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1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목은 <가오싱高興>. 아주 신이 난 상태를 뜻한다. 책의 주인공 류가오싱劉高興의 이름이다. 무대는 시안西安. 일찍이 진나라 시황 영정嬴政이 천하를 통일하고,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로 생각했던 곳)에 도읍을 정했으니 이를 일컬어 창안長安이라 칭한 후 당나라 시대까지 무려 1,000년간 세계최고 강국의 수도로 이름을 떨치다, 1943년에 이르러 시안으로 개명을 한 곳. 주인공 가오싱은 상저우商州의 벽촌 칭펑읍淸風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벽촌에서 당시에 고졸이라면 나름대로 엘리트였겠으나 세상일이 뜻대로, 공부한대로, 잘생긴 대로 가는 것이 절대 아니라서) 주먹만 한 땅뙈기를 배정받아 농사일을 하던 차, 일 년 365일 아무리 똥지게를 지고 땅을 후벼 파봐야 별 볼일 없는데다가, 덩샤오핑의 개방정책 바람에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을 변하는 걸 눈으로 보고나서, 우둔한데 덩치 크고 힘만 센 동네 형 우푸와 함께 거대도시 시안으로 돈 벌러 떠나, 몇 년간 시안에서 등골이 빠지게 고생한 이야기를 적은 소설이다. 이쯤이면 팍 와 닫는다. 중국 근현대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 지지리 궁상. 저번에 이름이 뭐더라, 무지개 그림자, 홍잉虹影의 작품 <영국 연인> 서문을 보면 “언젠가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평론가 한 사람이 내게 꾸짖듯 물은 적이 있다. ‘중국에 관한 책은 왜 이렇게 늘 비참한 겁니까?’라고”라고 나오며, 이에 홍잉은 “이런 유의 문제들은 전부 ‘유형화’(stereotyping)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현대 중국작가들이 소설을 쓰면 대개 세상살이의 비참함을 강조한다고 서양 평론가들은 주장하며, 중국작가들은 이에 대해 서양 평론가들이 중국문학을 유형화하는 경향이 있어 그렇게 읽는다는 의미 같은데, 내가 읽은 몇 편 안되는 중국 근현대 소설을 보면, 노신, 랴오서, 류이창, 다이 허우잉, 모옌, 위화 등, 뭐 서양 평론가들의 의견을 굳이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렇긴 하다. 대강 좀 궁상.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디 중국 현대사에서 뿐이랴. 세상 모든 구석에서 일반 민중들의 삶이 언제 한 번 꽃 피운 적 있었나? 하다못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루어졌던 소비에트 시절에서도 일찍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은 다만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새로이 등장한 지배자가 독재를 행할 뿐’이었음을 봐왔지 아니한가. 다만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가 일본 침략과 내전과 혁명과 문혁, 개방과 현대화를 거치면서 문학의 강력한 주제 또한 자연스럽게 거대한 다수, 즉 민중의 삶의 곤고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빨리 다시 생겨났지만, 계급이 완전히 소멸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과 중국 소설가들에게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 그들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걸 가지고 워싱턴 포스트의 평론가가 중국 책의 비참함을 “꾸짖듯이” 물었다면 서양 평론가의 모습에서 우린 진정한 밴댕이 소갈딱지를 구경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쪽까지, 총 615쪽 전부 아주 징글징글한 궁상이 뚝뚝 떨어진다. 건전하고 총명한(그래봤자 중국의 벽촌 상저우 칭펑읍 기준이긴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가오싱이 동네 형 우푸와 시안 역에서 내려 찾아간 곳은, 예전에 칭펑읍에서 사고를 치고 동네사람들이 멍석말이를 하자고 뜻을 모아 한 문제아를 찾아 쫓고 있을 당시, 가오싱이 돈 조금하고 찐빵 몇 개를 건네줘 시안으로 도망해, 역시 칭펑읍 기준으로 대단한 성공을 한 한다바오. 그에게 당시 중국 내 최고급이었던 고양이 담배를 들이밀며 먹고 살 일을 도모해달라고 해서 얻은 일자리가, 우리말로 하자면 이미 고어 또는 사어가 돼버렸을지 수도 있어서, 청년들이 혹시 이 단어를 알지 모르겠는데, 혹시 ‘넝마주이’라고 아셔? 이런 거였다. 시안이 워낙 큰 도시라 1970년대 대한민국의 넝마주이처럼 큰 넝마를 지고 다니면서가 아니라 수레를 끌고 다니며 그 넝마주이 일을 했으니, 요새 말로 하자면 고물장수. 도시의 모든 폐기물 가운데 재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줍거나 헐값에 사서 이문을 붙여 고물상에다 되파는 직업을 말한다. 시안에서도 40년 전 한국과 같이 그런 일은 완력과 자금력을 갖춘 일종의 집단에 의하여 몇 단계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극히 소수의 상위 몇 명을 위해 다수의 고물장수들이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가 뭐 아는 거 있나, 책 읽어보니 은근하게 그리 주장하고 있는 거 같아서 그런가보다, 사는 것이지.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라, 첫 페이지부터 사달을 내놓고 책을 시작한다는데 있다. 같이 칭펑읍에서 시안으로 와 갖은 고생을 하며 고향에 남은 처자식에게 돈을 부쳐주는 착하고 순박하고 (정의감은 없지만) 힘도 센 우푸가 죽는다는 거. 평소 약속을 하길, 우푸가 죽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가오싱이 죽은 우푸를 칭펑읍에 데리고 가 고향땅에 묻힐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정말로 우푸가 죽었고, 정말로 가오싱이 죽은 우푸를 거적대기에 둘둘 싸 그걸 등에 업고 끙끙거리며 시안 역에까지는 도달했지만, 길가다 죽은 시체의 영혼이 헤매지 말라는 중국 풍습으로 흰 수탉을 시체에 매달아놔야 해서, 수탉을 흥정하는 가운데 신경과민(생각해보시라, 아무리 친한 동네 형이지만 진짜로 죽은 시체를 등에 업어 시체와 내 살이 직접 닿아야 하는 상황에 신경과민이 생기지 않을 수도 없잖여?)으로 과하게 열을 올리는 바람에 근처에 어슬렁거리던 경찰관한테 그만 시체를 들켜버리고 만다는 거. 그리하여 시체는 화장을 한 분골 형태가 아니면 시안에서 나갈 수 없다는 규정에 덜컥, 걸린다는 거.
 이렇게 미리 결말을 얘기해놓고 소설은 시작한다. 당연히 시안에 도착한 이들이 어떤 고생을 했고, 어떤 코미디를 벌였으며, 어떤 식으로 연애를 해서 늦게나마 총각딱지를 뗐고, 어떤 꿈과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떻게 좌절을 했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이 된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중국식 리얼리즘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끝. 시대의 하부구조, 서양 문학에선 상대적으로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하층계급의 삶과 그 맵고 신 맛을 유머라는 강력한 향신료를 가미하여 재미나게 쓴 책이다.
 지금은 절판이라 중고 책 아니면 구할 수 없는데, 눈에 띄지 않는 거 찾느라 굳이 애쓸 필요는 없는 이유는, 이거 아니더라도 또 비슷한데 훨씬 기발하고 허리가 끊어질 듯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위화의 작품과 유사하니, 만일 위화를 읽었다면 그냥 넘어가도 무방할 거 같다. 난 책 제목에서 큰 기대를 가졌는데, 아마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출, 주연한 이태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염두에 두었던 거 같다. 이 책과 그 유명한 영화가 어떻게 연결이 되냐고? 아, 몰라, 몰라. 하여간 중고책 가게에서 이 책을 고를 때 난 분명히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머릿속에서 삼삼했었고, 그건 말씀이야, 전적으로 내 맘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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