도 없이 물똥을 찍찍 갈겨대는 동시에, 오아시스를 떠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 말 위에선 웅장한 칼데라 호수라도 만들 수 있는 화산의 분화 비슷한 방귀를 뀌는 바람에 말 등 위에서 한 길이나 솟구쳐 모래사막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혔으며, 말은 방귀 소리에 깜짝 놀라 주인이 곤두박질을 쳤던지 말든지 그냥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버렸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홀로 떨어진 폼포니오 선생이 아랍 상인과 두 로마 군대에 빌붙어 간신히 도착한 나사렛에 누가 살고 있었느냐 하면 바로 예수.
우리말로 된 감탄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이런 염병할!” 또는 “에이, 우라질!” 이걸 영어로 번역할 때 가장 (점잖게)적절한 건 아마 다음과 같으리. “Oh, Jesus!" 그래, 바로 그 Jesus,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의 예수, 구세주 예정자는 아직 열 살 소년에 불과하고, 이 책에선 목수 아버지 요셉이 문제다. 나사렛에서 가장 부유한 애풀론 씨를 살해한 혐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형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것도 작은 나사렛 동네의 유일한 목수라서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처지. 폼포니오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갓 유대인 남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예정이거나 말거나 그게 무슨 상관? 하지만 오랜 유랑생활에 거의 거지꼴 비슷한 처지로 떨어졌으며 게다가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는 진짜 거지이기도 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아무런 죄가 없음을 확신하는 예수가, 은화가 든 주머니를 은근히 ”로마인“ 폼포니오의 품 안에 찔러 넣으며 아버지 요셉의 무죄를 증명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이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특히 아폴론), 유대교 야훼, 바알 신 등이 총 출현하는 유쾌한 추리극을 만들어낸다.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내가 읽어본 <사볼타 사건의 진실>과 <경이로운 도시>에 국한해 이해한다면, 시대를 기원 10년으로 해서 추리소설을 쓰지 말라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고, 아니, 추리소설을 만들었다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오히려 추리극을 경쾌한 터치로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 마음에 들어 누구에게 권할 수준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이런 것도 읽고 저런 것도 읽고 그렇지, 그런 게 사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