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스러운 탐정들 1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5년 11월, 조실부모하고 삼촌 댁에서 커온 열일곱 살 대학 초년생 가르시아 마데로. 자기는 시를 쓰고 싶은데 어려서부터 조카 뒷바라지 해온 삼촌의 희망을 거스를 수 없어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 아, 책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먼저 흰소리 한 방.
 나 중학생 시절이었을 때, 숱한 놈팡이들의 마음의 고향, 미아리 텍사스 바로 옆, 유장하게 흐르는 세느 강가에 위치한, 북쪽으로 창을 내 가을부터 봄까지 시베리아 바람이 그치지 않았던 언덕박이 아르센 루팡 중학교의 국어교사 중에는 시인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유별나게 많았다. 소위 말하는 등단 시인. 당연히 시집을 몇 권씩 낸 분도 있었지만 그러면 뭐해, 그분들 이름도 기억 못하는 걸. 그중 참으로 인자하시어 학생들이 졸거나 말거나, 수업시간에 당대 청소년들에겐 참으로 교육적이었던 잡지 플레이보이를 돌려보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안 쓰고 그냥 수업만 진행하던 시인께서 한 분 계셨는데, 소위 말하는 전위적인 시를 쓰셨다. 요새 우리가 흔히 읽을 수 있는' 과도한 감상과 추상적 단어, 암호화' 등은 당시 전위 시에 비하면 이도 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에다 그림도 그리고 줄도 죽죽 긋고, 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기도 하고, 이제 대가리 커서 생각해보면 그게 1920년대 앙드레 브르통으로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한 한 경향에 크게 영향을 받은 듯하다(난 초현실주의 문학작품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1인). 이상李箱이 노래하길, 십삼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고, 이랬다. 이 노래를 읽고 추상이나 반논리反論理라고 하지 초현실주의에 입각한 전위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오감도> 정도는 전위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말씀. 내가 아는 것이 짧아 전위시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시를 기억하는 것이 없어 샘플로 그런 시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근데 1975년 멕시코엔 이런 전위적인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들이 모여 한 그룹을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내장內臟사실주의.
 982쪽에 이르는 장편소설 가운데 거의 맨 앞부분에 등장하는 내장사실주의자들. 많아봐야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이들이 전위적인 시를 쓰기 위해 모여 동인잡지를 딱 한 번 만들고나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젊디젊은 시인들의 그룹, 이라 읽기에는 조금 무리. 그것보다는 ‘시인 지망생들’이 젊음의 치열한 통과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고, (당연히 시인도 되고 계속 글을 쓰지만) 저 멀리 멕시코에서 1920년대부터 시작한 전위적 작가들을 포함한 (거의)모든 전위시인들은, 이 책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70% 이상을 바쳐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20세기 말까지도 결국 그(전위의) 뜻을 실어 펴지 못한다. 신시新詩 또는 新文學으로의 전위문학, 전위시를 허용하지 않고 결국은 시인들의 펜을 꺾게 만드는 당대의 시절을 볼라뇨는 ‘야만’이라고 칭했던 것. ‘탐정’은 뭐냐고? 그건 당신들이 찾아내시라.
 난 이 책을 읽으면서야 ‘내장사실주의’라는 것이 한 번 거론이 됐다는 걸 알 정도의 형광등이었다. 앞부분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를 읽고, 책을 끝내자마자 재빨리 인터넷을 열고 우리나라에 한 때 열광적으로 거론이 되던 ‘후장사실주의’를 검색해봤다. 대한민국의 ‘후장사실주의’는 멕시코의 내장사실주의와는 달리 특정한 장르의 문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의 작법이 다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을 일컬어 그냥 <청록파>라고 부르듯, 이제부턴 전적으로 내 생각일 따름인데, ‘후장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지돈을 비롯한 몇몇 문인들이 뭉쳐서 우리 ‘후장사실주의’라고 부르자, 해서 생긴 모임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후장’은 항문을 일컫는 말이라서, 볼라뇨가 2003년에 간부전으로 죽지만 않았다면 ‘내장사실주의’를 능가하는 ‘후장사실주의’를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한계를 통탄했으리라. 혹시 알아, 정말로 땅을 치고 엉엉 울었을지?
 여기까지 쓴 것을 한 번 쓱 읽어보니까, 그냥 그런 소설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정말로 읽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책을 이끌고 가는 중요한 인물은 1975년에 법학과 프레시맨이었던 가르시아 마데로와 칠레 출신 불법체류자 알베르토 벨라노, 역시 칠레 태생의 싸움 잘하는 내장사실주의자들의 대장격인 울리세스 리마, 그리고 (이것 또한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 1920년대 반골시라는 이름의 전위시인으로 이름이 높았던 노인 아마데오 살바티에라. 이들의 베아트리체, 젊은 1950년대 생 청춘들이 죽어라고 찾아다니는 원조 여류 전위시인 세사레아 티나헤로까지,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벌이는 유랑과 사랑, 방황, 그리고 몰락의 과정을 다양한 인물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움베르토 에코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진짜 시인은 스물 살이 되면 펜을 던져버리고 아프리카로 무기를 팔러 떠난다고 했다. 근데 여기서 진짜로 그런 인간이 나온다. 스무 살 쯤에 조국 칠레도 싫고, 멕시코도 싫어 유럽으로의 밀항에 성공을 하고, 거기서도 실컷 방황을 한 다음, 누구는 또다시 텔아비브로, 누구는 콩고민주공화국을 거쳐 당시 내란의 최고조에 달했던 라이베리아로 떠난 인물. 누가 생각난다고? 맞습니다. 랭보. “진짜 시인은 스무 살이 되면 아프리카로 장사하러 떠난다”는 말이 참 심금을 울려 평생 읽지 않던 외국 번역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까지 읽었잖습니까? 이런 인간이 정말로 등장한다.
 오늘 좀 정신 사납게 독후감을 썼는데, 한 시절을 풍미했던 전위시인들의 모임, 내장사실주의자들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 그걸 내장사실주의자를 바라보거나 같이 살거나, 아니면 하룻밤 같이 자 본 사람들의 시선으로, 아주 간혹 그 사람들의 입으로 직접 시인하는 과정을 그린 비극.
 근데 이거 비극 맞아? 비극인데 가끔 이렇게 웃겨도 괜찮은 거야?

 

 여태 난 이 로베르토 볼라뇨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살았다. 근데 이런 작품이 있을 줄이야. 이래서 함부로 가타부타 떠들고 다니는 거 아니다. 아, <2666>을 읽어봐? 말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