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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ㅣ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2010년 민음사가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오늘의 작가상’이 어떤 상인가. 한수산의 <부초>,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최승호의 <대설주의보>, 조성기의 <라하트 하헤렙>, 강석경의 <숲속의 방> 등, 가히 당해 연도 빛나던 작품들을 골라 어제도 아니고 바로 오늘의 작가라고 계관을 씌워주던 상이다. 물론 나 소싯적에 그랬다는 말. 요새는 넘겨듣기론 민음사에서 낸 책만 아니라 모든 출판사에서 나온 모든 책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데 그것도 민음사의 돌아간 사주 박맹호 선생 아니면 힘들었을 결정이었겠다.
하여간 그런 상을 받았다고 하니 요샌 오늘의 작가상 수준이 얼마나 되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써놓고 다시 읽어봐도 참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이긴 하지만 하여간) 오랜만에 듣는 상, 그동안 밥상, 술상, 찻상, 개근상밖에 받아본 적 없어 오늘의 작가상이란 이름도 새삼 멋있기도 해서 한 번 골라 읽어봤다. 물론 이왕 상 탄지 7년이나 된 책을, 우라질 도서정가제 때문에 비싼 책값 다 내고 읽기 뭐해서 중고책 골라 읽어봤다.
220쪽 조금 넘는데, 분량이 짧기도 하지만 어쨌든 반나절이면 다 읽는다. 소감? 이거 읽은 독자들은 딱 두 패로 나뉘겠다. 찬반양론이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작. 나? 당연히 찬성 쪽. 이 책 <제리>만 보고 말한다면 이런 작가의 등장을 두 손 들어 환영하는 입장. 왜? 어떤 소설보다 더 야한 베드 씬 장면이 등장해서. 이건 물론 농담이다.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이 낯설고, (낯설어서)불편하고, (낯설고 불편해서)급기야 불쾌한 단계를 넘어, 양쪽 관자놀이 상단 10cm(‘십센찌’라고 굳이 발음할 필요는 없고) 부근에 악마의 뿔이 돋을 만할 때에 이르면, 스물아홉 살배기 작가 김혜나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태까지 모든 낯설고,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며 심지어 도발적인 모든 표현을 통해 인간, 그중에서도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젊은이들의 고독과 소외와 그리움을 넘는 갈망이란 걸 깨닫게 된다. 너를 향한 갈망. 또는 우리를 향한,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싶은 갈망. 어떻게 이걸 소설행위로 표현해야 할까. 김혜나는 섹스로 이 이야기를 풀어냈으며 그래서 지독한 수준의 성애묘사가 바로 그 자리에 필요했었으리라. 작중 주인공 ‘나’가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섹스가 나에게 준 건 까마득한 벼랑위에 선 듯한 오르가즘이 아니라 언제나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모를 관계의 유지 및 새로운 관계의 생성을 위해 섹스는 언제나 필요했던 것이었다.
21세, 22세, 많아봤자 25세 가량의 젊은 여성들. 인천 소재 2년제 대학의 야간부에 다니는 아가씨들은 부모한테 용돈을 받고, 모자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충을 해가며 남자 도우미를 불러 노래바, 노래방의 ‘방’을 ‘바Bar’로 바꾼 결과 유흥음식점으로 바뀌어버린 노래바에서 질탕하게 때려 노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런 철딱서니 없는 젊은 것들을 봤나, 하는 것이 처음에 든 솔직한 감정. 외롭다, 힘들다, 난 패배자다, 하는 그들의 정서를 정말로 한심하고, 우울하고, 세상모르고, 어이없게 받아드리는 기성세대, 즉 내 마음 속의 것들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진정으로 마음 짠하고, 속상하고, 공감해서 내게 기대 마음껏 눈물을 쏟을 수 있게 어깨를 빌려주고 싶게 되는 과정이 이 책을 읽는 일이다.
워낙 짧은 소설이라 이 정도의 스토리 및 책 읽은 소감이면 충분하리라 믿는다. 더 이상은 아무리 궁리해도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 김혜나의 책들을 검색해보면 극과 극의 평이 달리는데, 하나 정도 더 읽어볼 예정. 일단 이 책은 내 마음에 딱 들었으며, 그리하여 아직 민음사에서 매년 주는 ‘오늘의 작가상’에 대한 신뢰도 연장되었음을 널리 고한다. (어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