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폭풍 속에서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4
에른스트 윙거 지음, 노선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독후감을 쓴 베르타 폰 주트너의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오스트리아 인의 입장에서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쟁부터 프러시아-프랑스 전쟁, 즉 보불전쟁까지 전쟁의 참상을 민간인 여자의 눈으로, 그러나 가문 대대로 장군을 배출한 백작 집안 19세기 여인의 시선으로 그려놓았었다. 폰 주트너는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젊은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한 감상적感傷的인 여인이 끔찍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당대엔 여성의 미덕으로 가르치기도 했던, 졸도까지 해가며 전쟁 자체를 반대하기 위해 세계만방에 당장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웅변한 반면, 에른스트 윙어는 스스로가 독일제국의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자신이 스스로 겪은 전쟁을 최대한 객관적인 모습으로 전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윙거가 용감한 독일 군인이었을 뿐이란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사병으로 참전하다가 첫 휴가를 나와 아버지의 권요로 사관 교육을 받고 소위, 즉 장교로 전쟁을 끝까지 치룬 말 그대로 뼈 속까지 군인이다. 윙거에게 우군은 독일군이고 적군은 주로 영국군인데 프랑스군, 스코틀랜드군, 인도군, 심지어 뉴질랜드 군인까지 아우른다. 윙거는 애초부터 폰 주트너 여사와 달리 전쟁이 옳은지 부당한지, 정의로운지 불의로 가득 찬 짓인지는 관심이 없다. 오직 군인으로 참전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군인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이건 주트너의 <무기를…>에서도 주인공 마르타 알트하우스의 진지하고 정의롭고 진심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군인 남편 프리드리히 폰 틸링 남작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군인으로서 전쟁에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옳건 그르건 간에 일단 참전을 하면 자신의 본분을 다해 조건 없이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 근데, 어쨌든, 윙거는 명예니 뭐니 따지지 않고 오직 군인으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을 굳이 분류하자면, 경험담, 즉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죽음, 고통과 비명, 휴식과 훈장 등으로 도배가 된 책을 다 읽은 것은 ① 돈 주고 산 것이 아까워서, ② 1차 세계대전의 특징인 전장의 변화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즉 초기 참호전塹壕戰 중기 이후 무기의 발달로 인한 기계전으로 본격적인 대량 살상전에 흥미를 느껴서, ③ 인류 최초의 독가스전(난 독일만 가스를 사용한 줄 알았더니 이 책 읽어보니까 영국이 이 방면으로는 선구자였네, 윙거가 독일군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에 관해 좀 알고 싶어서, ④ 전쟁 중 기계와 포탄보다 더 인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즉 싸우는 걸 보다 못한 지구가 에라 이 염병할 놈들, 하며 선물해준 천형이 궁금해서 등등이었다. 전쟁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지구상에서 허용되면 안 된다. 위 ②번 사항에서 보면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대량 살상이 가능하고, 심지어 한 도시를 완전한 폐허로 만드는 것도 벌써 100년 전부터 가능했다. 이제는 100년 전 도시보다 수천 배는 더 커진 도시와 인구를 단 한 번, 손가락 하나로 버튼을 누름으로써 가능하게 된 시대이며, 일단 폐허 상태가 되면 영구히 복원 불가능한 환경으로 지구는 진화했다. 아, 이건 제일 나중에 얘기할 건데 너무 미리 썼다.
 하여간 윙거는 자신이 경험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전장에서 무참하게 벌어진 참상을 전하는데 형용사를 굉장하다고 할 정도로 생략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이런 식. “상사의 머리는 육체와 분리됐고, 로돌프 상병의 창자가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딱 보이는 만큼만 서술한다. 스스로 무수하게 총에 관통당하고, 포탄 파편이 박혔으며, 유산탄알을 몸속에 간직하고 있는 윙거는 놀랄 정도로 무덤덤하게 그냥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읽고 전장을 상상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체험하는 건 그리하여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혹시 별점이 있으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지만, 이 책, 그리고 폰 주트너 여사의 <무리를 내려놓으라>를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면 왜 만점을 받는가. 그건 오직 하나. 앞으로 지구상에서 전쟁은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 명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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