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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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을 너무 바짝 깎았다. 왼쪽 세 번째 손톱이라 자판 두드리기가 편치 않다. 세상이 그런 거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당장 자판 두드리기 힘들게 손톱 바짝 깎은 손가락이 더 아픈 것.
 10년 전 여름이던가, 내가 좋아하는 공선옥의 추천사를 보고 <침이 고인다>를 읽은 것이 첫 번째 김애란. 지금 보니까 외모도 공선옥하고 비슷한 것 같고 뭐 그렇다. 읽은 지 하도 오래라 그때의 감상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아주 인상 깊었던 작품이 없었다는 뜻? 그것도 좀 있지!) 약간 야하고 뭐 재미나고 그랬던 거 같은데, 두 번째 읽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전혀 그렇지 않다(요샌 단편집 제목과 같은 단편이 단편집 안에 수록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 책에선 단 한 작품도 읽으며 내게 미소조차 짓지 않게 만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겨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공통적으로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이 핫따, 먼 훗날인줄 알았더니 겨우 코앞이었던, 죽음.
 첫 작품 <입동>은 두 번의 유산 끝에 인공수정으로 얻은 아이가 유치원(또는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깔려 죽고, 두 번째 <노찬성과 에반>에선 찬성의 아빠가 갓길을 따라 걷다가 화물차에 치어 죽은데다가 스포일러(특히 단편소설에서 스포일러란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 소치라서)가 염려되어 정확하게 적진 않겠지만 막바지에 동거인 중에 한 명이라 추정되는 또 다른 죽음까지 겹쳐지고, 네 번째 작품이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침묵의 미래>는 수많은 소수 민족의 언어를 학살하고, 다섯 번째 작 <풍경의 쓸모> 역시 스포일러 관계상 상세하게 적을 수 없는 한 인물의 죽음이 달려있으며, 여섯 번째 작 <가리는 손>엔 건장한 중학생의 이단 옆차기에 맞아 죽고마는 폐지 줍는 노인이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열무김치를 담고 있는 시간에 날 버리고 먼저 가버린 남편님이 배경으로 깔린다. 딱 한 작품, 세 번째로 수록한 <건너편>이 유일하게 죽음과 거리를 둔 단편으로 이 책에 실린 일곱 단편 가운데서도 마음에 제일 들었다.
 10년 전에 읽은 <침이 고인다>도 글 가운데 야한 장면이 나오고 재치 있게 재미난 묘사가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지 결코 글의 내용이 밝은 경향은 아니었다고 기억하는데(역시 가물가물 오래전이라 믿지는 마시고), 이번 <바깥은 여름>은 좀 심했다.
 김애란의 글? 어이, 왜 이러셔. 대한민국에서 비까번쩍하기로 유명한 문학상이란 문학상은 거의 수집할 정도의 글발을 자랑하는 작가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이이가 글 속에 죽음을 등장시켜 살아남은 자가 우울하기도 하고, 좌절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하여간 깊은 상실에 빠져 있는 상태를 대단히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근데 좀 심한 거 아냐? 물론 출판사에서 죽음을 테마로 김애란에게 이와 유사한 소재를 다룬 단편만 골라 책을 엮어보자고 했을 수도 있지만, 한 권이 통째로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건너편>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는 건 비단 죽음을 소재로 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 한 편, 실패나 소외나 죽음이나 상실에 빠진 삶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유일한 것이서다. 물론 일곱 편을 따로 떼어 무게를 단다면 내 감상이 턱도 없이 잘못된 것이겠지만, 한 자리에 앉아 근 여섯 시간을 바쳐 한 방에 일곱 편의 단편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동의하는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믿는다.
 죽음. 누구나가 죽고 궁극적으로 죽음이 문학의 대상물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약간의 우울증 증세가 있는 난 누군가가 죽음을 노골적으로 콕 집어서 만지작거리면 읽어내기가 좀 난감하고 불편하다.

 여전히 내 왼손 가운데 손톱이 더 신경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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