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존 치버라는 이름 자체가 영미 소설의 한 브랜드로 자리한 현대 영문학의 별. 이 정도면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를 쓰고 몇 달 후 생을 마감한 치버에 대한 적절한 헌사가 되지 않을까싶다. 세월이란 참. 150쪽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장편소설이지만 스스로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알았을 치버는, 자신의 생을 바쳐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쓴다.
 “내가 맨 앞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비 오는 밤 낡은 집에서 침대에 앉아 읽는 이야기일 뿐이다.” (143쪽)
 아직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는 노인 레뮤얼 시어스, 어느 겨울의 일요일 아침, 대단히 실용적인 우호관계를 맺고 있고 심지어 여태 서로 사랑하기까지 하지만 신뢰하는 사이는 아닌 큰 딸에게 전화를 해, 딸의 집 벽장에 있는 스케이트를 들고 100년 만에 꽁꽁 언 비즐리 연못으로 향한다. 소설은 노인이 스케이트를 즐기는 비즐리 연못을, 도시의 쓰레기로 메워 그 위에 참전용사의 집을 건립할 계획인 도시의 시장과 폭력배 집단의 시도를 물리치고 이미 오염된 연못을 정상적인 습지로 보관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모습까지를 그리고 있다. 연못의 보존이란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자잘한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도 몇 개 첨가되어 읽는 재미를 준다.
 삶을 많이,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살아내 이제 부유한 은퇴자의 생을 즐길 수 있는 노인에게, 아직도 여인과 여인의 살에 대한 동경이 넘쳐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고, 즐기고, 버림받고, 그래서 흐르는 슬픔을 눈물에 담는 시어스. 그는 작가 치버 자신이거나 치버가 상상 속에 스스로 되고 싶었던, 스스로이고 싶었던 한 등장인물로 나는 읽었다. 여전히 삶과 이성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연못이 급격하게 더러워지면서 연못 속의 생명체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여 자신의 돈을 써 권력과 싸우려하는 것. 치버가 생각하는 노년의 모습이 비단 이 둘 뿐이겠느냐만, 개인으로서의 희망사항으로 사랑을, 사회적 희망으로 환경보전을 꼽아 그의 말대로 “비 오는 밤 낡은 집에서 침대에 앉아 읽는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을까.
 이미 시간은 23시 59분. 콩팥에 암이 생겨 전신에 퍼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는 단 1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신장부전으로 인한 죽음에선 정상적인 뇌 활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는 존 치버. 그 역시 사람이기에,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진정으로는 믿지 않았다고 해도, 커튼콜이 없는 인간으로의 삶이 눈썹만큼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사람의 사랑과, 내일을 위한 지구환경을 남긴 것이다. 사랑과 환경이란 보편 주제에 대하여 마지막 작품으로 썼다고 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그저 소박한 읽을거리, 이야기 감으로 조근거린 것이, 나로 하여금 기껏 다 읽고 마지막에 헛기침을 하게 만들었다.
 짧은 작품이라서 더 이상의 책 이야기는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고, 이쯤에서 그의 ‘이야기’를 접는 것이 또한 그의 겸양에 대한 예의 같기도 하여 짧은 독후감으로 끝을 맺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