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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뿔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 신께서 낙타에게 뿔을 주셨다. / 마음이 착해 상을 주신 것이다. / 어느 날 꾀보 사슴이 낙타에게 와 말했다. / “뿔 좀 빌려다오. 잘 차리고 서역 잔치에 가련다.” /낙타는 곧이 믿고 뿔을 빌려주었다. / 사슴은 돌아오지 않았다. / 그때부터 낙타는 늘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 사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위는 7쪽에 나오는 서문 비슷한 글이다. 서문만 읽어봐도 이 작품은 ‘기다림’에 관한 서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300쪽의 장편소설이라면(물론 편집을 최대한으로 늘려서 그렇지 250쪽 언저리로도 충분히 책을 꾸릴 수 있는 분량이다) ‘기다림’이 복합구조 속에서 발생하여야 할 것이라서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기다림이 될 수밖에 없다, 는 걸 요샌 모르겠고, 수십 년 전 고등학교 현대문 시간에 배워 안다(그땐 이과 반에서도 국어 교과서를 교사 두 명 이상이 각각 고문, 현대문을 따로 가르쳤다).
주인공 효은. 스물 네 살의 아가씨가 화자 ‘나’이자 효은. 당연히 오늘의 주제 ‘기다림’은 나, 즉 효은의 기다림을 얘기하는 거라서 무엇보다 ‘나’를 알리는 것이 소설을 소개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일이겠다. 나. 2년제 전문학교 출신. 일찍이 21세 때, 두 살 많고 잘 생긴데다가 오페라 노트 ‘섬머타임’을 숨넘어가게 잘 노래하는 수영선생 ‘규용’하고 정분이 나서 스물한 살 때 ‘황소개구리처럼’ 배가 불러왔다.
잠깐. 이왕 얘기 나왔으니 우리 거쉰의 <포기와 베스>에서 나오는 Summertime 한 번 듣고 지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