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긴 편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170
마리아마 바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서간체 소설이다. 모두 스물일곱 편의 편지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 보낸 사람 라마툴라이. 세네갈의 이슬람교도 여성. 자녀 열한 명의 어머니. 이 여인이 과부가 된 시점에 아이사투란 수신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후, 어려서부터 친구인 아이사투가 내일 세네갈에 도착하는 날까지 스물일곱 편의 편지를 쓰는 형식. 사실은 편지글이라도 라마툴라이가 계속 아이사투에게 보낸 진짜 편지들이 아니라, 세상 살면서 참 어렵고 힘들다고 여길 때마다 한 통씩 편지글을, 노트에 써놓았던 것이다.
 라마툴라이의 착한 맏딸 ‘다바’에겐 예쁘게 생기고 깜찍한 외모, 그러나 가난한 집의 딸 ‘비느투’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한테 한 늙은이가 차에 태워 좋은 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엄청나게 비싼 기성복을 사 입혀 비까번쩍한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있노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절을 계산하면1960년대 말 가량? 이때부터 다바는 엄마 라마툴라이에게 비누트한테 생긴 일들, 문제의 ‘주책스런 늙은이’가 거의 전적으로 돈의 힘으로 비누트와 비누트의 부모, 조부모에게 환심을 사려하는 걸 생방송 진행을 해주곤 했다. 좋은 집을 사주고, 회교도들의 평생소원인 성지순례도 당연히 보내주는 건 물론이며, 매달 넉넉한 생활비까지 보태준다고 약속했다나. 원조교제의 원조 격이니까 그랬겠지. 평소 여권신장에 관심이 높았던 라마툴라이도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곧잘 들어주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원의 승려와, 시아주버니와, 편지의 수신인 아이사투의 전남편, 이렇게 세 명이 찾아와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더니, 오늘 아침에 당신 남편이 새장가를 갔다고,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이 비누트라고 하더란다. 그때부터 비누트의 강짜가 시작되고, 남편은 한 번도 마라툴라이와 열한 명의 아이들을 보러오지도 않은 건 물론이고, 하다못해 생활비 한 푼 보태지 않기 시작한 거였다. 그 새 둘째 아내 비누트는 색깔 다른 두 대의 승용차에다 친정 엄마 아빠 모시고 다카 시내를 활개치고 돌아다니며 온갖 사치를 다 부려댔으니 속으로 얼마나 열불이 뻗쳤을까.
 왜 마라툴라이가 아이사투에게 이렇게 길고 긴 편지글을 썼느냐 하면, 아이사투는 마라툴라이와 다르게, 그리고 이 소설의 작가 마리아마 베와 같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는 남편의 중혼을 참지 않고 이혼해버리면서 네 명의 아이들을 스스로 양육하는 편을 택했기 때문이다(작가 마리아마 베는 무려 아홉 명의 자녀를 데리고 세 번째 남편과 이혼해버렸다. 구글 검색). 아이사투는 귀금속세공업자의 딸로 하늘같은 신분인 왕족의 후예와의 결혼에 성공하여, 신분차이에 열 받은 시어머니가 애초부터 아들의 중혼을 염두에 두고 열린 사고방식과 세상을 대하는 옳은 방법 등을 가진 양순한 처녀를 두 번째 며느리로 점찍어 두었다가 결혼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식 중혼을 참지 않고 이혼을 감행, 곧바로 학업을 이어나가 지금은 재미 세네갈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엘리트이자 부유한 계급으로 지내고 있다.
 작가는 친한 두 친구의 환경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하여, 중혼을 인내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세네갈 내 이슬람 여성과, 이혼을 감행함으로서 보다 확실한 자아를 찾아낸 여성을 등장시켜 성적 자립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구도를 취했다. 아주 짧은 소설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스토리는 소개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 여기서 멈추지만, 세상일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어디에도 나름대로 길은 있다. 열한 명의 아이가 아직은 다 크지 않아, 마라툴라이의 어머니로서의 곤고함과 차별이 앞으로 어디까지 뻗칠지 전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마라툴라이의 입을 빌린 작가 마리아마 베는 이렇게 얘기한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가 상대에게 진정으로 다정할 수만 있다면! 상대 속에 융화되려고 애쓰기만 한다면! 상대의 성공과 실패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상대의 결점을 세는 대신 장점들을 높이 산다면!”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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