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4세 1
하인리히 만 지음, 김경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의 앞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부터 열라 웃긴다. “독일이 낳은 뛰어난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토마스 만의 형이다.” 나도 여태 하인리히는 토마스의 친형, 저작이 깨나 유명한 사람이지만 우리나라엔 번역물이 (거의)없는 독일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올해 5월까지. 그러다가 5월 초에 페터 바이스가 쓴 <저항의 미학>을 읽었고, 책 속에서 하인리히 만이 1920년대 반파시스트 운동을 하던 사회주의자란 걸 알았다. 아, 하인리히 만이 그랬어? 괜한 궁금증. 이런 거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미국인으로 살다가 다시 분리된 조국의 동쪽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려 준비하다가 결국 화장火葬한 유골의 형태로 (동)베를린에 묻혔다고 한다. 동생 토마스하고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성향 또는 취향이 맞지 않아 평생 싸웠다가 화해하고 또다시 싸운 다음에 또 화해하고, 그렇게 한 평생을 지냈단다. 동생하고 사이좋게 찍은 사진도 있다. 

 




 왼쪽이 더 늙어 보이지? 형 하인리히. 오른쪽이 당연히 토마스. 늙은 모습 보니까 미국인 거 같다. 평생 형제끼리 지지고 볶고, 싸웠다가 화해하고, 그래 그게 인생이지 뭐. 나나 이 잘난 사람들이나 거기가 거기다. 하여간 <앙리 4세>를 읽음으로 해서 하인리히, 토마스, 클라우스 만을 다 읽은, 아니, 경험한 셈이다.
 근데 하인리히의 경우엔, 인터넷 서점 검색해보면, 축약본인 거 같은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말고 딱 한 종류, <앙리 4세>밖에 없는데, 그나마 절판이다. 내가 읽은 건 중고 책이다.

 

*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을 펴낸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사는 참 여러 가지 좋은 책을 펴내는데 도무지 원작 전체를 번역한 것인지, 발췌 번역인지 분명하지 않다. ‘지만지 소설 선집’과 ‘천줄 읽기’라는 시리즈가 있고 ‘천줄 읽기’는 스스로 발췌라는 점을 밝혔지만 ‘지만지 소설 선집’을 선뜻 고르기가 어쩐지 영 캥겨서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지만지 출판사의 책들을, 특히 ‘소설 선집’을 읽어보신 분 계시면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어쨌든 <앙리 4세>, 전 3권을 읽었다. 권당 300쪽 가량이지만 판형도 크고 자간, 줄 간격이 좁은 20세기 말 유행했던 편집이라 꼬박 닷새 걸렸다. 물론 술이 떡이 돼 하루는 거의 읽지 못하긴 했지만. 읽어보니 첫 느낌이, 참으로 지적인 사람이 독일 내 파시스트에 의한 지랄발광을, 조선에선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6세기 말의 프랑스 가톨릭과 위그노교도들 간의 머리 터지는 싸움에 빗대 썼다는 건 잘 알겠다. 근데 번역한 김경연 씨가 문제인지, 작가 자체가 문제인지 책을 읽는데 일단 전혀 재미가 없다. 부르봉 왕가를 연 앙리 4세의 유년 시대부터 만 36세가 되기 바로 전에 벌어진 파리 포위 공격까지를 그린 책이라 당연히 성장, 연애, 결혼, 세계사의 한 페이지로 기념할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독살과 암살, 음모 등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무지하게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책 읽는 속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하인리히의 원문이, 뛰어난 독일 저자답게 철학 또는 사유적이고, 은유와 반어를 비롯한 수사법을 많이 사용해, 가뜩이나 알콜의 영향으로 인해 잘 기능하지 않는 뇌를 혹사시키길 바라서, 일반 소설을 재미없게 쓰는 건 그래도 이해하더라도, 참 기가 막히게도, 역사 소설까지도 재미없게 쓰는 놀라운 신공을 갖추고 있는 거 같다. 여기다가 역자 역시 한국말로 문장을 다시 만드는 묘미를, 적어도, 찬란하게는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고. 원문을 읽는 독일 사람과 달리 유라시아 저 건너편 극동의 한 인간이 읽기엔, 저자와 역자 사이에 요구되는 싱코페이션이 기가 막힌 변주를 일으켜 책이 지루해지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내는 거 아닌지. 써놓고 보니, 음악용어 싱코페이션, 이거 참, 아무데나 갖다 붙여도 이리저리 쫄깃한 맛이 나는 단어다.
 이 독후감은 지금 막 책을 다 읽고 곧바로 쓰고 있는 것인데도 유난히 힘이 든다. 그건 내가 20세기 전반기 독일에서 벌어진 정치적 난장판에 대하여 자세하게 모르는 것이 제일 큰 이유처럼 보인다. 1권의 역자 서문에서 보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누구는 히틀러, 누구는 뮐러를 비유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데, 정작 책을 읽어보는 아시아인은 왜 이 인간을 히틀러와 또는 뮐러와 비교할 수 있는지 별로 감흥이 오지 않는다. 그저 내 눈엔 프랑스에서 벌어진 위그노 전쟁에서 앙리 4세의 철학적 지평을 넓혀준 보르도의 시장 몽테뉴와의 만남과 그로부터의 배움. 유방에게 장량과 한신이 있었고 이성계 옆엔 정도전이 있었듯 앙리 4세를 옹위하던 플레시스-모르네의 지혜로운 책략 같은 것만 눈에 팍팍 들어왔으니 분명 난 속물인 거 맞다.
 지금 품절도 아니고 절판인 책에 대해 길게 왈가왈부할 건 없고, 하여간 <앙리 4세>를 마침으로 해서 나도 이제 하인리히 만을 읽어본 인류 가운데 한 명이 됐다는 점, 어디 가서 어깨에 힘주고 하인리히 만이 말씀이야, 하고 잘난 척 할 것이 틀림없다는 점, 그러나 별로 재미없게 읽은 책을 구태여 헌책방에 가서 사 읽어보라 충동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선에서 독후감을 끝내려고 하는데, 아, 이 책 읽느라고 정말 고생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