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샤
아이작 B.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수들, 사랑 이야기> 이후 6년이 지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1978년에 발표한 수작 <쇼샤>. 근데 안타깝게도 이 번역서를 찍은 출판사 '다른우리'가 마지막으로 책을 발간한 것이 2013년. 한 마디로 망한 거 같다. 더 갑갑한 건 이 아름다운 책을 간행할 권리도 그냥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후로 이 작품의 판매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 <원수들, 사랑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읽고나서 아이작 싱어의 작품을 뒤지다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이 책을 찾던중 깨끗한 중고책을 사서 참 보람찬 일박이일을 보냈다.

 <원수들...>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뉴욕에 자리를 튼, 즉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대인 남자와 현재 아내를 포함해서 세 여인(지금 마누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전처, 러시아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모면하고 도망쳐온 정부)을 슬프고도 유쾌하게 그리고 있는 반면, <원수들...>보다 6년 늦게 발표한 <쇼샤>는 전쟁 바로 직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거리 클로크말라 가에서 끔찍한 불안과 죽음의 공포로 두려움에 떨고 있으나 차마 오랜 세월 태를 묻고 살던 폴란드를 떠날 수 없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폴란드 땅을 벗어나기가 무척 힘든 상황에서,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말살을 눈 앞에 번히 예언했던 유대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예술을 하고, 공연도 기획하면서 이를 통해 사회적 성공을 (그 와중에도) 기대하는 실제적 삶의 모습,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조건없이 사랑하며 헌신하고 희생을 무릅쓰는 아름다운 광경을 그리고 있다.

 남자 주인공 아론이 10번가 아파트에 살 때, 그냥 조건없이 마음이 끌렸던 유로지비와 매우 가까운 성향의 동갑내기 계집아이 쇼샤. 랍비의 총명한 아들 아론은 부담없이 쇼샤의 집에 놀러가 즐겁게 지냈던 것인데 세월이 지나 시절을 돌아보니 자신이 쇼샤하고 놀고싶어 했던 것이 마치 자력과 같은 끌림 때문이었더라는 걸, 주변의 유부녀들과 내연의 관계를 갖기를 서슴지 않는 단계로 진화한 상태에서 불현듯 깨달아버리고 만다.

 전쟁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폴란드 땅에서 돈과, 명예와 심지어 미국으로의 탈출까지 보장해줄 수 있는 온갖 조건을 물리치고 아론은 소녀시절 이후 키와 체격도 별로 자라지 않은 병약한 쇼샤와 함께 폴란드에 남기로 결정한다.

 아직 중고책으로는 얼마든지 읽어볼 수 있으니 그분들을 위해 스토리는 여기까지. 이 정도의 소개도 과했다.

 작가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스스로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이디시 언어로 소설을 쓴 사람이다. 이디시어. 독일, 폴란드, 러시아 등 북부 유럽에 분포해서 살았던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의 언어. 물론 그가 작품을 문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이디시어로만 간행, 판매한 건 아니고 거의 모든 작품을 다시 영어로 바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학상을 탄 것이겠다. 이건 다음에 소개할 응구기 와 티옹오가 케냐어로 책을 쓰고 곧이어 영어로 다시 출판해 요새 매년 강력한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거와 비슷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디시어는 물론이고 영어책도 한글처럼 자유자재로 읽지 못하니 한글 번역본이라도 이이의 책을 좀 다양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2017년 8월 현재, 아이작 싱어의 번역본은 동화책 두 권 빼고는 <원수들....> 하나밖에 없다.

 재미있는 책. 그러나 어쨌든 절판 상태에 있는 책을 두고 이렇고 저렇고 더 얘기를 보태려하니 솔직히 힘이 빠진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복잡미묘한 관계와 약간의 질투를 포함한 상호인정 같이 흥미있는 '관계'도 많이 나온다. 사람들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관계' 아닌가. 내가 죽고 살지 못할만큼 사랑하는 정부가 요새 내 눈에 안띄게 만나 진한 사랑을 나누는, 그러니까 정부의 정부. 그와 나의 관계. 참 복잡하지? 이 책에선 복잡하지 않다. 대신 쌈박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믿을 건 믿는다. 내 아내의 정부에게도 내가 진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면모 역시 있는 법. 그거 인정하는 힘, 어디서 나오는 거야? 유대인의 합리성에서? 아니면 인간 누구나에서. 난 두번째 경우에 만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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