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김우남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김우남 여사가 쉰 초반에 등단해서 쉰 초반에 낸 단편소설집. 총 여덟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지금은 품절이라서 읽어보려면 커피도 한 잔 마실 겸해서 중고책 고르는 김에 선택 가능.

 실천문학사 간행. 실천문학사가 알라딘에 작가소개라고 쓴 다음 글을 읽어보시라.


 "지리산 형제봉 아래, 《토지》의 주요 무대인 경남 하동 악양에서 태어난 김우남은 부모님을 따라 일찍 서울에 올라와 잦은 이사와 전학 등으로 ‘부평초 같은 소녀시절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후 법정대 학생회장으로서 5·18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몸과 마음으로 겪어내어 그의 부평초 같은 근기는 더욱 다져졌을 것이다. 졸업 후 문예출판사 편집부에 잠시 근무하면서 글의 향기를 알게 되었고, 허술한 대학시절이 아쉬워 모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되게 웃겨.

 이이의 글엔 이이가 문예출판사에 잠시 근무할 때 질리게 맡았을 "글의 향기"를 찾기 힘들다, 라고 쓰면 이거 또 개박살나는가싶어 좀 캥기는데, 내가 끝까지 한 문장도 안 빼고 읽어본 결과 마지막 작품 <내가 만난 어린왕자> 말고는 글의 향기는 아니고, 삶의 피비린내, 폭력에 의하여 짖이겨지는 여성의 삶과 이의 극복과정 같은 것이 중점적으로 들어 있다. 그게 어때서, 그게 진정한 삶의 향기 아니냐고 주장하신다면, 논쟁을(심지어 일상적 토론까지도) 극히 싫어하는 내 입장에선 한 마디만 할 수 있을 뿐이니 용서하시라. "당신 말이 옳습니다."

 첫작품 <거짓말>. 중학교 저학년? 혹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계집아이가 주인공. 아빠는 엄마가 결혼도 안 했는데 임신한 걸 알고 도망쳤고, 엄마는 아빠새끼가 도망친데 절망해서 딸 혼자 거친 세상 살아보라고 스스로 목숨 끊었고,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큰 외삼촌네 식구하고 같이 살았는데, 큰외삼촌이 미국으로 이민가는 바람에 이제 할머니하고 함께 작은 외삼촌네 집에서 눈치밥 먹는 처지. 사촌 오빠라고 한 새끼 있는 건 내 빤쓰 벗겨놓고 가랑이 사이를 확대경으로 관찰하는 거에 맛들였고, 노래방 사업하는 외삼촌 새끼는 취미생활이 허리띠 풀러 그걸로 아무대나 내 몸뚱아리 두드려 패는 거고, 중화요리집 김사장 새끼는 한 번 하면 겨우 3만원 주는데, 세탁소 사장은 무려 10만원 주는 착하지만 재수없는 새끼고, 진짜 킹왕짱 오락실 아저씨는 눈물나게 고맙고 친절하고 날 정말로 사람 중의 한 개체로 봐주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남자. 학교가니까 애들 둘이 나더러 한 번 해주면 돈받을 수 있는 개저씨 좀 소개해달라고 해서 중화요리집 김사장 소개해줬다가 들통이 나서 퇴학당하느냐 마느냐 갈림길을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짧은 평생 처음으로 외삼촌 새끼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물고 어떤 놈이 너하고 소위 원조교제 했느냐 묻길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날 인간으로 봐주는 오락실 아저씨라고 대답해줘서, 아직 장가도 안 든 킹왕짱 아저씨를 돌이킬 수 없는 진흙탕에 간단하게 빠뜨려버리는 맹랑한 아가씨 이야기.

 두번째, 타이틀 작품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다 늙도록 반지하방에서 돈이 아까워 난방도 하지 않고 살다가 돈 많고 곧 죽을 늙은이 간병인으로 들어가 뜨뜻하니 난방 잘 되는 병원에서 먹고 자는 게 더없이 안락하고 편안해 어떻게 해서라도 이 병원에서 안 쫓겨나리라 작심한 여사님. 한가지 취미가, 비어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면 그걸 안 타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엘리베이터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 부르주아 환자를 위한 독실만 있는 곳까지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 그러다가 어느날 하루, 꼭대기 층, 부르주아 환자들의 독실에서 병원비를 몽땅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하필이면 그날 새벽, 엘리베이터를 타고 취미생활을 즐기던 여사님을 병원의 누군가가 발견해서 증거는 없지만 범인의 심증을 옴팡 뒤집어쓰는 얘기.

 세번째, <비너스의 꽃바구니>. 제목은 근사한데, 국회의원 한 새끼가 하루도 빠짐없이 마누라를 존나 두드려패는 지독한 가족폭력범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둥이. 이새끼가 마누라 친구하고 오랜기간 관계를 맺었는데 이딴 새끼들이 늘상 그러듯이 처음엔 강간으로 시작해 강간-습관적 성적 관계-임신-강제 낙태-다시 강간-다시 습관적 내연관계-임신-강제낙태의 사이클을 십 수바퀴 돌렸단다. 마누라 친구는 먹고 살 게 없으니 그새끼가 준 돈으로 꽃집을 차렸고, 국회의원 새끼는 마누라가 이제 드디어 가정폭력을 못견뎌 저항하려 하니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하는 찰라, 마누라는 투신 자살.

 네번째 <문수산 가는 길>은 부르주아 새끼의 넓은 땅을 피해 억지로 터널을 파려는 토지개발공사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이야기. 주민들을 모아모아 단결해야 저 큰 세력을 이길 수 있다, 존나 설레발치던, 누가봐도 진정한 주민들의 대표 부부가, 회사로부터 작은 이권을 챙긴 다음 야반도주하는 얘기.

 <설해목>, 읽은지 사흘됐는데 잘 기억나지 않음. 다른 작품과 비슷한 내용일 거 같은 느낌.

 <분노를 다스리는 법>은 어려서 이모부한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서른 중반의 아가씨가 상담을 통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진리를 얻고서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찾고 얼굴에 웃음을 짓기 시작했음을, 자신 때문에 오랜 세월 마음 고생이 자심했을 엄마한테 고백하는 편지.


 느낌? 그가 젊어서 알게 된 '글의 향기'를 찾기 힘들었음. 여덟편의 큰 담론을 그냥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친다면 김우남 글의 기본은 위에 거칠게 소개한 작품들에도 불구하고 생활과의 화해. 화해는 언제나 좋은 거. 당연히 화해는 조건을 동반함.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난 백기들고 항복. 언제나 당신 말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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