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새로운 소송
페터 바이스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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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또 페터 바이스. 작년 5월에 길고 긴 장편소설 <저항의 미학>을 읽느라고 짧은 인생 마감하는 줄 알았으면 좀 알아서 삼가야 하는데, 터무니없이 책 욕심을 부려 <소송 · 새로운 소송>을 또 읽고 말았다. <저항의 미학> 3권을 보면 바이스가 카프카에 대하여 상당할 정도의 애착이랄까 관심이랄까, 를 가지고 있는 걸 눈치 챌 수 있어서, 아무리 바이스라지만 희곡이라면 일단 길이가 장황하지 않을 터이니 언제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보리라, 작심을 했었다. 그때 작심만 하고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 우연히 책 검색을 하다가 페터 바이스를 클릭 했었나보다. 그랬더니 고려대학출판부에서, 놀라지 마시라, 청소년문학시리즈로 이 <소송 · 새로운 소송>를 팔고 있는 거 아닌가. 아하, 청소년 문학이라. 흠. 이 정도면 뭐. 당연히 부담 느끼지 않고 사 읽었고, 코피 났다.
 이 책은 희곡 두 작품을 실었다. <소송>하고 <새로운 소송>. <소송>은 카프카의 동명소설을 연극으로 유사하게 만든 드라마. 바이스가 처음부터 소설만 쓴 것이 아니라서 희곡과 시나리오까지 두루 섭렵을 했다고 하니 스스로는 자연스런 일이라고 할 만하겠다. 그러나 1975년 브레멘에서 초연을 한 <소송>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냥 막을 내려서, 어허 이거 봐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K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써 1982년에 스톡홀름에서 초연하고 그해 5월 같은 도시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이때의 제목이 <새로운 소송>.
 1975년의 <소송>에선 카프카의 원작과 같이 K가 체포당하고, 체포당했으면서 일단의 사회활동은 계속해나가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경찰국가나 뭐 제도적인 국민 감시체제 등을 이야기하는데 <새로운 소송>에선 K가 체포당한 상태가 아니면서도 거대 카르텔 기업에 신체와 영혼을 구속당하는 것으로 묘사가 된다. 두 작품 공히 무대는 1923년 7월 3일, K의 서른 번째 생일 아침부터 1924년 7월 2일까지 만 일 년으로 되어 있다. 내가 이 책을 선뜻 손에 든 이유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난 카프카의 <소송>을 그리 인상 깊게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카프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 진짜 이유다.
 그리하여 내가 진짜로 놀랐던 것은 바이스가 읽은 카프카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기로 한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 눈에 띄었던 사실은, K를 끌어내려 결국 파괴하는 힘이란 전체적으로 보아 소시민성의 힘이란 점이었다. 그가 고통당한 모든 것, 그리고 절망적 노력에도 그가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 부르조아 시민계급Bürgertum이 만든 완고한 편협성, 법률 그리고 광기의 영역에서 나온다. 가장 가까운 그의 주변 사람이란 소시민들이고, 그는 이들의 판단에 노출돼 있다.” (13쪽)


 당시 인텔리겐치아 계급을 대표하는 K를 체포하여 서서히 결딴을 내는 제일 궁극적인 힘은 소시민성이라는 거다. 부르조아(왜 ‘부르주아’라고 표기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내 청춘시절엔 흔히들 ‘부르조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계급의 편협성과 법률, 광기의 영역을 깨서 물리치지 못하고 주저 앉아있던 당시 시민들의 운동성 미흡이 K로 하여금 파멸의 길로 몰아갔다는 시각. 왜 나는 카프카의 <소송>과 <성>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볼 마음도 먹지 못했을까. 물론 나는 카프카 역시 바이스하고 같은 심정으로, 그런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소설을 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텍스트를 읽고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는 것은 독자와 평론가 고유의 권한이니, 나는 찍 소리 하지 못하고 바이스의 눈에 띄었던 진실에 대하여 온전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런 시각은 <새로운 소송>에서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어떤 장면인지는 직접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다. 하여간 <새로운 소송>에선 시민들에 의한 운동성과, 인텔리겐치아 K의 이들에 대한 동조가 분명히 드러나고, 이미 역사를 경험한 바이스 입장에서, 시민운동들에 대한 억제와 동시에, 카르텔 등 부르주아 계급이 만든 억압적 광기에 의하여 전쟁이 발발한다고 예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견은 결코, 절대 유일한 것도 아니며 이미 1910년대 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계속 거론되어왔던 것이라 새롭지는 않지만, 나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한 건, 중복해 얘기하는 것이 틀림없겠으나, 이 논조의 전개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프카의 것에서 가지고 왔다는 데에 있다.
 솔직히, 재미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한다면 글쎄 흥미는 느끼겠지만 굳이 가서 볼 정성까지 생기지도 않는다. 페터 바이스가 원래 그렇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지 섣불리 따따부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진짜 못 말리는 건, 고려대학출판부가 이 책을 “청소년문학시리즈”의 020번으로 냈다는 거. 하여간 대학하고 출판사 인간들 아는 척, 잘난 척 하는 거 보면, 무섭다,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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