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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위화가 1960년 쥐띠, 쑤퉁이 63년 토끼띠. 둘이 처음 만나니까 서로 비슷하게 느낀 것이, 어려서부터 같이 놀던 동네 친구 같았다나? 난 영화 <홍등>, 장이모우 감독에 공리가 주연을 한 이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는데, 그게 쑤퉁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거란 걸 알고, 그래? 그럼 쑤퉁의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쌀>을 고른 거다. 말인즉 <쌀>이 내가 처음 읽은 쑤퉁이란 말이다. 그리고 거의 틀림없이 마지막으로 읽은 쑤퉁의 작품이 아니겠느냐, 하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참 다행인 것이 알라딘 헌책방에서 사서 그나마 좀 위안이 된다는 거. 조만간에 아파트 단지 도서실에 기증해야겠다.
용 다섯 마리를 일컫는 이름의 우룽(五龍)이 주인공. 고향 펑양수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유래 없는 대 풍년이 도래할 찰나, 그만 늦장마가 피눈물 나는 폭우로 이어지는 바람에 끝없는 들판에 넘실대던 익은 벼들의 황금물결이 진짜 황토 물에 몽땅 잠겨, 이제 남은 것은 겨울바람 소슬하니 불어오기 전에 굶어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지자, 이렇게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도시로 향하는 화물열차에 몰래 올라 도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우룽은 사흘을 내리 굶다가 부두에서 쌀을 실은 수레를 무작정 따라 상가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시장거리 와장가(瓦匠街)의 싸전 대홍기(大泓記)에 도착해, 싸전 주인 펑사장에게 사정사정을 해 임금 없이 밥만 먹여주는 조건으로 취직을 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낯선 도시에 떨어져 싸전으로 오기 전까지 겪은 더럽고 수치스런 경험은 소개하지 않았다.
싸전에 딸이 둘 있는데, 큰 것이 쯔윈(織云)이요 작은 것이 치윈(綺云). 쯔윈으로 말하자면 몸매 빵빵하고 얼굴도 동그라니 당시 중국인의 시각에 입각한 전형적인 미인에다가 살집도 적당하니 붙어 사내새끼라면 어떻게 한 번 껄떡거려볼만한 방년 열여덟의 젊디젊은 아가씨요, 작은 치윈으로 말하자면 모든 일을 차갑게 계산적으로 따져서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지만 아버지 펑사장 이상으로 싸전의 경영을 거의 혼자 해나가고 있는 당찬 아가씨다. 쯔윈, 역시 예쁘고, 성격 발랄하고, 오픈되어 있는(까졌다는 얘기) 아가씨가 20세기 초반, 계산해보면 1910년대 중반쯤이라면 태생부터 문제를 갖고 태어난 것이라, 쯔윈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벌써 열다섯 살 때 자진volunteer해서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귀족계급이자 암흑가의 최고 보스인 뤼대감의 정부자리를 꿰찬다. 그리하여 얻는 것이라고는 와장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스캔들과 뤼대감으로부터 얻어내는 수많은 고급 옷들. 쯔윈은 스캔들 따윈 눈도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다. 눈 깜박? 천만의 말씀. 오히려 뤼대감이 자신을 조금 멀리 하는 듯 보이자마자 뤼대감의 암흑가를 대리해왔던 도시의 항구harbor 방면 총대장이자 주인공 우룽의 첫 번째 원수인 아바오를 밤마다 창문을 통해 자기 방에 들이는 놀라운 엽색행각도 서슴지 않는다. 불과 나이 열여덟에.
아차, 쯔윈이 임신을 해버린다. 아바오가 쯔윈의 창문을 넘나든다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우룽이었는데, 어떻게 도시의 권력자 뤼대감도 연인의 배신을 알아내어, 어느 날 유장하게 황토색 강물이 흐르는 장강 속으로 아바오가 가라앉을 수 있었을까. 하여간 그랬다. 이제 배는 불러오지, 뤼대감으로부터 완전 소박을 맞았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쯔윈의 아버지 펑사장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한 숟가락 가득 겨자를 퍼먹는 심정으로 촌놈 우룽과 쯔윈을 혼인시켜버린다. 난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정상적인 20세기 초반 중국 아니겠는가 싶었다. 근데 혼인 날, 뤼대감이 꼭 첫날밤에 열어보라고 칠기를 한 고급 목합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첫 번째로 작가 쑤퉁에게 질려버렸다. 임신한 여자에게 장가든 촌놈 우룽이 자신을 우롱한 아바오와 쯔윈의 밀통을 몰래 뤼대감에게 알려줘 아바오를 죽게 만든 건 그렇다고 쳐도, 썩어가는 아바오의 생식기를 첫날밤에 열어보라고 목합에 담아 선물했다는 설정은, 오버다, 오버. 거기다가 바로 다음날, 먼 곳에 가서 배 두 척의 쌀을 사오라는 장인의 심부름을 가게 된 우룽. 심부름의 목적은 우룽을 죽여 쯔윈으로 하여금 과부 신분으로 만들려는 꼼수였던 것. 이쯤 되면 이후 우룽의 처가에 대한 악행은 일면 당위성을 갖기는 하지만, 엽기 스토리, 정말 해도 너무한다.
몇 달 후 쯔윈이 아들을 낳음으로 해서 자손 없는 뤼대감의 여섯 번째 첩으로 들어가 거의 하녀 수준으로 살게 되고, 뇌졸중 후유증으로 펑사장이 죽어가며 마지막 남은 힘으로 더럽고, 길고, 노인 특유의 바짝 말라 두껍게 각질이 덮인 손톱으로 우룽의 왼쪽 눈알을 파 애꾸로 만들어 놓고 죽은 다음, 우룽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처제 치윈을 두 번째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후 우룽이 죽을 때까지 싸전 대홍기와 대홍기를 둘러싼 와장가와 도시 속에서 우룽, 쯔윈 남매, 쯔윈 남매의 후손들이 펼치는 눈뜨고 못 볼 행각들의 나열. 중국인과 정서 차이인줄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런 작품을 모옌, 위화, 심지어 다이 허우잉과 비견하는 위치로 올릴 수 있는지 정말 난감하다. 그러고 보니 <홍등>마저 내게 인상 깊게 남아있는 건 장이모우 감독의 영상미, 쉽게 얘기해서 필름의 색채감이었지(공리의 미모는 논외로 하자 뭐!), 결코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아니었던 거다.
하여간 죽고 죽이고, 물고 물리고, 때리고 맞는 순환. 이것이 도시에서 사람이 사는, 또는 191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중국에서 사는, 살아내는, 생존하는 방식이었다고 주장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는지, 난 도통 모르겠다. 당연히 문학이 구름 위의 궁전에서 천상의 노래만 하라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지상의 인간들이 오직 생각으로만 품을 수 있을 거 같은 악행으로만 점철하면서 그걸 보고 사실주의입네, 리얼리즘입네, 함부로 주장하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쌀>은 수준 이하의, 습작 정도의 작품이라고 결론 내는 것이며, 다시는 쑤퉁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 어, 이 책도 양장본, 반양장본이 있네. 난 반양장본을 읽었다. 새삼 그쪽으로 글을 옮기려고 하니 귀찮다. 그냥 내비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