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 민음의 시 101
김경후 지음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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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딱 보고, 남잔 줄 알았다. 시집 읽는 내내 그랬다가 후반부 가서 혹시 여자 아냐? 싶어 책 맨 뒤에 작가 약력 보니까 이화여자대학 독문과 나왔다. 그 학교가 남자한텐 학생 자격을 주지 않고(여태!), 찌질하게 그걸 남녀불평등이라고 고소한 남자가 있었는데 법원은 학교의 판단이 적법하다고 인정했으니까 틀림없이 김경후는 여자일 것이라고 결론 냈다. 이 책, <그날 말이 돌아오지 않는다>가 김경후의 처녀시집. ‘처녀시집’이라고 해서 김경후 시집의 처녀막이 찢어졌다고 주장하는 시인 김영승의 발상은, 영어로 말해서 그로테스크하다. 하, 그로테스크, 이 단어가 책을 읽는 내내 입 안에서 뱅뱅 돌긴 하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Grotesque. 그러다가 시집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시가 실려 있어서 무릎을 탁, 칠 수밖에.



그로테스크한 동화


염산비 검게 내리는 하늘
관들이 떠다닌다
가끔 흔들리는 뚜껑 떨어지고
썩은 나무관은
오래된 시체를 놓쳐버린다
쏟아지는 살과 얼굴을
꼬챙이에 꽂는 아이들
숲에선 그 살로 밀주 담그고
술 마신 사람들의 휘파람 소리
뱀을 불러모은다
따뜻한 눈과 입 속을 파고드는 뱀
위와 대장을 꽉 물어
항문 밖으로 끌어낸다
구불대는 내장은 아직 취해 있다
껍질만 남은 사람 속으로
어느새 모여든 나방들
잔뜩 알 낳고 낄낄거린다
새로 태어나는 나방은
죽은 사람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오래지 않아
하얀 주름 구더기가
거죽과 내장 나방 뒤덮는다
이즈음 걸죽해지는 시체
강으로 흘러간다
어린 소녀들 강가에서
까마귀 알을 품거나 관을 짜고 있다  (전문. 90~91쪽)


 어떠셔? 읽을 만한가? 시집에 실려 있는 많은 시가 그로테스크하다. 그래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적응하기 어렵다는 건 전적으로 내 취향이고 기호이고 하여간 그런데, 이 시집에 관해서 좀 더 힌트를 드리자면, 위 전문을 써놓은 <그로테스크한 동화>는 그나마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시라는 거. 시집에 나오는 모든 시가 그렇듯, 이 시도 내려쓰기 할 때 앞에 적어도 한 칸 띄어쓰는 일반적 관습을 무시하고 있다. 그게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권한으로 분명한 오독誤讀을 하자면, 한 줄 한 줄을 각기 새로 시작하지 않고 시인이 속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연속한 걸, 다만 문자로 쓴 것이다, 라고 오해해주기 바라서 원고지의 첫 칸부터 채워나간 것은 아닌가싶다.
 김경후의 시가 전부 이리 그로테스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며칠 전 기형도를 이야기하면서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感傷의 암호’가 싫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김경후의 처녀시집에서도 이런 경향은 나타난다.



해 들지 않는 놀이터


난 이곳에서 태어났다
모래알갱이를 씹어먹고 모래무덤을 덮고
살았다 녹슨 철봉 냄새가 나는 입
끊어진 그네줄 같은 팔다리
아무도 이곳에 놀러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겨울
사람들이 찾아와 봄을 보여주겠다며
앞에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녀간 겨울 내내
난 얼어붙은 모래밭을 걸어다녔지만
내 발자국은 없었다 
(후략)


 예로 든 <해 들지 않는 놀이터>가 가장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암호가 많은 작품이라 고른 것이 아니라,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에 처음으로 눈에 뜨인 그래도 평이한 시라서 옮긴 것일 뿐이다.
 여기에 보탤 것은, 언어의 불통 혹은 역류에 대한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독후감이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예시는 하지 않겠지만 말이 특정한 행위나 생각이나 현상, 또는 감정에 관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있다면 지극한 개인적 입장에서만, 지구인 가운데 글을 쓴 오직 한 명 또는 극소수만 뜻을 알아챌 난수표. 이것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이 더해진다는 것. 그래서 “구멍을 뚫고 네 잠 속에서 나와버렸다 이제 그곳에 담배꽁초가 던져지고 네 몽정의 전 과정은 생방송 뉴스로 진행된다” (<잠> 9쪽)고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이해하기 어렵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도 그로테스크해서) 읽기 짜증나고 간혹 혐오감까지 나게 만드는데, 이왕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같이 좀 경쾌하기라도 하지, 참 감상하기에 난감하게 만든다. 그간 시하고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적응하기 쉽지 않다. 이건 전적으로 시인 김경후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김경후와 그의 애독자에게 미안하다. 난 이 시집을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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