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빨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0
제이디 스미스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제이디 스미스 본인이 자메이카 이민 여성과 영국 남성 사이의 혼혈이다. 1975년생. 작중 여자 주인공 가운데 아이리 존스, 일찍이 1907년 자메이카 대지진이 일어난 날 폐허의 기적처럼 태어난 외할머니 호텐스 보든 여사의 1975년 생 외손녀와 여러 가지로 일치한다. 책 뒤에 역자가 쓴 ‘작품 해설’을 보면 자메이카에서 이주해 온 영국인 제이디 스미스가 캠브리지 다닐 때 저지른 놀라운 사기행각, 물론 좋은 의미에서 사기행각의 결과로, 이 작품의 탄생비화를 써놓았는데 그것(사기행각)만 가지고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니 관심 있으시면 직접 책 사서 읽어보시라. 나도 <하얀 이빨>, 제목만 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싼 값의 중고책 아니었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텐데, 정작 읽어보니 햐, 대.박.이.다. 읽고나서 검색해보니까, 저런, <하얀 이빨>은 절판. 품절도 아니고 절판. 중고책이라도 참 잘 샀다.

 

 말 나온 김에 자이디 스미스, 얼굴 한 번 보자.

 

 

 구글 검색했다. 왜 두 장의 사진을 올렸느냐 하면, 왼쪽이 원래 헤어스타일과 비슷하다. 자메이카 인들의 표준 머리카락. 그걸 영국인, 백인들하고 같이 살면서 튀어 보이지 않기 위해, 흑인들이 머리카락 미용에 들이는 돈이 백인보다 2.5배가 많다고 책에 써있다. 소위 스트레이트 퍼머. (한국과 비교해) 미용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영국에서 스트레이트 퍼머를 하다 부작용이 벌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책에 아주 재미있고 상세하게 나온다. 그 생각이 나서 두 장의 사진을 올리니, 이런 충정에 눈물이 앞을 가리시지?

 

 눈 밝은 사람이 이 독후감을 봤다면 척, 한 눈에 알 수 있었을 것. 할머니가 1907년 생이고, 손녀딸이 1975년? 20세기 초, 아이 일찍 낳기에 관한 한 눈부신 세계신기록을 갖고 있을 거 같은 자메이카, 서인도제도 여성의 손녀가? 하고 의심할 수 있을 것. 놀라지 마시라. 호텐스 여사가 다커스 보든 씨와 결혼하고 한참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드디어 외동딸, 주인공 아이리 보든의 생모가 될 클라라 보든을 생산했을 때의 나이가 마흔 여덟. 불행하게 할아버지 다커스 보든 씨는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에 벌써 안락의자에 앉아 침을 질질 흘리며 하루 종일 TV만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이며, 이후에 독자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진지하고 오래된 기다림, 즉 죽음의 선을 넘어버리고 만다. 당연히 독자는 누가 우리의 여주인공 아이리 존스의 외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했는지 영원히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이거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건장한 키에 장대한 골격을 자랑하는 흑인 혼혈 영국 여성 아이리 존스는 철저하게 모계로 관련을 맺게 된다는 말씀. 아이리의 아버지 아치볼드 존스는 1945년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2차 세계대전에 불가리아 전선에서 공병 전차병으로 출전하는데, 참으로 웃기게도 뱅골 출신이며 아치볼드보다 두 살 더 많은 방글라데시 젊은이이자, 아군의 총알이 오른쪽 팔목 힘줄을 관통하는 바람에 오른 팔은 그냥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동료 흑인이랄까 하여간 짙은 갈색 피부의 사병 사마드 익발과 평생을 함께하는 우정을 품고 산다. 아무리 1940년대라도 오른 팔은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하는 벵골인을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영국 군대가 공병 전차부대에 배속을 시켜줬을까? 이건 지은이 제이디 스미스가 여성이라 군대에 관해서는 완전 무식해서 이렇게 써놓은 것이 아니고, 이 소설이 기본적으로 길고 긴 우화, 알레고리로 설정한 중요한 단서라고 봐야 한다.
 정말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메이카 계 영국인 제이디 스미스는 몇 군데 더 이 알레고리를 숨겨놨으니, 아이리 존스의 아버지 아치볼드 선생 역시 2차 대전 종전 후 소련군대가 진주한 불가리아 지역에 칩거해 있던 프랑스 출신의 젊은 의학박사 페레 선생, 심각한 당뇨에 의한 망막질환을 겪고 있어서 인슐린을 제때 맞지 않아 눈물 대신 눈물샘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이 중증 환자, 일찍이 유대인 대량 학살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인 전범자를 처형해야 하는 경우를 당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과정에 허벅지에 총상을 입어 관통을 당하지만 일부 파편은 몸속에 지니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인물. 자신의 일에서조차 특정 사건에 대하여 결정 혹은 결심을 하지 못해, 결국 동전을 던져 나온 결과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위에 이런 사람, 없지? 그렇다, 거의 없다. 아주 없지는 않고. 내가 빌어먹고 사는 회사의 저번, 저번, 저번, 그러니까 지금부터 세 번 전 사장이 그랬다. 사소한 것도 결정 못하고 비싼, 엄청난 연봉이나 축내는 인간. 또 얘기가 경상남도 삼천포 시로 흐른다. 삼천포와의 자매결연을 빨리 깨야 하는데, 이거 병이다, 병. 하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치볼드 씨는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순수 영국인.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저물지 않는 섬나라 인간종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 이 아치볼드가 한때는 진짜 예뻤지만 유전자 속에 정신분열의 씨가 있는 줄 모르고 결혼한 이태리 여성한테 이혼을 당하고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여 기막힌 동전던지기를 하는데, 앞이 나오면 계속 삶을 이어나가고 뒷면이 나오면 깨끗하게 자살하기로 결심을 했는데, 그만 뒷면이 나왔다. 그리하여 자신의 차 배기구에 전기청소기의 호스를 연결해 1975년 1월 1일 새벽,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데, 어느 '파키', 즉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가 턱, 보니까 자기가 운영하는 할랄 정육점 앞에 주차를 해놓고 그 짓을 하고 있어서, 어이, 차 빼, 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운명은 죽음 다음엔 생명의 탄생을 약속하는 것. 별로 기대할 것도, 남길 것도 없는 세상, 차를 몰고 어슬렁거리다 한 무리의 질퍽한 파티장소에 우연히 합류하고, 거기서 만난, 아름답게 보이는 클라라 보든 양과 혼인에 성공하는데, 그때 아치볼드의 나이 47세. 클라라와 스물일곱 살 차이다. 일찍이 오토바이도 아니고 스쿠터 뒷자리에 타고 달리다 사고를 만나 위쪽 앞니가 몽땅 빠진 클라라 보든 아가씨.
 또 다른 주인공 사마드 익발. 증조할아버지가 일찍이 인도에서 벌어진 세포이 반란 사건 당시 제일 앞에 나와 첫 방아쇠를 당겨 반란에 불을 붙인 영웅적 인물. 영웅의 후손이 다 좋은 줄 아셔? 천만의 말씀. 사마드 씨는, 앞서 얘기했듯, 오른 팔을 전혀 쓰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자신이 증조부 만갈 판디에게 필적할 기념적인 행위를 빚지고 있는 듯한 일종의 구속을 평생, 아니면 인생의 상당기간 동안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우리 집구석엔 영웅이 있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으며, 이 책 읽어보니 그런 조상 없는 게 다행이다. 그러나 사마드 익발 씨가 방글라데시에서 영국으로 이민 와서도 이민자로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의식, 문화, 종교, 기타 등등은 원래 영국인이었던 아치볼드 씨보다 훨씬, 아주 훨씬 복잡한고로, 내가 여기서 구차하게 설명을 하느니, 이 독후감을 읽고 계신 분들이 좋은 책 <하얀 이빨>을 직접 읽으면서 알아내시기를 권한다. 사마드의 아름다운 두 쌍둥이 아들, 그러니까 이민 2세대의 행각까지.
 간단히 말해서 소수인으로 영국에서 살아가는 다채롭고 복잡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린 소설이다. 대서양의 자메이카와 인도양의 방글라데시 이민자들로 대표하는 이들. 1세대는 자신들 모국의 전통과 종교, 문화에 집착하는 반면, 2세대는 영국의 일반 젊은이와 같은 문화를 누리고 즐기는 데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충돌. 그리고 영국인, 원래부터 영국인이었던 사람들과, 원래 영국인이 아닌 사람들, 유대인 가정을 비롯한 진보적 젊은 영국세대를 포함해서, 복잡한 충돌, 이리 부딪고 저리 부딪는 난장판을 가벼운 필치로 척척 그려냈다. 젊은 작가가 몇 가정의 총체적인 역사와 그것이 궁극적으로 영국 안에서 하나로 합해지는, 비록 영국화가 완전하게 이루어졌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하여간 세대간, 인종, 문화들이 화해하거나 어찌했건 같이 살게 되는 장면을 킥킥거리면서 쓴 소설. 무지 재미있다.
 난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을 거다. 내년에. <온 뷰티>, 오늘 주문할 예정! 얼마나 재미있길래? 읽어보면 아신다니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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