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나무 대산세계문학총서 63
피오 바로하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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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하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이이가 1956년에 죽었는데, 그때 관을 운구했던 인물 가운데 글쎄, 헤밍웨이가 있었단다. 원래 헤밍웨이가 스페인 언어권하고, 더 넓게 말하자면 라틴 문화권하고 유난히 친숙하더라니 급기야 대서양을 건너 가 이런 짓도 했다. 바로하가 우리나라에서는 완전 생소한 작가지만 스페인에선 뭐 대단한 찬양을 받는 모양인데, 당연히 나도 이게 처음 읽어보는 소설로, 정작 읽어보니까 사실 별 거 없다. 유럽 소설가들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27쪽 가량 등장하는 거 말고는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거기다가 살을 좀 보태서 쓴 소설책이라 해도 많이는 틀리지 않을 거 같다.
 (당연히 철학적 사유, 주인공 안드레스 우르타도와 외삼촌 닥터 이투리오스가 나누는 대화를 담은 책의 4장, 스물일곱 쪽이, 너무 거창한 예와 비교를 해서 좀 안됐으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끝도 없이 이어질 거 같이 이어지는 조시마 장로 이야기처럼 소설에서 독립적으로 따로 떼어져 있으나 상당히 중요한 주제를 포함하지만, 문학이라기보다 너무도 철학 에세이처럼 읽히는 바람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래 철학적으로 쓴 글, 추상과 사변을 강요하는 현학적인 것들을 많이 싫어해서 그렇겠다고 그냥 읽어치웠다.)
 위 괄호에서 말한 거 말고는 우리의 주인공 안드레스와 작가 바로하가 정말 많이 닮았다. 작가와 주인공은 똑같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나중엔 박사까지)와 함께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정식 의사였으나 의사 직을 때려 치고 주인공은 의학서적 번역 등의 출판업으로, 작가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서 문제의 1898년 사건을 접하게 된다. 1898년 사건이 뭐냐 하면, 이건 스페인 문학을 즐기시는 분은 상식으로 알아두시면 좋은데, 쿠바의 독립운동을 두고 미국인들이 개인 신분으로 참전을 하고, 미국 내에서 쿠바 독립채권 같은 걸 발행하는 것도 모자라 연일 언론으로부터 스페인이 쿠바를 학대했다느니 폭정이라느니 마구 떠는 꼴이 자존심 상해, 1898년 철없는 스페인 정부가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미국에 선전포고 했다가 초전에 박살이 나 쿠바가 독립을 하고, 승전국 미국한테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 사건이다. 이것으로 스페인의 모든 해외 식민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마는데, 일찍이 무적함대를 자랑했던 위대한 스페인의 그나마 알량하게 남아있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지는 민족적 참사로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주인공의 현명한 외삼촌 이투리오스 선생은, 20세기가 되기 전에 스페인이 해외의 모든 식민지에서 손을 턴 일을 “다행”이라고 한다. 이거 좀 이상해. 하여간 이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모임을 ‘98그룹’ 혹은 ‘98세대’라고 했고, 바로하가 이 세대의 가장 앞쪽에서 맹활약을 했던 거 같다. 내가 뭐 아나. 책 읽어보니 그렇다는 얘기지.
 소설의 분위기는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재미난 책,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경이로운 도시> 참조)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과학에서 거의 완전히 변방으로 밀린 스페인의 후진성이 전반적으로 배경으로 깔려있고, 한 젊은이가 의사란 직업에 관한 투철한 목표의식 없이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가 지방소도시와 수도에서 의사 직을 수행하며 회의를 느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독자가 스페인 사람이라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의사(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숱한 시대적 난관을 체험하는 동시에, 선진 유럽국에서는 이미 과정을 거친 철학적 논의를 이제야 고민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문제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었겠다. 이 사람의 이 작품도 그렇게, 미겔 데 우나무노의 <사랑과 교육>도 그렇고, 후발 유럽국,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를 갖고 있는 후진국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재미? 글쎄. 권하지 않겠음. 4장의 철학적 대화 장면 아니면 그냥 한 지식인의 이야기 책. 4장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뭐 이젠 유효기간이 지난 과학 철학적 논의.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아, 이런 책이 있구나.”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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