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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92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미사고’의 뜻이 무엇인가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 책의 87쪽에 “자아의 신화적인 이상理想”이란 말이 나온다. 작중 주인공 스티븐의 아버지는 밀교 또는 심령에 심취하여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 비밀스런 숲 근처 산장(요즘 표현으로 주거 형태 독립빌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에서 이미 영국 땅에선 멸종해버린 멧돼지의 신화적 생존형태에 관심을 두다가 자신이 정말 신화에서나 나올듯한 직립보행 하는 거대한 멧돼지가 돼버리고 만다. 이것은 자아를 신화적인 이상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낸 경우. 물론 인간이었을 때의 감정과 지성 등등을 가지고는 있으나 숲에서 살기에, 또는 숲을 지배하기에 적절한 형태로 변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신화적 이상의 한 형태, 그게 사람이었건, 건축물이건, 아니면 작은 부족이건 간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늘 마음속에 존재했던 적이 있을 거란 믿은, 바람 같은 것이 어떤 형태로 실화實化되어 실제로 특정 인물, 건축물, 작은 부족이 신비한 태초의 능력을 가진 숲 속에 생겨난 경우, 이것도 미사고라 칭한다. 또, 영화를 통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자아의 신화적 변형’으로 “아바타” 역시 미사고의 하나. 세 가지 미사고의 예를 들었지만 내가 파악하지 못한 책 속의 다른 미사고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혹시 이 책을 읽을 요량이면 다른 미사고를 발견해내는 것도 재미있겠다.
책의 숨은 주인공이자 가문의 아버지인 조지 헉슬리가 드디어 산장 바로 옆에서 시작하는 크지 않은 숲 안에 있는 미사고 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친구인 에드워드 윈-존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재미있는 환상소설 <미사고의 숲>은 시작한다. 편지 속에 신화시대에나 있었던 듯한 부족 ‘샤미가’의 일원인 ‘생의 이야기꾼’을 통해 알게 된 쌍둥이 자매에 관한 이야기, 전설, 신화 등을 소개하며 ‘후르파스나’ 즉 ‘까마귀들이 키운 소녀’란 뜻의 아기, 앞으로 400쪽에 걸쳐 이게 어떤 의미인지 밝히게 될 기본적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 즉 ‘후르파스나’가 우리(그들)가 알고 있는 바, ‘귀네스’ 전설의 원형이라 굳게 믿는 조지 헉슬리. 여기까지 읽으면서 아직은 그리하여 ‘귀네스’란 이름의 미사고가 등장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 귀네스가 아서 왕의 비이자 란셀롯의 연인을 뜻할 지도 모르겠다고만 여겼을 뿐. 근데 진짜 귀네스가 나오는 거 아냐 글쎄!
연구에 몰두하느라 자기한테 아들이 둘 있는지 어떤지,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들들이 참전을 하는지 마는지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버지한테 마음이 상한 둘째 아들 스티븐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그냥 프랑스에 눌러 있었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영국의 산장으로 온다. 아버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형 크리스찬과는 계속적인 편지 왕래가 있어서 그가 귀네스란 아가씨와 결혼했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막상 산장에 도착하니 그녀는 없다. 그냥 가버렸단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더 광적으로 숲의 비밀을 찾는데 골몰하는 형. 그는 아버지의 (일부가 찢어진)일기 같은 자료를 미리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수월하게 숲의 장막을 여는 일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동생 혼자 집에 두고 숲으로 사라져버리는데, 아이고 이걸 어째, 귀네스가 동생 스티브 앞에 등장하고 만다. 이쯤 되면 정말로 아서 왕의 전설과 비슷하다. 왕의 비이지만 왕의 신하하고 바람피우는 여자. 저 훗날 리미니의 란체오토 말라테스타 공의 비妃 프란체스카가 시동생 파올로하고 불륜을 맺을 때(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편> 참조) 매개가 되는 스토리로 등장하게 된, 귀네비어. 형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자신의 아내라고 한다. 만일 그 주장대로라면, 시동생하고 사랑하게 되는 귀네스. 이탈리아의 리미니에선 같은 경우에 형 란체오토가 동생 파올로를 뎅거덩, 잘라 죽여 연놈을 곧바로 지옥으로 보냈지만, 아서 왕은 그러지 않고 자신이 애벌론 섬으로 사라지는(죽음의 길을 가는) 결말을 택했다. 이 사건을 서기전 2000년쯤으로 여기는 작가 로버트 홀드스톡, 이이는 귀네스와 스티븐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미사고들이 사는 숲은 자신의 자기장 비슷한 것으로 나름대로 방어막을 쳐서 외부인의 침입을 막고 있지만, 방어막이란 건 언제나 뚫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곳을 지배하려는 이방인이 들어오고야 마는데, 그게 누구일까. 거의 평생을 바쳐 숲의 비밀, 신화나 전설(myth), 거거다가 이미지(imago)를 합친 미사고mythago, 이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파괴할 수 있는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없애고자 한다. 그러나 방어막을 친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위험인물은 언제나 있는 것이니 그게 누구?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에 보면 영국인들은 숲과 숲의 정령 속에 많은 전설과 신화를 담아놓은 듯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윈저가의 즐거운 아낙네들> 속 자정의 숲속 장면과 <템페스트>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또 난데없이 일본 작가가 산속 깊숙한 곳에서 벌이는 으스스한 이야기들, 즉 이즈미 쿄카의 <고야산 스님>과 <초롱불 노래>와 엮여, 혹시 이게 섬나라 사람들의 공통점 아냐? 섬나라니까 당연히 안개도 많고 대체로 습하고, 거기다 산악지역이면 대체로 대륙의 산악지대에 비해 으스스한 느낌이 훨씬 강할 거 아닌가. 그래서 비슷하게 으슥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재밌다. 도대체 사람의 상상력으로 안 되는 게 뭔지 모르겠다.
* 예전에 어떤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지 혹시 모르겠다. 열린책들의 표지, 루소가 그린 밀림 장면이 영락없이 남미나 아프리카인 것 같아 누가 추천하지도 않았는데 직접 고르지는 않은 거 같다. 사놓고 오래 뒀다 읽으면 이런 경우도 생긴다.
* 중세 독일지역의 기사계급,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서울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책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밤새 경계근무를 하는 군터와 하겐. 이름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책이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는데 찾아 확인해볼 생각을 하니까 감당이 되지 않는다. 하여간 두 기사가 성루에 서서 장검을 발아래 콱 찍어놓고 밤을 꼴딱 새워 깜깜한 밤의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 먼저 그려진다. 왜 이 말을 하느냐 하면, 책의 3/4부분에 우리의 주인공 스티븐이 귀네스를 찾아 숲에 들어가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 무리의 미사고가 나타난다. 5~7세기에 브리튼으로 넘어온 게르만들이다. 이들 가운데 남자 대장 하나가 스티븐과 동행인을 잠자게 하고 자기는 땅바닥에 장검을 콱 박아놓은 다음 벌떡 서서 밤새 뻗치기 보초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귀네스도 그렇고, 게르만인의 뻗치기도 그렇고, 세상에 모방 아닌 창조가 어디 있어, 한 마디 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