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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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 책을 말할 때는 《오늘의 거짓말》이렇게 쓰고, 각 단편을 얘기할 땐 <타인의 고독>, <오늘의 거짓말> 이렇게 써야 하지만, 그냥 <어쩌구저쩌구> 이렇게만 쓴다. 특수기호 《 》찾아쓰기 귀찮아서. 양해하시라, 언제나와 같이 내 맘이다. (다 쓰고 이 부분 다시 읽어보니 괜히 쓴 거다. 책 제목과 작품 제목이 오늘의 독후감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인생이지 뭐.)

 참 매력적인 단편소설들로 채워져있다. 정이현 이사람 누구야? 인터넷엔 성신여대와 동 대학원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문창과는 졸업했는지 조금 다니다 말았는지 그런 거 같다. 학벌은 소설 쓰는데 전혀 중요하지 않음. 어느 학교를 졸업하고 뭘 전공했던지간에, 거 참 마음에 드네. 헉, 이 책이 나온 것이 벌써 10년 전, 2007년이다. 다행히 품절은 아니고.

 작가가 1972년 생이니까 대강 보면 1990년대가 인생의 최고 전성기. 대한민국 방송가에선 노래 잘하는 발라드 가수와 댄스 가수들, 그리고 기념비적인 서태지가 등장하여 눈부신 황금시대를 열고 있었으나, 1년 터울을 두고 서울에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가 주저앉아 무학여고 학생을 비롯해 36명이 죽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지만 가장 좋은 제품만 골라 팔던 최고급 삼풍백화점이 거짓말처럼 무너져 502명이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작가의 나이 스물 서넛 시절. 남자친구 또는 애인 군대간 사이 숨길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진 것처럼 궁상을 떨던 선배들과는 달리, 아주 조금의 께름칙함을 느끼며 가볍게 고무신 거꾸로 신었으며, 아직은 대부분의 여자들은 코스대로 차근차근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 후 짧은 기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다음 결혼이란 사이클로 편입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대. 그러나 이 사이클의 마지막 단계, 결혼이 쉽지 않았던 소수는 점점 나이들어 이젠 누가봐도 노처녀란 딱지가 어울리는 육체와 마음을 가지게 되자 현금을 두 손에 들고 중매업자들을 매개로 일요일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기에 이르고, 결혼에 이르기는 했으나 성격차이를 심각하게 자각하여 이혼에 이르러도 옛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최악의 증오 상태가 아닌 옛친구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첫세대가 되기도 한다.

 아, 숨차. 파바박, 쉬지 않고 자판을 두드려 써댄 위의 모습이 이 책의 작가 정이현이 누렸던 젊은 시절 또는 황금시대. 하지만 아무리 열라 도끼질을 해봐도 도처엔 절대 넘어가지 않는 나무들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이십대 시절. 그걸 겪은 작가가 딱 그때를 회상해가며 썼거나, 이제 어느새 90년대 후반을 거쳐 대한민국의 찬란무비한 21세기가 도래한 딱 그만큼 나이먹어 벌써 청소년기에 접어들었거나 아직은 유소년인 자녀를 둔 아줌마가 돼버렸기도 하고 아직도 짝을 만나 결혼하지 못해 사회가 참견하는 것이 당연한 듯 결혼은 도대체 언제 할 거냐는 타박을 옴팡 뒤집어쓰는 신세가 된 이야기.

 마음에 드는 작가를 한 명 찾은 듯하다. 한 권 읽고 이렇게 얘기할 수 없으니 다음번에도 이이가 쓴 소설을 한 권 더 읽어보고 좋아할까 말까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이의 미덕은 글이 거칠지 않다는 점. 같은 이야기를 해도 지악스런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대신 상황과 행동의 장면을 기막히게 포착하여 바로 그 순간에 동시대인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참으로 바람직한 단편소설의 미덕을 정이현, 이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그간 한 시절 참 오래 책을 안 읽고 살았다. 아직도 이 소설가를 읽지 않았다니. 이것도 안 읽고 그동안 뭐했냐고? 먹고 살았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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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1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정이현 이력을 보면 사보기자로 일하면서 글솜씨를 오래 갈고닦은 내공이 있는 듯하더군요. ㅎㅎ

Falstaff 2017-08-11 10:54   좋아요 0 | URL
아, 정이현이 사보기자 출신이군요.
ㅎㅎㅎ 저도 사보 발행하는 부서의 장으로 한 10년 있었는데 아직 글이 이모양입니다. ㅠㅠ

잠자냥 2017-08-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폴스타프 님이 올리신 글 가운데 예전에 사보에 실렸던 글들이 있어서 사보관련 일을 하신 전력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래서 정이현의 그런 이력을 말씀드려봤고요. ㅋㅋㅋㅋ 폴스타프 님의 내공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요! ㅎㅎ 소주와 함께하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Falstaff 2017-08-11 11:03   좋아요 0 | URL
아이구, 그렇게까지 제 잡글을 자세히 읽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ㅎㅎㅎ
근데 울회사 사보는 쫑냈어요. 이젠 사보 만드는 회사가 별로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그리하야 가장 중요한 회사 내 업무가 ‘놀고 먹는 거‘인데, 그게 젤 어려운 일 같아요. 평생 소원이 놀고 먹는 거 였는데 말이지요. ㅋㅋㅋ 대단한 역설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