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빠뜨 - 작은 관계의 기적, 백만의 어린이를 읽게 한 힘!
즈느비에브 빠뜨 지음, 최내경 옮김 / 재미마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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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를 보면 저자 즈느비에브 빠뜨 여사의 캐리커처가 있다. 옆엔 아이들이 마치 할머니가 읽어주는 동화를 재미있게 듣고 있는 것 같고. 보기 좋은 광경이다. 표지를 넘겨 책의 앞날개를 보면 정말로 빠뜨 여사의 실물사진이 나온다. 여사의 사진을 한 번 보고 넘어가자.

 젊은 시절과 나이 든 다음.


 

 왜 저자의 사진과 표지를 먼저 이야기하느냐 하면, 표지를 보고 이 책이 사서 60여년 경력의 여사가 도서관에서 일하며 겪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낸 이야기, 제목 아래 씌어있듯이 백만 명의 어린이로 하여금 책을 읽게 만든, 나이 든 사서가 어린이들과의 작은 관계를 어떻게 맺었는가, 하는 경험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부분 이런 생각은 맞았다. 자신의 유년시절, 형제들과 함께 작은 역할놀이를 할 때부터 즈느비에브는 도서관의 사서 역을 맡아 동네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읽어주는 것을 즐겼으며 그리하여 평생 아동도서관의 사서 일을 만족하면서 할 수 있었으리라(아, 얼마나 행복할까!). 아동도서관의 이름, ‘아,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건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이름의 아동도서관. 이것만 있나. “작은 동그라미 도서관”, 등.
 책의 1장 “경험들”과 2장 “깨어있는 심장”에는 빠뜨여사가 도서관 사서로 취직을 하고, 주로 이민자들로 구성된 파리의 취약지구에 도서관을 세워 주민들의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취약지구의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서,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문학작품이나 과학책을 통해 습득한 자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단계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의 아동도서관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세계의 아동도서관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나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도 언급한다. 독자는 이 1부와 2부를 읽으며, 이건 혹시 전 세계적으로 아동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도서관 운동의 일환으로, 학교나 도서관 등의 교육기관에 유용한, 즉 참고하여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동시에 앞으로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성과 보고서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잠깐 다른 이야기.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는 도시에서 가장 많은 학원들이 밀집해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를 불문하고 언제나 밤늦도록 불야성을 이루는데, 한 깊은 가을 퇴근해 집에 걸어 들어가는데 양 볼에 사탕 하나씩을 물고 있는 것 같은 포동포동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잘 해봐야 대여섯 살. 하도 예쁘고 귀여워, 어디 가니? 물어봤다. 중국어 학원이요. 내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너, 영어도 하지? 예. 그럴 줄 알았다. 웃으며 이번에는 애 엄마를 바라보고 한 마디를 더 했다. 아이고, 애들을 잡는구나, 잡아. 젊은 엄마는 호호 웃었는데 아이가 또 한 마디. 수학도 하러가야 하는걸요. 아, 세상 어려서부터 힘들구나. 그래, 그래도 이왕 하는 거니까 열심히 해라. 아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맙습니다, 라고 했고(아이가 착하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예절교육도 잘 받은 거 같다) 젊은 엄마도 그냥 예쁘게 웃는다. 순간 신호등이 바뀌고 우린 길을 건너 서로 반대방향으로, 아이와 엄마는 중국어 시험 치러 학원 쪽으로, 나는 아무 상점에서나 팔지 않는 25도 진로소주 사러 마트로 걷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와 중국어와 수학 학원에서 미리 배워야하는 시대. 이 시대에 아이에게 동시에 영어와 중국어 교본, 거기다가 수학교재 말고 동화책, 몇 년 후 불후의 명작을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발판이 될 아동용 소설책을 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지 않다면 <사서 빠뜨>는 대한민국에선, 대단히 불행하게도, 용도폐기 되어야 한다. 문자를 습득하기 전에 유아들이 보는 그림책과, 습득 중 또는 글자를 알기 시작한 단계에서 읽는 그림동화의 매출은 예전과 비해 해당 인구 당 양과 질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못살겠다, 못살겠다, 해도 해외여행 인구가 해마다 느는 것처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쓰는 돈도 늘 테니. 한 마디 더 해볼까? 문자를 습득한 이후,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동화책을 찍는 출판사의 매출액의 연도별 신장률은. 하지만 동화책을 사고, 동화책 전집을 들여놓고 그거 정말로 아이들한테 읽히려나? 유치원, 영어학원, 중국어학원, 수학보습학원, 거기다가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돈 있는 부모면 한 바퀴 더 돌려서 발레학원까지 온종일 뺑뺑이를 돌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온 아이더러 또 동화책까지 읽으라고 닦달을 할 비정의 부모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모든 부모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도서관 혹은 교육계에 적을 두지 않았더라도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스스로 도서관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빠뜨 여사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도서관의 역할을 우리나라 보통 계급의 부모는 직접 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빠뜨 여사는 주로 취약계층 아동들에 대한 관심에서 책을 썼으나 내가 한국의 취약계층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언급하지 못하는 점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아직도 아동, 사춘기 이전의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선정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 거의 완벽하게 서양인의 시각이지만, 책의 3장부터 5장까지 빠뜨 여사는 2017년 현 시점에서 문자 습득 전의 동화책부터 사춘기 바로 전까지 읽을 만한 책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으며, 역자는 책들에 대해 역주를 달아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번역물이 있을 경우 해당 출판사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60년이 넘게 아동도서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 세계최고의 전문가가 권하는 책들을, 부모는 검색하고, 인터넷 책방에 가서 미리보기를 통해 일부를 읽은 후, 상당히 안전하게 자녀들에게 권할 수 있다는 말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면 빠뜨 여사의 의견하고는 완전히 맞지 않는다. 책을 사주고 (휙~ 던져주지는 않을 테니까) 마치 부모의 모든 임무를 마친 것처럼 책을 읽지 않는다고 동네방네 다니며, 쟨 책을 사줘도 읽지를 않아요, 읽지를! 광고 하지 말라는 얘기.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른들의 친근감 있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한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책을 읽어 주는 목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위안을 주고 어루만져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필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라스무스와 방랑자》를 특별히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 적이 있다. 여덟 살에서 열 살까지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네 살짜리 꼬마가 다가와서 편안한 자세로 내 무릎에 앉았다. 그 애는 즐겁다는 듯한 얼굴 표정으로, 책을 읽는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 애가 과연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위한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궁금하여 아이에게 물었다. ‘이야기가 재미있었니?’ 아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어른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아요.’” (215쪽)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듣는 아이는 대단히 높은 몰입도로 듣고 가장 깊이 공감한다는 것을, 책을 읽어준 경험이 있는 부모는 알 것이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책도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드는 공감, 동일한 관심, 같은 텍스트에 대한 다른 견해에 관해 토론하는 일, 다음에 읽어볼 책에 관한 논의 등의 직접 접촉이 중요하다고 여사는 초지일관하게 주장한다. 현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아동들의 유일한 도서관은 불행하게도 부모일 확률이 대단히 높다. 당신은 아이들의 내일, 걔네들이 누리는 행복을 위해 영어와 중국어와 수학 학원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책을 골라서 읽어주고 부모자식 간에 의견과 감상을 공유할 것인가를, 정말 진심으로 안타깝지만, 결정 또는 타협을 해야 할 시간이 도래했을 수도 있다. 나? 내 걱정은 마셔. 난 다 끝났으니까.

 

 

 


* 교정 교열 수준도 상당하다가, 200쪽이 넘어가면서 집중력이 좀 흐트러지는 느낌이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출판사보다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 역자 최내경의 진지한 번역작업이 눈에 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티가 난다. 읽다가 한 군데서 터졌다. 과하게 진지해서 이런 유머도 생긴다.

 

 “토론의 풍성함, 토론에 참여한 아이들의 성숙함은 우리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토론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말이다. ‘어려운 주제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작가(야누스 코르착)는 독자들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단순한 문체로 복잡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주인공 마치우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주인공이 마음에 들면 책은 저절로 재밌게 읽혀요.’”

 

 속 따옴표 부분이 아이들이 한 말인데, 암만 읽어도 아이들이 한 이야기는커녕 파리 제4 대학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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