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배치 민음의 시 129
신해욱 지음 / 민음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흠. 독후감을 쓰기가 난감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께서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것이 요즘 흔히 말하는 ‘서평’이라 생각하실까봐 겁난다. ‘서평’이야말로 단어의 과도한 확장이다. 책 한 권 읽고 아마추어가 자신의 느낌을 쓰는 것을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자신이 글을 읽고 책을 ‘평가’하는 자격은 평론가한테 맡기자. 그저 우리 평범한 아마추어들은 천진난만하게 책 읽고 자신이 즐긴 내용만 쓰면 된다. 그리고 얼마나 좋으냐, 느낀 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같은 이유에서 나는 지금부터 신해욱이 쓴 시집 <간결한 배치>를 읽고 고통 받은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독후감, 즉, 다 읽고 내가 느낀 대로 쓰는 거니까. 맞지?
 일단 시집을 사서 읽으면, 언젠가는 표제 작품이 나오겠지, 하면서 읽게 된다. 근데 이 책엔 표제작 <간결한 배치>가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고? 책 <간결한 배치>가 무지하게 큰 시 한 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것이 작가의 처녀시집(작가의 처녀막이 뜯어졌다, 뭐 이런 그로테스크한 얘기 하지 마시라. 저번에 써먹었다. 그리고 신해욱 시인은 아마 남잘 걸? 이라고 썼다가 검색해보니 여자닷!)인데,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시집의 제목처럼 시인 나름대로 간결하게 배치해놨다는 뜻일 수도 있다. (시인의 성gender을 헷갈린 이유는, 양장본일 경우 일단 겉표지를 벗겨내고 읽은 다음에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입히자마자 책꽂이에 꽂아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 앞날개에 붙인 시인의 사진을 못 본 거다. 그냥 이름과 시어들을 보고 남자라고 때려 맞췄다가 꽝인 경우.)
 시에 대해 진짜 아는 거 없는 내가 읽기에 중요한 작품 하나 뽑았다.



 

 103번 국도



 시야가 지워졌다.


 나는 가파르게 정지했다.


 비가 없지만
 나는 젖어가고


 돌아보면 까마득한 벼랑.
 그리고 나에게는 등이 없다.


 하룻밤쯤
 이곳에서 묵어야 할 것 같다.  (전문. 14쪽)



 이 시는 1부 격인 “오래된 휴일”의 두 번째 시다. 시인은  (우리나라엔 없는)103번 국도를 따라 달렸거나 뛰었거나 아니면 걷고 있다가 끼익, 멈췄다. 비 오는 날은 아니지만 하여간 여러 가지 이유로 젖어가면서.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까마득한 벼랑. 자기가 벼랑 위에 있는지, 벼랑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별로 친절하지 않아서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없나보다. 근데 시인한테는 등이 없다. 여기서 등이 뭘까? 등light일까, 아니면 등back일까. 둘 중에 어느 등이 없어서 벼랑 앞이거나 벼랑 위에서 묵어야 할까. (지금 쓰고 있는 건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 앞에 서 있는 벼랑 속으로 시인은 쑥 들어가 하룻밤쯤 묵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등back이 없는 거 아냐? 즉 벼랑으로 은유하고 있는 자신의 틀 혹은 (좋다!)예술, 생각, 똥고집 기타 등등 속으로 박힌다는 선언일 수도 있....을까? 없으면 말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내고 사 읽어본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면 그런 거다.
 앞에서 시집 자체가 큰 시 한 수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바로 다음 시 <某某> 세 번째 연에서는,


 오 분 뒤에 숨었던 바람이, 다시 나를 들어 올릴 때, 머무르라, 그대는 아름답다, 는 마르고 깔깔한 속삭임. 모르는 이름이 나를 가둔다. 여기는 다시 

 오 분 전이다.


 라고 노래함으로써 앞의 시 <103번 국도>에서 빠져나와 시인을 가두었음을 확정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혹시 모던 시치고는 그래도 평이한 수준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 일단 알아들을 수 없는 시는 휙휙 지나치고 1부 “오래된 휴일”의 마지막 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접어들면, 드디어 시인이 자신을 가두어 놓은 장소가 나타난다.


 모텔 첼로가 있는 오랜 벌판에 이따금
 낡은 짐승들이 배회하고 있었고
 어두운 객실에서 당신이 죽을 때마다
 인디언 인형은 사라져갔네
 어딘가로 가라앉은 당신의 눈들
 일렁이며 눈 뜨는 당신의 아름다움
 아무도 없는 모텔 첼로의 열 꼬마 인디언과
 당신의 죽음은 열두 번 계속될지니, (후략)


 모텔 첼로라는 곳에 자신을 가두어 놓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모텔 첼로’는 천안시 서북구 망향로에 있던 진짜 ‘모텔 첼로’, 일찍이 대한민국 모텔 역사상 최초로 세계품질표준 ISO9001을 획득한 바 있는 바로 그 모텔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신해욱 시인이 경춘가도를 지나가다 한 번 간판만 보았거나 아니면 하루 묵어봤는데 방이 진짜로 간결하게 배치되어 아주 인상 깊었거나, 장래 희망이 모텔 주인이라서 정말로 모텔을 짓거나 인수하면 이름을 첼로라 하겠다, 작정한 그런 이름일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2부의 제목이 “모텔 첼로”라는 거. 이리하여 1부까지 읽고 드디어 2부의 제목을 읽는 순간, 혹시 이 시집은 제목 <간결한 배치>의 큼지막한 시 한 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게 된다. 모텔 첼로의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즉, 앞에서 벼랑 속으로 들어가 등back이 없어지는 순간을 한 번, 최초의 죽음이라고 치면, 앞으로 열한 번의 죽음이 남아 있는 바, 2부 “모텔 첼로”는 열한 수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참으로 간결한 배치다.
 물론 지금 이 감상문을 읽는 분들께서 참 가져다 맞추기도 잘 한다, 라고 하면 독후감 전문 아마추어는 그냥 깨갱, 하며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 말이 아주 조금은 맞을 걸? 이 글 읽으시는 분들 가운데 여태 살면서 모텔 한 번 안 가보신 분 거수. 난 침대 시트 위에 고불거리는 털 몇 올 떨어져 있을까봐 겁나 여간해선 호텔에 가는데, 모텔이나 호텔이나 거기가 거기라서 공통점이 무수한 셀, 세포, 방, 밀실, 폐쇄공간으로 만들어졌다는 거. 간결하게 말해서, 그렇게 배치되었다는 거. 그곳에서 열한 번의 죽음을 더 경험한 시인은 마지막 시 <벽>에서 또 노래한다.


 (전략)
 나는 눈을 뜬다.


 생각 속에서 어떤 손이
 불쑥 나타나
 이유 없이
 오래도록
 내 얼굴을 만진다.


 나는 자꾸 사실 바깥으로
 벗어나고 있다.  (38쪽)


 죽음을 끝마친 시인은 마지막으로 이제 죽을 만큼 다 죽었으니 바깥으로 한 번 벗어나볼까, 하고 모텔에서 나오는데 그곳은 3부 “환한 마을”이다. 이어 계속 “즐거운 번화가”에서 어슬렁 거려보기도 하고, “흑백의 마을”과 “사각 지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그때에도”라는 7부에 도착하면 이제야 각 부部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 한 수가 등장한다.



 그때에도



 나는 오늘도
 사람들과 함께 있다.

 

 누군가의 머리는 아주 길고
 누군가는 버스를 탄다.

 

 그때에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고 있을 테지.

 

 그때에도 나는
 당연한 것들이 보고 싶겠지.



 1부 “오래된 휴일”에서부터 6부 “사각 지대”까지 쌔빠지게 죽고 살고 다시 죽고 또다시 부활해 맞이한 오늘. 가파르게 정지해서 뒤 돌아보니 까마득한 벼랑이 결국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거다. 누군가는 돈이 없어서 그랬나, 파마도 하지 않은 생머리를 길게 길렀고, 누군가는 택시비가 없어 버스를 타는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보고 싶은 거. 이게 시를 쓰는 일이고 세상사는 일이라고, 시인은 혹시 길고 긴 하나의 시 <간결한 배치>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뭐, 아니면 말아랏!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