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민음사 모던 클래식 30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 샀을 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절판이다. 이럴 때 은근히 기분 좋다. 예상한 수준 이상으로 책이 재미있을 경우엔 더 그렇다. 이게 민음사에서 내놓았던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의 한 편. 눈치를 보아하니 민음사는 더 이상 이 시리즈를 내지 않을 거 같다. 판형 바꿔 세계문학전집으로 내는 거 아냐?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이런 수준의 책을 절판 상태로 내비두긴 너무 아깝다.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썼다.

 북 잉글랜드의 평화스럽고 지극히 일상적인 소도시에서 한 점잖은 중늙은이가 크레인 위, 저 까마득한 꼭대기 위에서 뭄에 줄을 묶은 상태로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멀리서 보면 몸에 묶은 줄이 보이지 않아 마치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몸이 개구리처럼 터져버릴 거 같다는 경악. 사람들은 우연히 이 장면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전혀 보지 못한 상태로 일상의 일을 하고 있다. 한 트럭 운전수 역시 지극히 일상적인 운행을, 그리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차를 몰고 있었고, 우연히 눈에 까마득한 하늘 꼭대기에서 한 남자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해 깜짝 놀랐다가, 로프의 이완과 수축 현상으로 다시 위로 솟구치는 걸, 여전히 악셀레이터를 밟은 상태에서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이물체, 그게 무엇인지, 사람인지 개새낀지,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엄마인지, 세발 자전거를 탄 어린 아이인지도 모르는 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브레이크 관을 따라 브레이크 오일이 압력을 가해 브레이크 디스크를 순간적으로 꽉 다물어 바퀴가 순식간에 정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비극적인 비명을 지르며 바퀴와 동시에 멈추지 못한 채 아스팔트에 앞으로 몇 달간 여간해 지워지지 않을 검은색 띠의 흔적을 남긴 채 찌지이이이익 끌려갔고, 조용한 동네를 한 순간에 울리게 만든 기분나쁜 소음을 들은 주택가 19번지 할머니는 문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졸며 깨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고개를 번쩍 들고 얼른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눈을 돌렸고, 21번지 나이 든 부부는 훤한 대낮에 오랜만에 한 번 하고 둘 다 벌거벗은 채 나른하게 누워 있다가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린가 깜짝 놀라 벗은 몸을 가리지도 않고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봤으며, 이때 20호에 사는 청년은 내일 집을 옮기기 위해 짐을 싸다 번쩍 일어났는데 눈 앞에 먼저 보이는 게 앞집 이층 침대 위와 창가의 벗은 몸(들)이었고, 기타등등, 그 동네 주민들의 일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거, 요약해놓은 거다. 그 날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나열하자면 이런 시나리오가 나오는데, 이걸 이해하기 위해선 끝까지 다 읽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근데 오늘 왜? 아, 이거 지금 품절이니까 여러분들 읽기에 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혹은 이 책을 골라 읽을 때 쯤엔 내가 여태 써놓은 거 기억할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란 계산이 나와서 오랜만에, 스토리 쫙 써놨다.

 근데 이걸로 끝? 천만에. 위헤서 두 가지 방식으로 썼다고 했으니 하나가 더 남았다.

 그때 그 순간 동네에 있었던 한 여자애가 점점 자라 이제 성인이 됐고, 평생, 지금까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신한테, 친딸한테 그리도 냉정하고 예의바르고, 자주 너무 예의바른 건 냉정하다는 말하고 같을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경우가 그런데, 차가운 배려를 아까지 않아 외갓집이 있는 스코틀랜드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아서 전혀 몰랐던 외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런던 역 3/4 승강장에서 기차를 타고 근 열 시간을 달린 끝에 스코틀랜드에 도착, 장례식에 참석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장례식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전부 친척임에 틀림없는 보통의 스코틀랜드 장례식. 이들이 모두 체크 무늬 치마를 입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깐 의아했던 여자('나') 앞에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나 나는 아무 생각없이 한 번 했고, 씨를 내려 받아 임신을 했다. 아이는 배 속에서 점점 자라고 나한테 씨를 준 스코틀랜드 바텐더에겐 연락하기 싫은데, 난 임신과 출산과 수유와 육아에 관해선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 절망스러운 상태, 딱 그때 내 눈 앞에 나타나는 선량한 젊은 남자.

 이 두 사건의 동시상영. 어떻게 연결이 되고 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는지, 내 그건 얘기하지 않겠다.

 나중에 다시 책 팔면 읽어보고 직접 알아내시라고. 으때, 나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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