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2
도리스 레싱 지음, 나영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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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은근히 레싱의 소설을 제법 읽었다. <다섯째 아이>, <풀잎은 노래한다>, <런던 스케치>, <황금 노트북>에 이어 이번에 <마사 퀘스트>까지. 이이는 페르시아, 그러니까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나서, 짐바브웨를 비롯한 남부 아프리카에서 서른 살까지 살다가 영국으로 이주한 작가다. 제도권 교육은 열세 살까지밖에 받지 않았고 독학을 했다는데, 당시 남부 아프리카의 여성 거의 다가 이러했던 모양이다. 작가가 열다섯 살이 됐을 때 대문을 박차고 나가 타이피스트, 전화교환원 등의 잡일을 하며 두 번의 결혼까지 겪은 것을, 이 책의 주인공 마사 퀘스트가 열여덟 살이 되어 법률사무소의 타이피스트로 취직하면서 집을 나와 몇 번의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는 걸 보고, 굳이 이 책을, 출판사가 광고를 하듯이,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 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의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 그것이 뭐가 됐듯이 자기의 내밀한 한 모습을 투영(“거울 속의 나”)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두 명만 대보세요. 만일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겠다.
 한 영국 남자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사소한 부상을 입어 후송된 바로 그 기간 중에 자신이 속한 부대가 악명 높은 솜 전투에 투입되어 아주 깡그리 몰살을 당했다. 그것도 장교가. 어쨌건 간에 부대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은 퀘스트 선생은 전쟁 후 제대를 하고, 다시 생업인 사무직으로 복귀했으나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 이제 우리는 이런 경우를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긴 병명으로 부르지만 1920년대 제국의 땅 런던에선 그냥 실패자일 뿐이었다. 남자는 이런 주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설명회에 참가했다가, 1~2년만 제대로 옥수수 농사를 지어도 투자금액을 몽땅 뽑고도 많이 남길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젊은 아내를 데리고 남부 아프리카의 저 깡촌에 있는 넓고 넓지만 말 그대로 황무지에 농장을 마련한다. 이집의 열다섯 살 먹은 딸내미가 바로 책의 주인공 마사 퀘스트.
 아프리카 식민지로 떠난 식민모국 출신의 지주 모두가 다 행복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았다는 건 레싱의 처녀작 <풀잎은 노래한다>에서 재미있고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생략한다. 그러나 행복하지도 않고 부유하지 않은 영국 이민자들의 삶조차도 흑인 원주민이자 거의 노예 비슷한 참혹한 지경에 처한 원주민이 평생 뼈가 빠지고 혀가 빠지게 일을 한다 해도 결코 이들과 비슷한 환경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걸, 열여덟 살의 마사 퀘스트는 알아낸다. 고향 비슷한 아프리카 농장에서의 삶에서도 마사는 질식할 것 같고, 그리하여 탈출한 도시에서도 결코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는 진퇴양난. 이 책이 출판된 다음 꼭 10년 후에 발표한 그녀의 최고작 <황금 노트북>에선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역 이주한 아이 딸린 두 이혼녀를 중심으로 지역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공산주의운동, 성소수자 차별 등등에 대한 발제를 했지만, 이 책에서는 인종주의와 성차별, 그리고 사회주의에 관해 약간의 문제 제기만 할 뿐, 적극적인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엔 조금 더 시간적 성숙이 필요했었나보다. 그리하여 책을 읽으면, 신경이 날카로워 주변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생각으로이거나 실제로이거나 날선 말과 대화, 선언을 일삼는 십대 후반, 하이틴의 예민한,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매우 피곤한, 정말 피곤해서 상대도 하고 싶지 않을 만한 성격을 주인공에게 부여했는데(당연히 많은 부분이 도리스 레싱이 젊었을 때 이랬을 거라고 유추해볼 수도 있으나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여기서 주목, 내가 읽은 레싱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그리하여 도시생활을 꾸려나가다가, 당연히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 농장 사모님의 자리에 오르면 <풀잎은 노래한다>가 되는 것이고, 아이까지 낳고도 만족을 못해 결혼을 물린 다음 유럽으로 날아가 동성의 애인을 만나면 <황금 노트북>이 되는 것이고, 결혼은 돌이킬 수 없는 구속이라는 마사 퀘스트의 신념을 그대로 지녀 돈을 모아 스스로 아프리카 내의 지방주의적 활동을 위해 자기 자신이 농장을 건설해 농장 사장님이 되면 또 다른 남아프리카 출신의 소설가 존 맥스웰 쿳시가 쓴 <추락>이 되는 거다. <황금 노트북>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 대부분일 테니, 비록 지금은 절판이지만 다시 팔기 시작하면 꼭 읽어보시란 말씀으로 대신하고, <풀잎은 노래한다>에선 흑인 하인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하며, <추락>에선 늙고 더럽고 음흉한 흑인의 첩 가운데 한 명이 될 상황으로 처해질 텐데, 과연 마사 퀘스트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리스 레싱이 이 소설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 무대는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을 시작할 무렵인 1930년대 후반의 시간 공간이다. 벽촌의 농장. 영국인 부부는 이웃한 보어인, 즉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 부부와 친한 이웃으로 지내다가 서서히 서로 보이지 않는 잉글랜드-보어인 사이의 벽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고,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시내 유대인 남자형제들과도 부모의 반유대적 성향으로 멀리하면서 책을 빌려보곤 했던 취미까지 잃어버린 절정의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녀, 스스로는 민족 간은 물론이고 피부색에 따른 인종 간 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저 깊은 마음속에서는 뭔지 모르는 거리감이 있는 상태. 이런 상태가 어떻게 발전되어 사건을 극적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는, 책을 먼저 읽어본 사람 입장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읽어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식민지 지배계급으로 식민 모국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 혹은 꿀림이랄까, 하여간 점수를 몇 점 잃고 시작하는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 이런 거 아시지? 더해서 식민지 젊은이들 사이에 결코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스포츠클럽에서 생기는 일종의 합법적 일탈, 한없이 불량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이 사회의 정점에서 사회를 이끌고 갈 백인들과 그들의 아내가 될 아가씨들의 방종, 그리고 분명하게 그들의 미래를 흩어놓을 2차 세계대전, 전쟁의 그림자. 이런 불확실 속에서 마사 퀘스트는 지켜지지 않는 다짐과 보이지 않는 미래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줄 인식과 독서를 통해 의식이 성장하지만, 집을 나와 시내에서의 독립까지를 도와준 조스 코언, 유일한 조언자이자 후원자이지만 언제까지 가까이 하지 못할 유대인 공산주의자와의 관계도, 한 발도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그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젊음의 낭비. 언제가 됐든 지금은 한낱 꿈일망정 그것 하나, 남프랑스에서 포도농사를 짓겠다는 꿈 하나를 간직한 채, 마사 퀘스트와 이들은 오늘도 함부로…….



*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번역을 한 나영균의 글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애써서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긴 했는데, 같은 문장을 몇 번 읽어야 할 때가 많았다. 국내 초역이라 참고할 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보자.


 “여자들이 나타나자마자 남자들 목소리는 전에 없던 활기를 띠며 커졌다. 그리고 그들은 마사 자신도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있어서 잘 알 수 있는 꺼림칙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이 가정적인 정경에서 등을 돌렸다. 그녀는 야단스럽게 법석대는 여자들을 지켜보았는데, 마치 눈빛이 거센 두려움 속에 그들에게 들러붙은 듯했다. 그녀는 다짐했다. ‘절대절대 저렇겐 안 될 거야.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녀는 침착을 가장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접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215~216쪽)


 전체적으로 무지 헷갈리는 문단인데 특히 위 붉은 글씨의 문장이 과연 무슨 뜻인지,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주어가 분명히 "눈빛"인데 그게 '그녀의 눈빛'인지 '여자들의 눈빛'인지 모르겠다. 혹시 (숨은)주어가 "그녀" 또는 "여자들" 아냐? 예컨데,

 "그녀가(혹은 여자들이), 눈빛이 거센 두려움 속에서, 그들에게 들러붙은……"

 이라고, 두려움은 두려움인데 눈빛이 하도 거세 생긴 두려움 속에서, 라고 읽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 하여간 애매한 문장인 건 맞다.


 아울러, 대명사 ‘그들’ ‘그녀’ ‘그’ ‘이’ 같은 것들을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독자는 점점 더 오리무중에 수렴한다는 걸, 번역하시는 분들은 제발 유념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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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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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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