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을유세계문학전집 89
유리 트리포노프 지음, 서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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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포노프의 작품은 이 <노인> 말고 예전에 경희대학 출판부에서 찍은 <교환>이란 얇은 책 말고는 없는데 그것도 아쉽게 절판이다. 트리포노프는 <노인>을 1978년에 발표를 하고 3년 후인 1981년에 세상을 떠나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된다고 하는데, 1925년생이니 만 53세에 완성한 소설이다. 겨우 만 53세에 두 남녀 노인(들)의 신체적 노쇠와 남자 노인의 상태를 이리 잘 묘사했단 뜻이다. 거참. 정작 본인은 56세밖에 살지 못해 노인이란 세월을 겪어보지도 않을 운명이었음을, 이땐 몰랐을 거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책의 주인공 파벨 예브그라포비치(‘창비’나 ‘열린책들’에서 찍었으면 모르긴 몰라도 “빠벨 옙끄라뽀비치”라고 썼기 십상이다), 인생의 황혼을 만나 나이 50이 훌쩍 넘어도 아직까지 철딱서니 없는 아들과 아들놈의 전처와 지금 처, 딸과 사위, 이렇게 좁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식솔들한테 새로운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당의 주택보급위원회에 신청도 좀 하고 힘도 쓰라고 날이면 날마다 독촉을 받으면서, 틈틈이 미하일 숄로호프가 일찍이 대작으로 완성한 <고요한 돈강> 시절의 위대한 카자흐 영웅 세르게이 키릴로비치 미굴린이 1919년에 독자적으로 백군 데니킨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간 사건을 심각하게 조사 연구하고 있던 노인이다. 파벨이 한 잡지에 미굴린에 대한 글 또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5년이나 지나서 발견한 옛 친구이자 파벨의 첫사랑이자 영웅 미굴린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아샤, 즉 안나 콘스탄티노브나 네스테렌코가 읽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1970년대의 파벨은, 그리고 많은 노년세대들은 그들의 자식세대와 거의 완전한 불통 상태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리하여 옆집에 사는 사별한 아내 바냐의 절친한 친구 폴리나는 말로는 영웅의 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립양로원에 불과한 기관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는 걸 보고, 그래도 자식들하고 같이 살거나 살아주는 것이 노인들의 의무 또는 즐거움, 그것도 아니면 관례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냥 보통 노인이다. 그렇게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파벨에게 첫사랑이자 자신이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재판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미굴린이란 한 영웅의 두 번째 아내이기도 한 아샤의 편지를 받고, 그것도 대단한 흥미와 관심을 표명하며 동시에 옛 시절의 소년다운 사랑을 듬뿍 담은 정다운 글을 받고는 다시, 당시 1919년 10월에 있었던 미굴린의 이상 상황에 대한 길고 긴 상념에 빠진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카자흐 지방의 반혁명과 동러시아에서 옛 귀족을 중심으로 한 백군 저항세력에 오랜 고통을 겪은 소비에트 내 작가들은,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한 작품의 소재였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카자흐 지방의 내란은 역시 앞에서 얘기한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이 압도적이고 총체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동러시아 백군의 반혁명투쟁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고요한 돈 강>의 일부인 한 명의 영웅의 행위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노인들의 기억에 완전 의존하는 왜곡된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즉, 아샤의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객관적 사실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기억 자체가 삭제된 상태로 파벨에게 전달을 할 수 있는 반면, 파벨은 그간 숱한 자료를 다 갖고 있어 아샤가 하는 말의 특정 부분만 골라 다시 사건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자, 벌써 얘기 다 한 거 같다. ① 파벨 또래 1970년대 모스크바 노인들은 젊은 세대들과 거의 불가능한 의사소통의 벽 안쪽에서 마치 게토처럼 폐쇄되어 있는 상태였고, ② 아샤로 인해 5년 만에 다시 파벨의 관심과 자료의 재정리에 착수한 그의 작업에, 노인들 특유의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실만 추려서 기억하는 능력이 더해진 새로운 아샤의 증언을 확보하였으나 전에는 많고 넘쳤던 시간이 이젠 지극히 한정된 길이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 따라서 ①과 ②의 해소가 소설의 결말이 되겠다고 지금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①번 문제가 어떤 수순에 의하여 해소되는지는 절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이고, ②번 문제는 과연 딱 그 하나의 것만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또 누군가의 한 부분의 기억이 머릿속에서는 완전 소거된 불완전한 기억일 수도 있을지, 만일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르쳐주지 않겠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일반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한 사건을 전개하는 형식의 소설이라고 말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읽기론 그랬다. 마치 대학에 입학해 학교 도서관에 가니까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소설 쓰는 사람은 뭘 먹고 살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워했다가, 제대하여 복학해 다시 도서관에 가니까 이젠 광주항쟁 없었으면 또 소설가들은 어떻게 재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신기해한 거처럼. 그래서 특별하게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하기는 그렇고, 카자흐 기병의 용맹한 전투를 필두로 하는 고요한 돈 강 유역에서 펼쳐지는 로망을 꼭 한 번쯤 경험해보시면 좋을 텐데 그러기 위해선 역시 <고요한 돈 강>을 읽어보시리라, 이거 한 편이면 너무 충분히 만족하시리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시간이 부족하고 정성이 모자라고 또는 그놈의 귀차니즘이 몰려온다면 비록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고골이 쓴 <타라스 불바>로 대신하시는 것도 뭐 무난하겠지.
 물론 이 책 <노인>도 수작이다. 이 점을 말하지 않고 독후감을 마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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