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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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란의 소설 목록을 보면 <식빵 굽는 시간>, <국자 이야기>, <혀> 등, 내가 읽어보진 않았지만 먹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아 <복어> 역시 치명적인 맛과 독을 지닌 음식 재료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고 기대했다. 또 한 편에는, 책 표지 펠릭스 발로통이 그린 <빨간 의자 위의 여인>에서처럼 한 여인의 권태, 절망, 고독 또는 소외 같은 주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맛있게 먹는 얘기가 권태나 절망 같은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근데, 이 책은 주로 복어의 독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상황에 대하여 서술했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자살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하는 용도.
 모든 예술 장르가 생겼을 때부터 먹는 것과 연애, 그리고 죽음은 예술가들의 영원한 숙고이자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조경란도 이 책 <복어>에서 죽음, 그 가운데서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의 형태인 자살을 아주 심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모두 4부로 구성. 한 부는 17개의 장으로 되어 있으니, 만일 제일 마지막 ‘작가의 말’을 4부의 한 장章으로 친다면 모두 17 곱하기 4, 68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홀수는 여자 주인공 ‘그녀’를 관찰하고 있고, 짝수는 남자 주인공 ‘그’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니까 독자는 그녀와 그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머리를 써야 한다는 뜻.
 소설의 무대는 세계적인 두 도시, 서울과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녀는 조각가, 그는 건축가의 직업을 갖고 있으며, 한 소설의 주인공들답게 실력이 아주 출중해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실력자들이다. 여기까지는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좀 도움이 되는 말. 물론 이야기 안 해줘도 전혀 난감할 일 없지만 그래도 먼저 읽었으니 좀 티를 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불문과 후배가 있었다. 부모가 일찌감치 세상 하직하시어 이 친구와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 출신은 대학 못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워낙 착실하고 똑똑했던 후배는 어찌어찌해 대학 진학을 했고, 입학금과 등록금은 면제를 받았으며, 생활비 일부도 지원을 받았고 늘 박재삼과 천상병을 좋아했다. 학교 잘 다니다가 점점 동네 코흘리개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내더니 덜컥, 퇴행이라던가 하는 정신병 진단을 받아 입원을 하고 얼마 뒤 퇴원을 하더니, 며칠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한강다리 교각 옆에서 떠오른 걸 누군가 발견했다. 선후배, 동료들 가운데 후배의 사인signature, 나 좀 구해줘, 도와달라고! 하는 걸 눈치 채지 못했으며, 동생은 군복무 중이었다. 여태 살면서 주위에 자살한 친구들 몇 명 있지만 이 후배의 죽음이 아직도 안타깝다. 내게도 분명히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냈던 걸,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그때 우리는 동생을 통해서 알았다. 일찌감치 돌아간 부모들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을. 자살,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건 유전적 요인이 클 수도 있다고 당시 의학 본과 다니던 친구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친구는 신경정신과가 아니라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
 <복어>의 그녀, 일본인 마에스트로 생선장수 아베 씨가 복어를 두 부분으로 해체하는 것을 눈으로만 배운다. 독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먹으면 행복해지는 부위와 먹으면 골로 가는 부위. 그러나 아베 씨는 그녀에게 결코 칼을 잡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조각가. 칼날을 다루는 일에 관해선 천부적 소질이 있는 편.
 1950년 서울 원남동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정여사는 피난지 학교로 전학한다. 피난지 마산고녀에 재학하던 중 집을 통째로 전세 내 살고 있던 집이 크기도 하고 몰려드는 피난민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을 수도 없어 문간방에 손주 둘을 데리고 있는 할머니에게 셋방을 내주었다고 한다. 전시에 젊은 부부 없이 손주 둘을 데리고 살아야 하는 늙은이의 삶이 얼마나 팍팍 했겠는가. 어느 날, 문간방 할머니가 시장에서 생선의 알과 내장을 한 소쿠리 얻어와(또는 주워와) 찌개를 끓이는데 음식 냄새가, 한창 발육이 왕성한 시절이었던 정여사의 코에 매우 감탄할 만한 그랑제테로 날아들었다. 정여사 댁에서는 아무리 전시라 하더라도 음식 맛난 거 있으면 두 아이들 불쌍해서라도 조금씩 나눠주고 그랬는데 이 늙은이는 냄새가 그리 좋은 찌개를 끓이면서도 정여사에게 먹어보라는 얘기 한 마디 없이 그걸 아이들하고 맛나게도 먹더라고 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할머니와 두 손주는 이미 싸늘해진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이들 둘 데리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늙은 할머니는 알면서도 복어 알과 내장으로 탕을 끓여 마지막 만찬을 즐겼던 거다.
 이 1951년 실화는 언젠가 내가 써먹으려고 꼬불치고 있던 것. 근데 조경란이 <복어>에서 써먹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먼저 쓰는 게 임자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어부였는데, 먼 바다에까지 나가 직접 잡아온 복어로 맛난 국을 끓여, 할머니의 생일날, 할아버지와 아홉 살 먹은 아버지한텐 미역국을 올리고, 자신은 복엇국을 들이킴으로서, 남편과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입술과 코 사이에 갑자기 주르륵 코피를 쏟으며 모로 넘어지면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버렸다. 복엇국을 맛나게, 그러나 장렬하게 들이마시고 생을 마감한 엄마를 두 눈으로 직접 본 그녀의 아버지는 어떻게 됐을까? 그건 내가 가르쳐드릴 수 없다. 직접 읽어보시라. 그럼 할머니의 유전자는 그녀 피 속에서는 안전할까? 죽고자 하는 마음, 그것의 정체는?
 심각한 우울증을 자각하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의 아버지. 도쿄탑을 보며 저기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묻던 형에게 죽으려면 3층에서 떨어져도 죽는다는 걸 알려준 그. 어느 날 형은 웃으면서 지금 곧장 집에 올 수 있느냐는 전화를 하고는 5층에서 자유낙하를 해버린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자세와 위치로 두 팔과 두 다리를 배열하고 머리통에선 피와 뭔지 모를 검붉은 액체를 쏟아내며 누워 있는 형.
 그녀와 그의 공통점은 자살 혹은 우울증의 유전자가 가문 대대로 유전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책 <복어>는 시종일관 우울하고 어둡다. 간혹 그로테스크하다. 계절은 거의 언제나 겨울이고, 봄이라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떨며, 벚꽃이 만발한 유일한 날엔 구구거리며 모이를 쪼던 비둘기를 독수리가 낚아채 날개를 찢고 머리통을 부순다.
 이런 소설을 쓴 건 이해한다. 앞에서 말했다. 예술이란 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과 죽음은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하고 또 이해한다. 죽음, 그것 중에서도 자살을 선택해 소설을 쓰고자 했던 마음을. 근데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많고 많은 책 중에서 내가 그 소설을 읽었다는 것. 이해는 하는데 나는 읽고 싶지 않은 거, 이것도 정당하다. 내가 읽고 싶지 않았던 소설을 당신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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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10-2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꼭이라고 붙이기는 좀 그렇지만 출판되어야만 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저만은 그 책을 그저 들어서 알 뿐 읽지는 않았으면 싶은 그런 책이 있죠;;;;하...이 리뷰를 읽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읽고나니 리뷰도 좋고, 책은 또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렇군요^^;;
좋은 주말 되시길!

Falstaff 2017-10-27 14:44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얘기하신대로) 왠만하면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선에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