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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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쿠 “久方の雲井の空の子規”를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라고 번역하다니! 책의 표지에 굵지 않은 나무 두 그루 서있고, 가지에 두견이 앉았는데, 바로 그 옆, “久方の雲井の空の子規”가 종從으로 쓰여 있다. 한자 사이의 일본어가 전부 조사 “の”라 그냥 한시 읽듯 그림이 그려지지만 정작 그걸 한글로 바꿔보라면 어찌 역자 송태욱처럼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라 했을 수 있을까. 이쯤 돼야 외국 시를 번역하는 거다. 그래도 (독자가) 가능하면 원문을 그대로 감상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겠지만. 일본이 외국문학을 수입하면서 벌써 100년 전에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며 번역에 공을 들였는지 이 책에서 조금 나온다. 대학생, 졸업생, 대단한 실력의 영어교사 등이 모여 한 문장, “Pity's akin to love.”를 어떤 일본어로 바꿔야할 것인가를 두고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장면(127쪽). 주인공과 가장 친한 친구 요지로란 인물 왈, “가엾다는 것은 반했다는 것이니라.” 하지만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지청구를 듣는다. “안 돼, 안 돼, 졸렬하기 짝이 없군.” 109년 전의 일본 문과대학에서는 이런 사소한 문장 하나를 두고 올바른 번역을 위해 토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쓴 건 이 책의 옆가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소개한 맛보기다.

 책은 20세기 초, 후쿠오카 촌 동네에서 도쿄로 유학을 떠나는 소천삼사랑, ‘오가와 산시로’를 태운 열차 안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열차 안에서 얼굴이 가무잡잡한 유부녀를 알게 되고, 여인의 부탁(당시가 20세기 초, 여자 혼자 여관을 잡는 건 좀 무모한 일이었던 모양이다)으로 중간 기점에서 여관을 잡아주다가 엉겁결에 목욕도 하고, 그러다가 거의 벗은 여인이 “때밀어줄까요?” 독특하고 바람직한 일본 특유의 목욕 문화적 친절에 기겁을 해서 (덜렁거리며)뛰어 나오고, 어쩔 수 없이 한 방에 묵을 수밖에 없게 되고, 밤새 툇마루에 앉아 있기엔 모기가 하도 극성이라 엉금엉금 그녀가 모로 누어있는 모기장 안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이불을 톡톡 두르려 도드라지게 하여 여자와 자기 사이에 마치 전쟁의 진지인 것처럼 금을 긋고는 여자의 몸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잠만 쿨쿨 자버리는 남자. 이거 참 죽일 놈이다. 넌 그렇다 치고 옆에서 밤새 잠 한 숨 못자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인의 앙가슴을 도대체 어찌할 거나. 하여간 그리하여 다음 날, 다시 무대는 기차역. 두 남녀, 좀 서먹서먹했겠지? 여자가 남자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을 잘 잤으니 먼저 인사하길, “여러가지로 귀찮게 해드려서… 그럼 안녕히 가세요.” 산시로의 습관적인 대꾸, “안녕히 가세요.” 근데 여자는 산시로의 얼굴을 계속 가만히 바라고보 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
 책은 15쪽부터 시작해 335쪽까지 이어지는데 이 대사는 24쪽, 딱 열 번째 줄에서 등장한다. 이 한마디로 나쓰메 소세키는 산시로의 성격을 콱, 규정해버리고 만다. 여자가 말하는 ‘배짱’이란 것이 뭘까? 한 번 보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질 여인과 한 방, 같은 모기장 안에 자면서 손가락 한 번 까닥하지 않는 거? 일단 그렇다고 봐야한다. 여인의 남편은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 히로시마에서 군함을 만들다가, 러일전쟁을 맞아 여순(뤼순)에서 돈을 벌었고 지금은 대련(따롄)에 있으니 그거 참, 여자가 애초에 산시로한테 있는 줄 뻔히 알고 좀 달라는 걸, 그걸 안 주었으니 배짱이 없단 비아냥은 정말로 받아 마땅한 거 아냐? 물론 농담이다.
 당시 나이 스물 서넛의 산시로. 배짱 없는 산시로가 후쿠오카를 떠나 당시 일본인 시각에선 험하기 짝이 없어 눈 감으면 코 베갈 도쿄에 도착/정착하여 숱한 배짱 있는, 그리고 배짱 없는 인간 속에서 보낸 대략 1년을 그리고 있다. 여전히 성실하기는 하지만 농촌 청년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는 산시로 앞에, 도시적인 뻔뻔스러움과 특별한 친화력, 가벼운 지식으로 무장한 요지로가 등장하고, 물리학을 공부하는 동향 선배이며 국내외에 성가를 높이고 있는 노노미야 씨와 그의 여동생 요시코를 알게 되고, 요시코를 통해 또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도쿄대의 연못 근처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 미네코와 친해진다. 여기에 일찍이 도쿄에 오는 3등 열차에서 만난 적이 있는 대단한 실력의 히로타 선생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후반엔 산시로가 마음에 둔 여자 미네코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린 하라구치 화백까지.
 소세키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오니, 바로 노동하지 않고 공부하거나 예술만 하는 돈 있는 집안의 젊은이들. 딱 둘만 꼽으면 산시로와 요지로. 요지로는 관계의 지속, 심화를 위하여 친한 친구 산시로에게 30엔을 빌려 절대로 갚을 마음이 없다. 왜냐하면 요지로 생각으로는 자기가 돈을 갚게 되면 오히려 둘 사이가 서먹서먹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어서. 대책 없이 요지로에게 30엔을 꿔준 산시로는 하숙비를 내지 못하게 되는 곤란을 피하기 위해 미네코로부터 30엔을 빈다. 배짱 있는 요지로는 산시로에게 꾼 돈을 그냥 꿀꺽하고 마는데, 시골 출신의 배짱 없는 산시로는 홀어머니에게 부탁해 시골 수준으로 말하자면 근 1년 양식에 해당하는 30엔을 받아 기어이 미네코에게 돈을 갚으려고 한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마는 건, 더 이상 조잘대는 주둥이를 건사하지 않으면 책의 내용을 송두리째 일러드리게 되기 때문. 얼핏 보면 참으로 대책 없는 인생을 사는 요지로의 어디로 뛸지 모르는 개구리 식 뜀박질이 아슬아슬하고, 산시로의 사는 방법이 답답해 가슴이 컥 막히기도 하지만, 사이에 그 둘을 절충해줄 아무런 쿠션도 소설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소세키다운 작품. 디테일한 성격 묘사와 인물들 간 서로 부딪는 사소한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찾아낸다. 소소한 재미가 참 그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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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1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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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1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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