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을 뛰어넘는 사람 대산세계문학총서 97
페터 슈나이더 지음, 김연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두 번째 읽는 슈나이더. 재작년에 <에두아르트의 귀향>을 재미있게 읽고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한 권 더 읽은 것. <에두아르트의 귀향>이 1999년 작품이고,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이 1982년에 출간되었으니 두 작품 사이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독일 현대사의 거대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앞서 읽은 책엔 통일 후 생각지도 못하게 동 베를린 지역의 한 건물을 상속받아 상속건물을 방문한 에두아르트가 그동안 비어있던 건물의 소유권을 주장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얘기를, 격변기에 곳곳에서 끊임없이 도시개발 중인 동쪽 베를린의 모습을 그렸던 반면,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에선 불과 7년 후인 1989년 말이면 무너진 장벽 위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하게 될지는 꿈에도 모른 상태에서, 마치 등산가들이 산이 있어 산을 오르듯이, 장벽이 있기 때문에 장벽을 넘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작품의 한계는, 장벽이 유구하게 서 있다면 슈나이더가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언제라도 효용이 있겠으나, 이미 장벽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동독과 서독이 통일까지 되어버린 현재 상태에서 장벽으로 나뉜 두 체제에서 살던 인물들 간 묘하게 발생해버린 사고방식의 차이점 같은 것이 이젠 아무 의미가, 아니, 조금 양보해서 말하자면, 별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 하겠더라는 것.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굳이 비교를 해서, 대한민국의 1980년대 후반의 첨예했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참여시와 서정시의 논쟁에서 당대엔 당연히 리얼리즘과 참여시 앞에서 상대편에 선 문학은 잔뜩 주눅이 들었었지만, 그리하여 시대를 넘어 유행하는 시인 기형도마저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라고 부채감이 잔뜩 든 유명 시를 썼지만 그때부터 38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살아남아 (평론가들에게는 별개로 하고)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즐겁게 읽게 하는 것은, 모더니즘과 서정시인 것과 비슷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자면, 분단 독일과 양쪽 독일인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선택, 서로의 차이점 같은 것들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이 생각하기론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던 열전의 현장 베를린 장벽을 수시로 뛰어넘던 괴짜 인간들을 구경하는 것이 이 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즐기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베를린 장벽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좀 보자.

 

 “서베를린을 에워싸고 있는 국경의 둘레는 총길이가 165킬로미터나 된다. 그중 106킬로미터는 장벽판의 꼭대기를 둥그런 모양의 도관으로 덮어 씌웠고, 55.1킬로미터는 금속 스탬핑을 해서 만든 창살 울타리로 둘렀다. 이 국경을 따라 260개의 감시탑이 서 있으며, 그 두 배나 되는 수의 국경감시병들이 밤낮으로 망을 본다. (중략) 동쪽에서 국경 분리선으로 가는 길은 부가적으로 내부 장벽에 막혀 있는데, 이 내부 장벽은 다양한 폭으로 간격을 유지하며 외부 장벽과 나람히 뻗어 있다. 내부 장벽의 발치에는 곳곳에 못을 친 나무판들이 놓여 있는데, 그 나무판에 박혀 있는 12센티미터의 철못들은 뛰어내리는 사람을 말 그대로 못박아버린다.” (56~57쪽)

 

 으시으시하시지? 근데 서베를린에 카베 씨라고 하는 40대 중반의 직업 없는 사내가 있었다. 이 양반이 장벽을 보니, 장벽 아래가 폐허지대인데 거기 폭스바겐 수송차, ‘수송차’니까 트럭일 것이고, 트럭이면 높이 또한 상당할 터, 눈이 번쩍 띄었던 거다. 그래서 볼 것 없이 냅다 달려 트럭 꼭대기에 발을 쿵, 딛어 도움닫기를 해서, 40대 중반인데 힘도 좋지, 장벽을 훌쩍 서쪽에서 동쪽으로, 뛰어 넘어갔던 거다. 서쪽 순찰대가 뒤늦게 탐조등을 비추고 난리를 부렸지만, 장벽은 꼭 동쪽에서 서쪽으로만 넘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카베 씨를 잡을 수 없었고, 난데없이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서독 국민을 바라본 동독 정부는 도대체 카베 씨가 장벽을 넘은 이유를 알지 못해서 틀림없이 스파이일 거라고 짐작해, 고문까지는 하지 못하고 신문을 했다고 한다. 근데, 담 넘은 이유가, 정치적 의도도 없고 오직 자신이 원해서 넘어온 건데 그렇다고 동쪽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단다. 즉, 아무 생각 없이 넘어온 거다. 이렇게 동쪽에서 3개월 동안 잘 대접받고 벤츠까지 태워줘 서쪽으로 다시 ‘반환’된 카베 씨를 서독에선 아무런 죄를 물을 수가 없었단다. 베를린 장벽은 국경이 아니어서.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여행의 자유를 누린 것일 뿐. 카베 씨의 모험으로 밝혀진 것은, 장벽 뒤 모든 곳에 지뢰나 쇠못이 박혀있지는 않다는 것이 유일하달까. 어쨌거나 동쪽에서 잘 지낸 석 달 동안, 서쪽 은행 구좌에 그동안 한 푼도 안 쓴 사회연금이 꼬박 모여 있어, 그걸로 파리 여행까지 즐겼다는 거 아냐? 여기에 맛들인 카베 씨,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훌쩍 넘어간다. 이번엔 동쪽에서 역시 3개월 동안 정신병원행. 3개월 지나 서쪽으로 돌아와도 또다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그러나 역시 독일은 동서를 불문하고 민주주의 사회라서, 양심적인 정신과 전문의는 카베 씨한테, 지극히 정상이란 판정을 내린다. 이젠 카베 씨는 심심하면 도움닫기를 하는 단계까지 왔는데 몇 번이나 훌쩍 담을 넘었는가 하면, 무려 열다섯 번. 하도 열 받은 서독 정부(경찰 아니면 병원이겠지)가 카베 씨한테 도대체 왜 자꾸 담을 넘으려는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카베 씨 왈,

 

 “집 안이 너무 조용하고, 밖은 너무 흐리고, 안개는 너무 짙고, 그리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이런 생각을 하죠. 아, 다시 한 번 장벽을 뛰어넘어보자.” (38쪽)

 

 그냥 이유가 없는 거다. 위에서 얘기했듯, 에베레스트나 K2에는 죽자사자 왜 오르나. 거기 산이 있어서. 그래, 장벽이 거기 있어서 그냥 뛰어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나보다.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반발해서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던 미국 등의 서방세계. 이런 시절에 그냥 밤 마실 가듯 아무렇지도 않게, 여차하면 자동화기에 벌집이 되든지, 12센티미터 대못으로 못 박혀 버리든지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냥 거기 장벽이 있어서, 서베를린의 개봉관에 가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뛰어넘은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 물론 다른 얘기도 좀 섞이긴 했지. 그 얘기는 하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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